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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Sep 28. 2024

좋은 물을 찾아서

그 물이 살아있다면

 이젠 다양한 물을 사 먹고 산다. 요즘은 그냥 생수가 아니라 마그네슘이 강화된 물, 미네랄이 포함된 물 등 각 종 성분을 첨가하여 건강을 지키는 물을 만들어 판매된다. 우리 집도 30년 전부터 물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살았다. 처음엔 시어머니께서 대여해서 ‘웅진 코웨이 정수기’를 사용했다. 정수기 필터를 교환해 주고 청소를 해 주는 관리를 받았으나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취소를 해 버리는 바람에 없어졌다. 당시는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수돗물을 마시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아시는 분의 소개로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서 나오는 ‘공룡물’을 한동안 가지러 다녔다. 통 값 1000원만 지불하면 50리터짜리 생수를 한통 받아올 수 있었다. 집에서 가져간 통과 그냥 받아오기 미안하여 새로 사오는 통 5-6개이면 3개월 정도의 생수로 먹을 수 있었다. 영남고속도로를 타다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의성군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 시간 30분을 안 쉬고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당시 남편은 은행원이었는데 마다않고 그 물을 구하러 휴일이면 달려가곤 했다. 그 물은 일본 제약회사에서도 구입해가는 물이라고 했다. 수천 년 전 공룡이 묻힌 바위 속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했다. 바닷물고기를 담아 놓아도 살아가는 물이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라고 했다. 실제 먹어보면 담수 맛이 아니라 약간 간이 된 맛이다. 비중이 높은 물이다. 신기한 것은 빛에 그냥 노출해서 몇 주를 두어도 이끼가 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 점 때문에 신뢰를 했다. 그러다가 거기도 안가고 주변의 약수터를 찾아 물을 받아왔다. 

 이병주문학관을 지나 곤양으로 갈 수 있는 산간도로에 약수터가 있다. 그곳에 몇 년간 다녔다. 우리도 아마 그곳에 대장균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가지 않았다. 동생네는 요리나 끓여먹는 물은 아직도 이 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생수로 마시는 물은 산청군 정취암 가는 길에 있는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는 약수를 받아먹고 있다고 한다. 모두 물에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다. 

 우리 집은 2017년부터 정수기를 구입하여 편하게 정수하여 먹고는 있다. 독일 수입 정수기에 PH 농도도 따지고 다양한 성분과 매달 새 필터를 교환해 주는 관리를 받는다. 비씬 비용과 배달 관리비를 지불하지만 몇 년간은 물 걱정 없이 지냈다. 우리 아파트가 지은 지 오래되고 당시에 동파이프를 사용하여 이제 배수관도 노후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집만 배관 공사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일찍이 물 문제로 이사를 간 집도 있다. 

 어릴 때 등물을 했던 약수터는 지금은 먹는 물로 사용하고 있다. 수질 검사도 통과하여 안심하고 먹는다. 차를 끓여 먹으면 부드럽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집은 정수기를 믿고 마음먹고 마시고 있다. 동생이 소개해 준 정취암 가는 길의 약수는 한 번 먹어보고 식수로 사용하고 싶어진다.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이렇게 발품을 팔아야한다.

 어릴 때 우리 동네는 동네 뒷산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 따로 동네 우물이 없었던 것은 ‘홈대’ 아닌 약수터가 따로 있었고 마을 앞에는 산에서 내려온 개울물이 내 기억으로는 삼대를 담아 불릴 정도로 많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요즘 동남아를 안내하는 프로그램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마을 공동 빨래터도 되고 비가 오면 통발을 놓아 미꾸라지도 잡을 수 있고 꼬마들은 목욕도 할 수 있는 물이었다. 

 우리 집에는 부엌 안에 커다란 독이 있었다. 어머니는 늘 그 독안에 물을 채우셨다. 머리에‘ 따바리’(똬리의 방언)를 받치고 그 위에 물동이를 올려 집에까지 이고 오셨다. 사람이 사는 집이 바로 밑에 있다하더라고 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경사가 그리 급하진 않으나 좁은 오르막길을 500미터쯤은 올라가야 했다. 

깊은산 꼭대기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 네이버블로그 (naver.com)에서 따온 사진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물을 길어 오시던 옹달샘과 가장 닮은 이미지다. 

 ‘따바리’에는 입에 물 수 있는 가는 끈이 있어 그 끈을 입에 물고 어머니는 가끔 물통을 이고 걸어오시는 것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멋진 모습이다. 

 물동이를 이 어머니는 또 하나의 뚜렷한 그림이 되었다. 작년 여름 퇴직 연수에서 편안하게 제주도 '절물'휴양림 산길을 산책하게 되었다. 갑자기 어머니 모습을 흉내 내어 700미터 물병을 머리에 이고 걸어보았다. 균형 잡는 게 되었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함께 연수 온 분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  아마도 어릴 때 나처럼 그 분도 물병을 안 떨어뜨리고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했을까? 이 사진에서 나는 자꾸 어머니를 본다. 미소마저 점점 닮아가는 나를 본다. 

 요즘은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은 동네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휴일에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그 물이 살아있다면 아! 나는 과거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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