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34호 (2022년 6월호)
코너 : DUGOUT Dream
인터뷰이 : 한화 이글스 윤대경
일자 : 2022년 5월 10일
형식 : 전화 인터뷰
에디터 일을 하다보면
선수를 직접 본다는 설렘의 감정이 크지만,
어느 순간 선수와의 만남보다도
인터뷰와 원고의 양을 더 신경쓰는 일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정해진 분량보다 적은 길이로 인터뷰가 끝나면
원고를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참으로 괴로운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긴 인터뷰를 하면
분량 대신 온전히 선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소개할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한없이 넘치는 분량을 선사한 은인(?)같은 존재다.
<DUGOUT Behind> 여섯 번째 주인공,
역대 최고의 인터뷰이 중 하나였던 한화 이글스 윤대경이다.
"유명한 선수들만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인사 한마디로 시작해보자는 말에 "이거 라이브는 아니죠?"라고 되물어봤던 윤대경. 처음엔 조금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한 두마디를 주고받자 어느새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날도 인터뷰 초반에는 분량을 지속적으로 신경쓰고 있었다. 흔히 원고의 분량은 도입부의 속도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초반 흐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
특히 직전 호에서 맡은 원고의 분량이 워낙 적었던 탓에 이날은 유독 인터뷰 초반에 윤대경의 답변과 시간을 계속 확인하게 되더라. 하지만 이날 인터뷰가 시작한지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난 이렇게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분량 걱정 없다!!"
첨부한 포스트의 내용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윤대경은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첫 풀타임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많은 어려움을 겪은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까지.
걱정이 없어지자 난 어느새 그가 말해주는 사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디오 청취자라도 된 것처럼.
인터뷰 내용을 원고에 전부 담지 못했을 정도로 흘러넘쳤던 분량.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의 간절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6년 간의 삼성 생활과 방출, 그리고 일본 독립리그를 거쳐 감격스러운 1군 데뷔까지. 2020년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조금씩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 그였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돌이켜 보면 꿈을 놓지 않고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을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 사실 희망이라는 게 그렇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아야 힘도 나고 의지도 다질 수 있는 것.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오히려 있던 의지조차도 꺾여버리지 않던가.
윤대경 역시 이런 심리 상태를 겪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그 상황에 매몰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비록 방출이라는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뒀고, 조금씩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잘 던지는 게 다가 아니었어요.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간 거니까, 아무리 일본에서 잘해도 한국에서 절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KBO리그 관계자분들께 연락도 돌리고, 제 영상도 보내면서 스스로를 어필하려고 했어요."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보냈을 나날들. 그리고 윤대경의 노력은 끝내 빛을 발했다. 이상군 당시 한화 스카우트 총괄이 직접 일본으로 그를 보러 갔고, 결국 윤대경은 한화 이글스의 투수로 영입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2019년 7월의 일이었다.
여러모로 아픈 기억이 많은 시간이었지만, 방황의 시간은 그에게 소중함이라는 무기를 갖게 해줬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중함은 그가 야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주된 원동력이 될 거다.
지금 누리는 일상을 당연하게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먼 길을 돌아온 만큼, 나태해지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인터뷰는 친구랑 수다를 떠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전화 인터뷰였음에도 무려 58분에 이르는 역대급 분량이 완성됐다. 이는 아직까지 내가 맡은 인터뷰 중 단연 최장시간을 자랑하며,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대신 1분 차이로 아쉽게 2위를 기록한 인터뷰가 하나 있긴 했다.
유일하게 1위의 아성에 도전한 그 인터뷰 역시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다만 전화로만 얘기를 나눈 게 못내 아쉬워서였을까.
문득 그와 실제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던 것.
그래서 그가 잠실로 오는 날,
경기 전에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는 흔쾌히 시간을 내줬고,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대면으로는 처음이라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윤대경은 정말 반갑게 웃으면서 나를 맞아줬다.
더운 날씨에 먹으라고 챙겨준 피크닉은 덤.
그는 잡지를 잘 봤다는 인사와 함께
발간된 잡지와 노트에 멋지게 사인을 해줬다.
특히 내 이름과 에디터라는 단어까지 써줬는데,
이날부로 난 더욱 열정적인 에디터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에디터로서의 광기는
그의 인터뷰로부터 시작된 건 아닌지 추측해본다.
"제가 너무 횡설수설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정리 좀 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덧붙인 말이다. 통화가 꽤나 길어지자 스스로 두서가 없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대경 선수. 지금 돌이켜봐도 최고의 인터뷰였습니다.
통화도 해보고, 직접 만나보고 나서 내가 받은 윤대경에 대한 인상은 '참 붙임성 좋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의 야구 자체를 응원하게 된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야구에 임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물론 작년에는 선발투수로서 부침을 겪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이번 시즌부터 다시 불펜투수로 돌아왔고, 조금씩 2020년 당시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때를 뛰어넘는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는 중. 원고에도 썼던 것처럼, 1구 1구의 소중함을 아는 그가 지금의 퍼포먼스를 이어가 다시 한번 리그 정상급 불펜으로 돌아오길 기도해본다.
<2023시즌 윤대경 성적> (5월 12일 기준)
11경기 / 13.1이닝 / ERA 0.68
피안타율 0.174 / WHIP 1.05
파이팅입니다! 윤대경 선수.
조만간 다시 야구장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