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47호 (2023년 7월호)
코너 : DUGOUT Interview
인터뷰이 : LG 트윈스 불펜포수 안다훈
촬영 일자 : 2023년 6월 2일 (현장)
인터뷰 일자 : 2023년 6월 5일 (전화)
장소 : 잠실야구장
지난 6월 1일,
나는 약 5개월 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반 년 동안 에디터로서의 활동은 계속했지만,
애리조나 캠프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선수들과의 인터뷰는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기획기사만 전담한 것도 이 때문.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인터뷰 이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공교롭게도 귀국한 지 24시간도 안 되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DUGOUT Behind> 열 번째 주인공,
다른 이의 꿈이 이뤄지는 걸 돕는, 불펜포수 안다훈이다.
전날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와,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찾은 잠실야구장.
원래는 이달 같은 호에 출연할 박해민과 함께 각각 화보촬영/인터뷰를 연달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시간 관계상 안다훈 포수는 화보 촬영만 진행하고 인터뷰는 차주에 전화로 진행하기로 했다.
귀국하자마자 잡힌 대면 인터뷰라 기대했는데 별 소득없이 돌아간 것이 참 아쉬웠다.
그래도 촬영 현장을 직접 본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인터뷰 전 미리 얼굴을 터 놓을 수 있었고, 그 덕에 그다음주에 전화로 인터뷰를 할 때도 크게 어색함이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촬영 당일에 내가 시차 적응도 안 됐을 때라 정신도 없고, 잠도 깬 듯 안 깬 듯한 상태였다. 처음 날 맞이한 스태프분들이 그냥 봐도 퀭 해보인다고 하셨을 정도.
그렇게 여러모로 무방비였던 상황이었는데, 되돌아보니 이날 인터뷰까지 진행했으면 평소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2월에 애리조나에서 인터뷰를 한 이후로 오랫동안 인터뷰 진행을 못 했기도 하고. 오히려 며칠 후에 내 컨디션이 얼추 정제된 상황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게 다행이었다.
전화 인터뷰는 화보 촬영을 하고 난 후 3일 후인 6월 5일에 진행됐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었던 터라 인터뷰 길이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흔히 너무 짧을까봐 부담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내 경우는 봇물 터지는 수다 때문에 너무 길어질까봐 부담을 갖곤 한다) 전화를 걸었는데, 알고보니 주중 원정 3연전을 위해 이날도 당장 낮부터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뒤에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분량을 늘리기는 불가능한 상황. 이에 전화 인터뷰였음에도 적당하게 질문과 답변 분량을 조절하는 게 필요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냐는 그의 질문에 난 30분 언저리라고 답했다. 그 이상을 넘어간다는 건 보통 나와 인터뷰이 사이에 수다가 엄청나게 길어진다는 것인데, 이날 수다가 길어진다면 내 스스로 텐션이 높아지는 걸 자제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맡은 거다 보니 인터뷰가 고팠던 것도 있었고. 그래서 약간의 각오(?)를 다진 채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다훈 포수의 엄청난 답변 길이에 내 각오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간단히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에서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은 후, 조금 진지한 주제로 넘어가는 포인트에서 던진 첫 번째 질문부터 나온 광활한 답변. 일과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이다 보니 어느 정도 길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상세하고 정성스럽게 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안다훈은 주어진 여러 질문에 길고, 알차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덕분에 불펜포수라는 보직과, 안다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나로서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결과 30분은 안 넘을 거라고 밝힌 내 말이 무색하게 50분이 훌쩍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는 게 웃픈 포인트.
"조금 놀랐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전 연차가 오래되기도 해서 동생들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오래 해서 이렇게 인터뷰 기회가 왔구나 싶었어요."
안다훈이 미디어에 얼굴을 비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NC 소속으로 우승을 일군 2020년 당시, 무려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하면서 그는 이미 얼굴을 알린 바 있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이미 존재를 알릴 기회가 주어진 이유 때문이었을까. 안다훈은 인터뷰 초반 섭외 연락을 받고 어땠냐는 질문에, 자기보다 같이 불펜포수 일을 하는 동생들에게 인터뷰 기회가 갔으면 더 좋았겠다고 답했다. 그 또한 오랜 세월 주목 받지 못하는 길을 앞서 걸어온 만큼, 그 길을 함께 걷는 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보였다.
"(동생들한테) 얘기하고 왔어요. 오~~~ 하면서 되게 놀리던데요. (웃음) 그러면서도 자기들도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이렇게 (자기들의) 얘기를 할 기회가 잘 없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희 일이 잘 드러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거기다 동생들도 알게 모르게 인정받는 거에 대한 목마름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부럽다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내심 속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당초 기획 단계에서는 안다훈뿐만 아니라 다른 불펜포수 모두와 함께 하는 합동 인터뷰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펜 포수가 세 명이나 되다 보니 모두의 일정을 조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1인 인터뷰로 변경됐다.
나머지 두 명의 불펜포수의 목소리를 함께 담았다면 더욱 풍성한 원고가 됐을 텐데, 아직도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언젠가 '불펜포수즈'가 한데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구 경기에서 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매 경기 200개 가량의 공을 받으며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 전반을 이끌어나가며 팀의 안방을 책임진다. 그 팀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포수의 헌신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안다훈이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맡은 포지션 역시 다름아닌 포수. 그의 야구 인생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포수'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한 후 이렇게 답했다.
"뭔가 정리하기가 어렵네요. 근데 확실한 건 포수를 안 하면 야구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저는 포수라는 포지션에 자존감도 높고, 자신감도 있어요. 뭔가 특별한 한 단어로 얘기할 순 없겠지만, 단순하게 말해서 '포수가 나다' 약간 이런 느낌 아닐까요? 내가 포수다!"
그 어느 포지션보다도 많은 헌신이 필요한 '포수'. 물론 안다훈이 선수생활을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강력한 투수에게는 그의 기량을 이끌어줄 훌륭한 포수가 필요하듯이, 같은 팀원의 뒤를 받치고, 그들이 빛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안다훈 또한 누군가에게는 '환상의 배터리' 같은 존재일 테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 일을 묵묵히 이어오는 안다훈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포수라는 포지션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수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선수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듣고 나서 참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던 안다훈의 답변.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난 무엇보다 그의 꿈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비록 선수로서의 꿈을 이루진 못했더라도, 그의 꿈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제가 지도자를 진짜로 하고 싶은 건지도 궁금하고요. 원래는 그 꿈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불펜 포수를 오래 하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또 새로운 것도 하나하나씩 알게 되면서 야구단 일에 더 관심이 생긴 것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요새는 꽤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안다훈은 아마추어 지도자, 혹은 구단 프런트 등 여러 가지 진로를 동시에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여러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에 다양한 걸 보고 느꼈기에 고민이 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지금까지 묵묵히 버텨온 만큼 그에게 달콤한 결실이 주어졌으면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의 꿈이 이뤄지도록 한 그의 헌신이, 언젠가 스스로에게 돌아오기를. 그래서 다른 이들 못지않게 밝은 빛이 그의 앞날에 비춰지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