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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OS는 인생 2.0: 업데이트 준비 중

by 윤근관쫑아빠

사실 지금까지 교직경력 중 33년간 휴직이나 병가없이 한 달도 쉬지않고 도덕과 교사로 살아온 나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수많은 교과서를 넘기고, 셀 수 없이 많은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시간 속에서, 나는 늘 '교사 쫑아빠'였다. 윤리, 도덕이라는 과목을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해,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거저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시계는 은퇴를 가리키고 있고, '인생 2.0'이라는 새로운 운영체제로의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사범대학에 입학 후 제대로 된 도덕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등대가 되고 싶었다. 가치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만의 인생 나침반을 찾도록 돕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33년이 지난 지금, 나 자신이 새로운 인생 나침반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선생님, 은퇴하면 뭐 하실 거예요?"


작년 수업 중 우연찮게 한 학생이 던진 이 질문은 나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가르쳤지만, 정작 교직 이후의 내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덕 교사로서 가르쳤던 가치와 원칙들을 내 은퇴 후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 질문은 내 인생 2.0 업데이트의 시작점이 되었다.


우선은 ‘삶의 의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했다. 33년간 내 정체성과 의미는 '교사'라는 직함에서 많은 부분 기인했다. 아침마다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 교실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특권.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사 쫑아빠'가 아닌, NPC는 더더욱 아닌 '사람 쫑아빠'로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내가 도덕 시간에 자주 다루었던 주제 중 하나가 '자아실현'이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설에서 최상위에 있는 이 개념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늘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제 그 질문은 나에게 돌아왔다. 교직의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시간날 때마다 스스로의 상상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통해, 몇 가지 답을 찾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지구별 여행 계획과 세계 여러 도시의 한달 살이 계획, 더 깊이 탐구하고 싶었던 동서양의 고전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 등. 이런 생각들이 모여 내 인생 2.0의 초기 설계도를 그리게 되었다.

물론 은퇴 후 재정적인 부분도 인생 2.0 업데이트의 중요한 축이다. 교직원 연금과 그동안의 투자 및 저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설계하는 것.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진정한 자아실현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유튜브의 다양한 은퇴 관련 채널들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은퇴 자금 계획을 세웠다. 교사 생활 동안 꾸준히 저축해온 덕분에 기본적인 생활은 걱정 없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한 추가 자금 계획도 필요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따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건강 관리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학생들 앞에서 50분 동안 서서 수업하던 체력은 이제 조금씩 저하되고 있음을 느낀다. 주중에 하는 배드민턴 클럽활동과 주말 근교 트레킹이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병원에서는 정기 검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식이요법과 수면 관리도 이제는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디지털 세계와의 관계다. 학교에서는 교무업무시스템이나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활용 정도였지만, 이제는 더 깊이 온라인 세계로 발을 들이고 있다. 블로그를 시작해 그동안의 교육 경험을 공유하고, 유튜브에서 은퇴 후 삶에 대한 다양한 채널을 구독하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MZ 세대 제자들이 가르쳐준 인스타그램 활용법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와 철학 관련 콘텐츠를 발견하는 새로운 창이 되었다.


"선생님, 인생은 계속되는 공부 과정이잖아요. 선생님이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몇 년 전 졸업한 제자의 메시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렇다. 나는 33년간 학생들에게 배움은 끝이 없다고 가르쳤다. 이제 그 가르침을 내 삶에 적용할 차례다. 나의 인생 2.0은 또 다른 학습의 여정이 될 것이다. 이제 몇 년 후면 나는 더 이상 교단에 서지는 않지만, 여전히 배움에 목마른 디지털 노마드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도덕 교사로서 나는 항상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은퇴를 앞둔 나는 그 답을 직접 보여주는 삶을 살고자 한다. 교직에서의 33년이 인생 1.0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인생 2.0이 될 것이다.


쫑아빠의 OS는 현재 시스템 업데이트 준비 중!!! 새로운 기능과 더 넓은 시야로 곧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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