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아요.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복인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몸이 잘 만들어진다는 느낌도 많이 들어요."
숱하게 경험한 전지훈련이지만, 주장으로서 선수단을 이끄는 입장으로 온 건 처음이었던 그. 워낙 팀원과의 뛰어난 케미를 보여왔던 오지환이기에, 문득 누구와 방을 쓰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외였다.
"운이 좋게 주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서, 지금은 혼자 쓰고 있습니다" (흡족)
달라진 직책만큼이나 그는 확연히 달라진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그의 데뷔 시즌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절로 격세지감이라고 느낄 수밖에.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가볍게 스프링 캠프 이야기로 운을 띄우고 나자,
인터뷰는 막힘없이 술술 진행됐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22시즌 비하인드부터 팬들에게 인기 폭발 중인 아들 세현이와 세하 이야기, 그리고 사실상 '종신 LG'를 확정지은 다년계약까지. 우리는 30분을 살짝 넘긴 시간을 정말 많은 이야기로 꽉꽉 채웠다.
그리고 이날 내심 기분이 좋았던 건, 오지환 역시 내 질문에 너무나도 정성스럽고 긴 답변으로 화답해줬다는 거였다. 보통 원고를 쓸 때 5~6줄이 넘어가면 '긴 답변'을 해줬다고 느껴지곤 하는데, 이날의 원고는 거의 대부분이 '매우 감동스러울 정도로 긴 답변'으로 가득했다.
편집한 게 이 정도
충분하다 못해 황송할 정도로 많은 분량. 이 정도의 분량을 마주하니, 나 또한 원고를 쓰면서 최대한 깔끔하고 정갈하게 그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다.
이날의 대화를 절대 허투루 남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예전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얘기를 깊게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오지환은 이날의 인터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른 것보다도 원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질문지를 짜면서 참고한 정우영 캐스터의 인터뷰 기사다. 다년 계약을 체결한 직후에 진행한 인터뷰다 보니, 준비 과정에서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이 기사에 적힌 오지환의 언변에, 애리조나로 떠나기 전부터 일찌감치 감동을 잔뜩 받은 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 깊은 말들로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뇌리 속에 남은 건 이것이었다. 바로 '잠실의 철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주전으로 도약한 2010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에게 딱 어울리는 목표였다.
그리고 23시즌 역시 LG의 내야를 든든히 지키며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오지환. 잠실의 철인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습관을 강조하고 싶어요. 주전이라면 매경기 9이닝을 전부 소화할 능력을 갖추는 게 당연하고, 그게 프로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준비가 돼 있다고 할 수 있고, 기회도 찾아오는 거거든요.
그에겐 '주전'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그 이름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가득했다. 원고의 제목처럼, 그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제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제 야구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 거라고 믿어요."
이날 이후로 꼭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기로 다짐했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정신없이 할 일을 마친 후 기념 사진을 찍으며 내가 오지환 선수에게 건넨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엘린이로 자란 내게 그는 정말 큰 의미를 갖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병규, 박용택 등 숱한 영웅들을 보며 자랐지만, 1군에 데뷔한 순간부터 직접 지켜보고 응원해온 건 그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오지환의 야구를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그의 성장과 함께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줍게 내민 명함에 받은 사인
숙소에 돌아와 찍은 사인볼과 사인 명함.
벌써 4개월도 더 지난 기억이지만, 여전히 이날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떠오른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오지환 선수.
제 인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할 최고의 30분이었습니다.
원고에 쓴 맺음말이자 LG의 캡틴인 그에게 바치는 헌사
2년 차부터 트윈스의 주전 유격수로 낙점되어, 말 그대로 숨가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 오지환.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유독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함께였다. 데뷔하자마자 1군에서 오롯이 모든 풍파를 견뎌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추스를 여유도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오지환의 뒤를 따라 점차 채은성, 정주현, 최동환 등의 입단 동기들을 포함해 이형종, 유강남 등이 1군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의 옆을 지키기 시작했다. 거기다 앞서 팀을 지켜 온 오지환 역시 기량을 만개했고, 그들의 성장과 함께 LG는 점점 강해져 갔다.
드디어 오지환의 앞에도 조금씩 '외롭지 않은 길'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출처 - 유튜브 '슈퍼소닉 이대형')
하지만 오지환은 다시금 외로움과 마주해야 했다. 22시즌이 끝나고 입단 동기 채은성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함께 LG의 중흥기를 이끈 이형종과 유강남 역시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김현수, 박해민, 박동원 등 새로운 선수들이 그와 함께 팀의 중심을 잡고 있고, 젊고 유망한 후배들의 성장으로 LG는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강팀이 됐다. 이제는 모든 짐을 혼자서만 짊어지지는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딘 동료들과 헤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우승이라는 대업을 끝내 같이 일구지 못했다는 것. 오지환에게는 이 사실이 큰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그를 오랫동안 응원한 한 명의 팬으로서, 그가 느낄 외로움의 크기가 너무 크지만은 않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걸어가는 그 길의 끝에, 우승이라는 달콤한 결실이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