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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Sep 08. 2024

시골 어머니 밥상

너무 그리운 어머니 반찬

진주면 시골이다. 서울에서 먼 곳이니 아주 시골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이 진주에 와 보면 깜짝 놀란다. 있을 건 다 있고 문화 축제가 많다. 그러니 도시다. 시골에서 태어나 진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생이 되었다. 고향 집이서 진주로 올 때 당시 당시 1960년 대 말 버스 바닥까지 물이 들어오는 냇물을 지나야 했고 수돗물에서는 크로르칼키 약냄새가 진동했다. 화장실에 DDT가루를 뿌리던 시대였다. 머리에 이가 끓으면 이 가루를 뿌려 가끔 머리에 허옇게 희 가루를 묻히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곳에 전학을 왔따. 셋째 고모부 형님 집 아랫채였다. 큰 창고방에 부엌도 달리고 연탄도 입구에 쌓아놓고 사는 집구조가 아닌 원룸이었다. 사돈 집은 나무 바닥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2층집이었고 피아노가 있는 거실도 넓었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한 해 겨울에 온 식구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갔다. 눈이 하얗게 내리던 겨울 밤 마당에 어머니가 쿵 하고 쓰러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생들도 쓰러졌다. 자정에 퇴근하시던 아버지 마중한다고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식구는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방에서 나와 우리도 2층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다시 갔다. 상가 단 독 건물 인데 2층에 방이 두개에 1층에도 방이 달려있어 부엌을 넓게 쓸 수 있었다. 어머니가 진주 오면서 친척 자녀들 하숙을 쳤다. 외삼촌, 외사촌 오빠, 고향 동네 오빠들 어쨌든 집을 옮길 때 대상은 조금 달라졌지만 하숙을 쳤다. 기억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하숙을 쳤다. 하숙을 칠 때 무슨 음식을 제공해 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배부르게 먹고 기분이 좋아졌던 음식이 몇 개 있다. 잔치국수, 깻잎장아치, 소고기 육전, 전어구이, 오이냉국, 부추전, 홍합국, 굴무침, 낙지무국, 동태국, 이런 정도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음력 4월에 멸치 젓갈을 담아놓고 음력 6월이 멸치가 익어서 살이 붉어지고 뼈에서 스스르 떨어져 나온다.  그러면 어머니는 땡초랑 잔파 마늘을 넣고 무쳐주셨다. 입덧할 때 그 맛이 생각나서 무쳐 입에 넣었는데 비려서 바로 뱉아냈다. 그 때는 정말 맛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뜨거운 보리밥에 호박잎쌈에 싸먹지 않았을까 짐작헤 본다. 지금도 나는 여름철이면 호박잎쌈을 늘 먹는다. 

집이 좁든 말든 오형제였던 우리는 늘 재미있게 지냈다. 바로 밑 여동생과 신경전을 벌이이기도 했지만 우리 형제는 착하고 올바르게 자랐다. 나는 살면서 사람을 키우는 것은 올바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몸에 좋은 음식은 사는 곳에서 그 계절에 자란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음식이다. 얼마전 가족들이 제질 검사를 하여 몸에 맞는 음식을 점검해 보았는데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이 내 체질에 제일 잘 맞는 음식이고 막내 딸이 거의 나와 비슷한 음식이 몸에 맞는 것이 신기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반찬이 너무 맛있어 먹고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온갖 음식을 아이들에게 해 먹였다. 직접 해먹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 판단한 것은 잘 한 것일까? 직장에 다니게 되었을 때도 새벽같이 일어나 시부모님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 간식까지 만들어 놓고 출근을 했다. 그런 세월이 나도 꽤 맛있는 반찬을  만들 줄 아는 어머니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어머니 반찬 떄문에 외식을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반찬은 그야말로 시골 반찬이다. 아이들이 다 성장해서 결혼도 하고 외지에서 직장 생활을 있지만 다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고 사는 걸 보고 나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모두 다 대학교때부터 바깥 생활을 해서 걱정했는데 아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 순두부국, 생선구이, 굴국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나물 등이라니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세 아이는 식도락가가 되었다. 서울, 한국 일본, 유럽까지 맛집을 알고 다닌다. 평소 음식이 건강하고 편식을 안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올 여름에도 나는 토종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남편과 막내딸)에게 제공하였다. 아들이 고구마줄기 나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올해야 알았다. 우리 집 최고 여름 음식은 봄에 만든 마늘쫑, 마늘 장아치, 오이 피클, 고구마줄기 무침과 김치, 늙은 오이 볶음, 가지구이, 가지나물, 호박잎 찜, 깻잎 찜이다. 조선파 김치는 익기전에 먹어야 맛있다. 익으면 며느리가 돼지고기와 구워먹어 버린다. 꽈리고추 잔멸치 조림, 그리고 감자 샐러드 등이 있다. 깻잎 찜은 국물을 국처럼 떠먹을 수 있어 올 여름에 몇 번째 해 먹었다. 

요즘 치솟는 물가에 야채값도 덩달이 오르지만 새벽장에 나가면 그나마 싱싱하고 조금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호박잎을 천원어치 사면 두번은 먹을 수 있으니 싸다고 안 할 수없다. 깻잎쌈은 약간 질겨서 께ㅐㅅ잎찜을 ㅗ만들어 먹어보니 부드럽고 멸치와 양파도 같이 섭취할 수 있어 영양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위장에 자극이 없으면서도 여름철 입맛이 떨어질 때 이만큼 좋은 음식이 없을 것 같다. 

 어릴 때 입맛이 떨어져 밥을 잘 못 먹으면 깻잎장아치를 가늘게 찢어 밥 위에 얹어 주셨다. 그 때는 조선간장으로 담았기 때문에 제법 짭짤했다. 찬물에 밥 말아 짭쪼롬한 꺳잎을 얹어먹던 여름 밥이었다. 내가 버위를 타서 밥을 먹지 못하자 막내 시누이가 물에 말아서라도 마시라던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깻잎이 있었다면 그 때 물에 말아서 깻잎 장아치를 한 장 얹어 울렁한 속을 내렸을 것이다. 나도 여름철이면 깻잎장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짭지 않게 메실에기스를 섞어만들기도 하지만 엤날 먹던 깻잎 향이 나지 않아 찜으로 바꾸어 먹고 있다. 고행 동네에 귀차게 맛있는 꺳잎김치를 담는 분이 계시다. 짜지 않고 부드럽게 자식 준다고 만든 것을 우리가 떼를 써서 사 먹는다. 아 이제 생각이 난다. 식혜도 어머니가 잘 담그셨고 옛날에도는 제사 때 동동주도 직접 담구셨다. 산청군 마천면에 누룩을 팔았는데 한 번 심부름을 해 드린 적이 있다. 쌀알이 수북한 전주를  저어서 떠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다슬기가 나라 때면 방아를 넣은 다슬기찜 요리, 고사리가 날 떄면 고사리찜을 죽순과 조개 등을 넣고 찜을 해 주셨다. 요즘은 마우 식당에서아 맛볼 수 있는 맛이 아니다. 그리고 추석때면 온갖 자료로 전과를 만들어 주셨다. 도라지 전과, 당근 전과, 연근 전과를 주로 만드셨고 우리는 달작지근하게 설탕물이 흐르는 전과를 떼어먹던 맛으로 달콤하게 지냈다. 나도 어머니 전과가 생각나서 가을이면 생도라지를 사서 껍질을 멋기고 유기농 조청을 넣어서 6시간 이상을 고아서 도라지 전과나 조청을 만들어보았다. 그 때 만든 조청을 며느리에게 주었더니 친정어머니가 드시고 감기에 좋았다면 친정어머니가 기침만 심해지면 시어머니인 나에게 도라지청 좀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애야, 그건 한 두시간 만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요즘 같이 일하느라 바쁜 내가 하기엔 머무 무리야." 이해를 시키고 산중에 사는 친구가 만든 도라지 무조청을 사서 보낸다. 어제 토요일에는 오랜 만에 갯잎 찜을 만들었다.


멸치는 다지고 양파,당근 채썬다. 마늘도 소량 넣고 다싯물(표고머섯, 무, 다시마, 멸치 우린 물) 양념을 갠다. 고추가르 한 푼 정도, 깨소금 소량, 홍고추 땡로 헌 두 개 정도 채썰어 넣는다.

다싯물을 만들 때 신경쓴다. 묘고버섯, 무를 넣고 한 시간 이상 약불에 끓인다. 불을 끈 후  멸치, 다시마를 적당하게 넣고 한 시간에서 밤 새 우린다. 급하면 한 시간 정도 뒤부터 사용 가능하다. 이 물을 마시면 답답하더 가슴이 시원해진다. 아마 표고버섯과 다시마 때문인 것 같다. 

껫잎은 제일 먼저 씨어 놓고 양녑 준비를 하면 된다. 적당한 냄비에 껫잎 서너장 윙 양념 한 숟가락 올리고 다시 껫잎, 이렇게 쌓아서 뚜껑 닫고 약불에 끓이는데 중간에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양념물을 넉넉하게 잡아서 깻잎이 약간 담가지게 해야 깻잎 색깔이 죽지 않는다. 양파를 먹기 위해 양을 많이 잡았다. 깻잎 향과 멸치 맛과 다싯물이 어울어지면 향긋하면서도 시원한 껫잎 찜이 된다.


<깻잎 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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