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같은 지구라는 별에 살지만,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 남자와 여자. 관계 상담가 존 그레이는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이들의 다른 언어, 행동에 대해 다뤘는데요. 이 책은 100개국에서 출간되고, <USA 투데이>가 지난 25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만큼 서로 다른 남녀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기업과 소비자의 언어와 생각도 다른 별에서 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강자-약자 관계가 성립하는데요. 수많은 대안을 손에 쥐고 있는 소비자가 '강자', 그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기업이 '약자'인데요. 그래서 기업은 소비자를 알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이들 간에는 동상이몽 상황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소비자의 말로부터의 동상이몽
'조사하면 다 나와?'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 조사에서 만큼은요.
기업은 상품화하기 전부터, 출시 이후까지 설문, 인터뷰 등을 통해서 소비자 조사를 하는데요. 하지만 소비자 조사로 소비자를 알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우선, 소비자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릅니다.
소비자는 물어보는 것에만 답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소비자 마음 심연에는 답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가 존재합니다. 하버드대 제럴드 잘트만(Gerald Zaltman) 교수는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는 욕구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하기도 했죠. A와 B 중에 A를 선호한다고 답했으나, 사실 A에 대한 선호도는 크지 않고, 물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C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C에 대한 욕구를 간파하고 만들어 낸 경쟁자에게 소비자를 뺏기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또, 거짓으로 답하거나, 왜곡하여 답할 수 있습니다.
의도 됐든, 그렇지 않든, 소비자의 답은 진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설문 조사에는 구매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친환경'을 꼽아 놓고, 실제 구매 상황에서는 '디자인'을 가장 우선시 할 수 있죠.
소비자 조사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해 각종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100프로 신뢰하기 보다는, 잘못된 의도나 왜곡이 없는지 잘 파악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비자의 행동으로부터의 동상이몽
스티브 잡스 또한 "소비자들은 그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본인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며, 소비자 조사를 불신하기도 했는데요. 또 "소비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주지 못한다. 그들은 혁신 보다 개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럼 그는 어떻게 소비자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요?
그는 바로 "관찰"을 통해 소비자를 알고자 했습니다. 관찰은 굉장히 식상하게 다가올 수 있는 단어지만,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소비자 행동을 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상품군을 사용하는지, 어떤 점을 불편해 하는지 등등에 대해 파악하는 거죠. 실제로 넷플릭스 등 실리콘 밸리 기업에서도 이 관찰을 중요시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CEO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 시스코 존 체임버스 회장은 주 30시간 이상은 현장에서 고객들을 눈으로 직접 관찰한다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행동 그 자체가 답은 아니기에, 그 사이 '추론'이라는 것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요. 여기서도 소비자와 기업의 동상이몽이 생깁니다. 이는 소비자가 (꽤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과거 기업은 소비자들이 이성이고 논리적으로 소비할 것이라고 기대했었죠. 하지만 소비자는 의외로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존재임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직관, 촉, 느낌에 의해 결정하는 그들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찰을 할 때는 소비자 행동을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객 행동, 시장, 기술 등을 다면적이고 통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소비자가 남긴 데이터로부터의 동상이몽
이제 기업들은 주로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를 파악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소비자에 대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를 수집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에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에는 소비자의 '말'과 '행동'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이를 모두 포괄하는 '데이터 마이팅'과 말에 중점을 두고 분석하는 '텍스트 마이닝'이 있죠. 즉, 리뷰 등을 통해 그들의 '말'을 분석하기도 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 '로그'를 통해 '행동'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이트에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느 페이지에서 빠져 나갔는지, 얼마 만에 재방문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죠. 특히 구매 직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읽기도 합니다.
여기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분석 데이터를 이용하기도 하고 있고, 하둡과 같은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대규모 데이터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트리뷰션 툴을 활용해 어떤 마케팅 결과에 영향을 끼친 요소를 추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 데이터도 소비자에 대해 모두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데요. 우선 '가짜 데이터'와 '진짜 데이터'가 구별이 안 될 수 있습니다. 또 데이터 양이 많더라도 전체 소비자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또 통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또 분석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는 '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데이터 그 자체는 썸녀의 마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데이터에서 썸녀의 마음을 어떻게 읽어낼 것이고, 또 그러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면, 그녀에게서 어떻게 제대로 된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얻어낼 수 있는지는 '썸남'의 몫이겠지요.
이제 마케팅의 경쟁력은 진짜 데이터를 잘 모으고 분석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고 불편할 것을 싫어하는 요즘의 소비자들에게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렇게 얻은 데이터에서 어떻게 인사이트를 읽어낼 지 그 능력이 중요하게 되었죠. 날 것의 데이터 그 자체는 굉장히 객관적인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에게는 추리력과 창의력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스티브 잡스의 통찰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에...
결국 소비자를 알기 위해서는 조사, 관찰하는 것과 더불어 통찰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 데이터가 바로 답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마케팅 단계에 따라 그 비중을 달리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기획, 구상 단계에서는 통찰을 발휘하고, 상품 출시 후 개선의 단계에서는 다시 조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역동적이고 통합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또한 최근의 디지털 시대에는 소비자에 대한 접근도는 올라가고, 또 테스트를 위한 비용은 낮아졌습니다. 최소기능제품(MVP), 베타 버전, 혹은 아이디어 그 자체의 상태라 하더라도 소비자와 접촉해 가면서 조사를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더 빠르게, 더 잘 소비자의 마음을 반영할 수 있을테니까요.
적은 양의 데이터에서도 굉장히 유용한 것을 도출해 낼 수 있고, 반대로 빅데이터를 통해서도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소비자로부터의 말, 행동, 데이터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또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그들의 고민, 불편, 불만 그리고 필요, 욕망, 갈망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그 중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선별해 내어 이를 정교하게 상품으로 이어낼 수 있어야 하죠. 결국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 말, 행동, 데이터로부터 마음을 읽는 '혜안'이겠지요.
결국 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