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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리언 Oct 27. 2024

[마케팅2] 여자친구의 '아무거나'란 말이 제일 무서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즈 vs 원츠 vs 디멘즈!

# 소비자 니즈




'아무거나의 심리, 아무거나의 철학'


 화성씨는 주말을 맞아 여자친구 금성씨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여자친구는 배가 고프다며 빨리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보챕니다. 화성씨는 어제 늦게까지 과음한 탓에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메뉴 선택권을 그녀에게 넘겨줍니다.


화성씨: 뭐 먹을래?

여자 친구: 아무거나 다 좋아~

(화성씨는 넌지시 먹고 싶은 메뉴를 제안해 봅니다)

화성씨: 근처에 해장국집 잘 하는 집 있는데 어때?

여자 친구: 요 며칠 한식만 계속 먹어서..

화성씨: 그럼 곱창구이는 어때? 저번에 먹고 싶다고 했잖아.

여자 친구: 어제 치과 치료 받아서 곱창은 좀...

화성씨: 그럼 피자는 어때?

여자 친구: 나 다이어트 중이잖아.. 칼로리 너무 높은 듯..

화성씨: ...?!


 여자친구는 분명히 '아무거나'라고 했는데, 그녀 입에서 도통 yes가 나오지 않습니다. 화성씨는 인생 최대 난제라도 만난 듯 식은땀이 납니다.


 여기서 여자친구의 '아무거나'는 진짜 '아무거나'가 아닙니다. '아무거나'를 있는 그대로 '아무거나'로 받아들이면 낭패입니다. '아무거나'의 세계는 심오해서 한 예능 프로그램의 '남녀 말 탐구생활 코너'에서 다루어 지기도 했습니다.


 위 사례에서 여자친구의 '아무거나'라는 말에는 어떤 심리가 들어 있는 걸까요?

 첫째, 그녀가 사실 먹고 싶은 특정한 메뉴가 있지만 숨기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와 같은 이유로 배려라는 명목 하에 선택을 미룹니다. 하지만 끝까지 주도권은 본인이 가져갑니다. 둘째, 그녀 본인 조차도 원하는 메뉴를 모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화성씨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그녀의 깊은 심저에서 원하는 그 메뉴를 딱 찾아내야 합니다.

 데이트에서 식사 메뉴 선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경우이든 화성씨는 센스를 발휘해 그녀가 원하는 답을 빨리 내놔야 합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야 하는 기업의 처지도 화성씨와 같습니다. 소비자의 직접적 요구이든 숨은 바람이든 이를 계속해서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기업은 결국 퇴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설령 소비자 스스로도 뭘 원하는지 모르고 말을 해주지 않는 경우에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대령해내야 합니다. 


 이를 가장 잘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애플의 스마트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전화에 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의 기능이 결합된 스마트폰을 내놨습니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소비자는 애플Apple에 스마트폰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죠. 그러나 소비자들은 "마치 내가 원하던 게 이거야"를 외쳤던 것처럼 열광했습니다.



"원하고 바라는 것에도 단계가 있다"


 위 사례에서 여자친구의 '아무거나'의 심리에는 여러 차원의 바람이 들어있음 알 수 있습니다. 배고픔을 느끼고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것은 여자친구가 확실히 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핍을 충족시켜 줄 메뉴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바람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 음식들이 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다. 또 앞서 살펴봤 듯이 본인 스스로가 바라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이렇게 소비자가 가지는 여러 단계의 결핍과 바람을 찾아내서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사실 마케팅 영역 뿐 아니라, 기업의 존재 목적 자체가 이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무엇보다 소비자가 뭘 바라고 원하는 지에 주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인간의 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래 심리학이나 철학에서 주로 다루던 개념입니다. 이는 철학과 심리학의 심오한 세계이기에 학자나 사상가 마다 정의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서양의 용어들을 번역해 오는 과정에서 개념들이 굉장히 혼용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욕구에 대해 연구한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라캉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바라는 것을 필요needs, 요구demand, 욕망desire의 3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필요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 배고픔이 이에 해당되죠. 둘째, 요구는 필요를 다른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이며 주로 언어로 표현됩니다. 위 사례에서 '김밥', ‘삼계탕’ 등이 이 후보가 될 수 있죠. 화성씨가 여자친구의 정확한 요구를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의 크기는 요구의 크기 보다 항상 큽니다. 인간은 항상 결핍을 느끼고 이를 요구하고 채우려 하지만 그렇지 못하죠. 이 사이에서 욕망이 생깁니다. 욕망은 욕구에서 요구를 뺀 나머지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욕구-요구=욕망’ 이들에 대한 등식입니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이냐, 네가 바라는 것이냐"


*etnews 이미지 편집

 여기서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란 '타자가 가진 욕망'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진정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한다는 것입니다. 한 때 중고등학생 사이 특정 브랜드의 가방이나 패딩이 유행해서 모두 똑같이 그것을 착용하고 다닌 것이 이 욕망이 발현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검정색 롱패딩이 유행해서 길거리에서 모두 똑같이 입고 다니기도 했죠. 이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무래도 desire의 가장 상징적인 것은 '명품백'이 될 것입니다. 명품은 보통 남의 시선 하에서 생긴 바람이기 때문에 이를 구매하더라도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내 자신은 소외되는 것이죠. 만약 위 화성씨 사례에서 여자친구가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도 아님에도, 단지 핫플레이스라 하여 SNS 사진 업로드용으로 특정 식당에 가자고 한다면 이것도 욕망이 되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게 아닌 남의 시선과 과시를 위한 것이죠.



마케팅에서 바라고 원하는 것들의 세계: 니즈, 원츠, 디멘즈


 앞서 봤듯이 소비 과정에는 욕구와 욕망 등의 심리적 측면이 굉장히 크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에서는 심리학과 철학의 욕구, 요구 등의 개념과 이론들을 차용해 왔습니다. 이들은 마케팅에서도 대표적 개념들이 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다만 마케팅에서의 정의는 위의 라캉과 같은 심리학자, 철학자들과의 정의와 살짝 다릅니다. 심지어 마케팅 영역 안에서도 아직도 니즈, 원츠, 디멘즈에 대한 번역 용어가 굉장히 많이 혼용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소비 행위에 많이 관여하는 니즈Needs, 원츠Wants, 디멘즈Demands의 3가지 개념이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니즈와 원츠를 가장 많이 씁니다. 이에 한 가지를 더 하자면 더 잠재적인 욕구의 시즈Seeds가 있습니다. 이는 니즈보다 더 심저에 숨어 있는 욕구입니다.


    '원초적 욕구'의 니즈(Needs) 

    '구체적 요구'의 원츠(Wants) : 구체화된 니즈

    '구매력 있는 수요' 디멘즈(Demands) : 원츠 + 구매력


  니즈Needs는 생리적이고, 본능적이고, 근본적이고, 본원적인 욕구입니다. 누구나 보편타당하게 갖는 마음으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충족시켜야 하는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라캉에서의 니즈와 비슷합니다. 원츠Wants는 니즈가 구체화된 것이며, 구체적 욕구입니다. 니즈를 '1차 욕구'로, 원츠를 '2차 욕구'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라캉에서 디멘즈Demands는 언어적 요구였지만, 마케팅에서는 소비 과정에 중요한 '구매 능력'을 고려합니다. 원츠에 구매 의지와 구매 능력, 즉 경제력까지 갖춰지면 디멘즈가 됩니다. 화성씨 사례에서 이들이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되는 식사 메뉴가 바로 디멘즈입니다. 만약 5성급 호텔의 초호화 식사를 할 구매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이는 화성씨와 여자친구의 디멘즈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죠.


 위 개념들 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케터는 이 차이를 잘 알아 둬야 합니다. 기업은 그래야 마케팅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니즈, 원츠, 디멘즈를 찾으려는 노력 충족시켜야 하며, 이들을 구별하여 잘 공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니즈는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욕구입니다. 반면 원츠는 지역, 사회, 문화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기도 합니다. '배고픔'이라는 니즈가 발생했을 때, 각 시대별로 각 나라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주 메뉴가 다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장난감이라는 니즈가 있을 때 남자 아이는 로봇 장난감을 여자 아이는 인형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한편 니즈는 근원적 욕구이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반면, 원츠는 마케터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11월 11일은 막대 과자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입니다. 이 날짜에는 막대 과자라는 원츠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니즈의 시대가 가고 원츠의 시대가 왔다고?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도 부족했던 과거는 니즈의 시대고, 필요 이상으로 넘치고 풍요로운 현재는 원츠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과거가 필요한 것을 사도록 하는 니즈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필요 없는 것도 사도록 하는 원츠의 시대라는 것이죠.

 사실 필요적 욕구인 니즈 보다는 욕망의 원츠가 돈이 되며, 마케팅은 여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위 사진은 니즈와 원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물건을 담아서 이동하는 용도로는 비닐 봉지 정도가 니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같은 기능인데도 불구하고, 명품 로고가 새겨진 종이봉투와 비닐백은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데도 수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한 브랜드의 립 메이크업 제품입니다. 사실 위 제품은 ‘극히’ 일부일 뿐 이 한 브랜드에 굉장히 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색상 간의 차이가 잘 느껴지시나요? 남자 분들은 잘 모를지 몰라도, 여자 분들에게는 색상 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소장각’입니다. 이렇듯 원츠는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 마케터가 원츠에 매몰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츠는 니즈에서 구체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원츠는 니즈에서 멀어지고 분리되어 버리면 안됩니다. 니즈가 결여된 원츠는 일시적이고 지속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본래의 니즈가 결여된 채, 경쟁 제품과의 차별점이나, 휘황찬란한 디자인 등 부차적인 것에만 신경 쓴 원츠가 된다면 지속성을 가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매장에 온 소비자가 찾는 디자인의 옷이 없다고 나가려고 하는데, 점원이 계속 다른 원츠의 옷들을 추천하고 강요한다고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소비자가 선물용의 제품을 찾고 있다는 니즈를 파악하면, 매장에 있는 향수가 시계 등을 추천해 구매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원츠에서만 맴돌게 아니라, 더 근원적인 니즈에 집중하면 구매 성사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항상 새로운 니즈를 찾는 노력도 필요 합니다. 목표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 불만 살피는 것에서 기회가 생깁니다. 혹은 기존 제품 소비하지 않는 고객도 살펴보고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니즈를 찾는 방법 또한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후 한 챕터를 할애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욕망과 욕구를 대하는 마케팅의 올바른 자세

 마케팅에서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욕구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가장 근본 활동이 됩니다. 여기가 바로 기업, 경영이 인문학과 소통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이러한 이해 없이 단순히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 혹은 경쟁사와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고 공급하는 것은 피상적인 행위가 될 뿐입니다.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하고 제공해야 -심지어 소비자 본인이 모를지라도- 오래도록 사랑받고 성공할 수 있죠.


 그런데 앞서 살펴봤든 인간의 욕망과 욕구의 세계는 굉장히 심오하며, 나라, 학자들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아주 옛날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나 주변 국가들에서는 욕망과 욕구를 서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양의 심리학자, 사상가들에 의해 나눠진 개념입니다. 학자, 사상가에 따라 욕망과 욕구는 악한 것과 선한 것으로 나누기도, 혹은 둘 다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불교나 유교학자들은 욕구, 욕망과 같은 감정을 모두 부정적으로 보고 죄악시하기도 했죠. 반면 스피노자, 들뢰즈와 같은 학자는 오히려 필요 이상의 욕망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필요의 욕구만 가졌다면 콜럼버스가 미지의 대서양을 항해하는 일은 없었 더라는 것이죠. 필요 이상의 욕망이라는 것이 의지를 자극하고, 꿈을 꾸게 하고,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생기게 했다는 겁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은 필요의 피조물이 아니라, 욕망의 피조물이다”라고 했습니다. ‘미식의 가치’가 영양의 가치보다 우선한다고도 했죠.


 인간의 어떠한 바람까지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부차적인지, 또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부정적인 것인지 등등.. 아직까지 욕망과 욕구의 세계에 대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비자의 욕망, 욕구들을 잘 파악하고 공략해야 하는 것이 기업, 마케팅의 역할이긴 하지만, 이 심오한 세계에 대해 독자적으로 명확한 답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업과 마케팅의 역할은 인문학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인간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이를 어떻게 건강하고 가치 있게 실체화하여 충족시켜 줄 것인지에 있을 것입니다. 결국 여기에 기업과 경영 성공의 가장 근본적 핵심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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