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44호 (2023년 4월호)
코너 : DUGOUT Futures
인터뷰이 : 키움 히어로즈 장재영
일자 : 2023년 2월 9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애리조나 스코츠데일 키움 스프링 캠프장
유망주.
특정 분야에서 앞으로 잘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
유독 스포츠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이 단어는
장래에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에게 붙여지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 선수의 가치는
현재보다 미래에 무게가 실리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지금의 모습이 아쉽더라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관대해지기 마련.
나 역시 젊은 선수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고,
성장을 이뤄내기를 간절히 바라곤 한다.
그리고 이건 단연 특정 구단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모든 팀의 전도유망한 젊은 새싹들이
꼭 훌륭한 거목으로 자라나길 기도한다.
<DUGOUT Behind> 여덟 번째 주인공,
현재 KBO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인 장재영이다.
"처음에는 '가서 또 헤매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가장 컸어요. 하지만 가서 잘하면 제가 희망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겠더라고요. 저한테도 큰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느낍니다."
2022 한국시리즈가 끝난 직후이자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약 세 달 전이었던 지난 11월, 장재영은 호주로 떠났다. 바로 ABL(호주 프로야구) 질롱 코리아 소속으로 윈터리그에 뛰기 위해서 파견을 간 것이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모처럼 찾아온 짧은 휴식기였지만, 그는 기꺼이 그 시간을 반납했다.
비록 풀시즌인 10라운드 중 6라운드까지만 소화하며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시즌 중반까지 질롱의 선발 로테이션을 든든하게 지켰다. 총 여섯 번의 선발 등판에서 장재영은 30이닝 평균자책점 3.30이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경기당 9개가 넘는 37개의 탈삼진과 1.03의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는 덤이다. 손톱 부상으로 인해 짧은 이닝을 소화한 한두 경기를 제외하면, 주축 선발투수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단연 최고는 마지막 등판이었던 12월 18일 멜버른 에이시스와의 경기. 그는 무려 8이닝 동안 10개의 삼진을 잡으며 단 2실점만을 허용했다. 투구수는 개인 최다인 115개, 볼넷은 한 개도 없었다.
7회를 마친 시점에서 투구수가 이미 100개에 육박했기에 8회에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는데, 장재영은 마지막 이닝을 삼진 두 개를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에게 여러모로 큰 의미로 남을 인생투. 경기를 결자해지하면서 많은 걸 얻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얻은 건 선발투수로서 본인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저도 이렇게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린 거니까요. 또 자신감도 얻었어요. 그동안 프로에서 짧은 이닝만 던졌잖아요. 제게 주어진 1이닝도 못 채운 경기도 많았지만, 하지만 이 경기를 통해 8이닝이나 던질 수 있고 이런 투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장재영이 언젠가 KBO에서도 선발로 나서 압도적인 호투를 펼친다면, 이 경기가 생생히 떠오를 듯하다. 그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가 충분히 뛰어난 선발투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게 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키움의 부동의 에이스로 각성한 안우진. 연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안우진은 "장재영은 완벽주의인 것 같다"라고 밝혔는데, 이 부분을 당사자인 장재영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에디터 역시 질롱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이 안우진과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도 안우진에게 공을 던질 때 발가락에 어떻게 힘을 주냐고까지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완벽주의자인 그가, 오히려 이제는 그런 성향과 거리를 두고자 노력 중이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조금씩 버리려 하고 있어요. 원래는 폼을 예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런지 발끝부터 손끝까지 전부 신경 써서 던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게 다 소용없겠더라고요.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는 게 가장 우선이니까요."
워낙 대형 유망주로 촉망받는 그이기에, 이런 완벽주의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어렸을 적부터 천재로 평가받은 많은 이가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등의 경향을 보이지 않던가. 하지만 장재영이 이토록 완벽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건, 어쩌면 생각만큼 야구가 잘 풀리지 않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대를 보내는 사람들만큼이나, 그 또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컸을 테니.
"특별한 멘탈 관리법은 없어요. 야구를 잘하면 자연스럽게 멘탈도 좋아지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어요. 그래서 더더욱 완벽하게 던지려고 하는 걸 줄이려고 해요. 제 실력을 인정하고,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않고 한 계단씩 넘는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이뤄가고 싶습니다."
조급함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차분히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가며 나아겠다는 결심. 이 말을 들으니 나는 괜시리 안심이 되고, 그가 한층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꽃마다 만개하는 계절이 다르듯이, 선수들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 역시 천차만별이다. 이번 성장이, 그가 조금씩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
사실 갑자기 변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작년, 재작년보다 드라마틱하게 바뀔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더 나은 제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대망의 화보 촬영 타임.
이날 훈련이 끝난 직후에 진행한 탓에
장재영 선수의 휴식 시간을 위해서라도 빠른 진행이 필요했다.
정신없이 인스타에 올릴 스틸컷을 찍던 도중,
우연찮게 그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키움 선수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김태진, 임병욱, 이정후, 임지열 선수.
이미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부터 막내를 잔뜩 놀리던 그들이었는데,
화보를 찍을 때도 어김없이 존재감 뿜뿜.
하필 이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게 신의 한수였다.
"처음엔 시차 적응이 잘 안 됐는데, 지금은 아침 7시 반에 눈을 뜨는 게 익숙해졌어요. 원래 이렇게까지 일찍 일어나진 않았는데 여기 오니까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잘 적응했습니다."
21시즌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이후로 어느덧 프로 3년차를 맞은 장재영. 하지만 코로나19 전후로 데뷔한 많은 선수가 그렇듯이, 그에게 팬데믹이 없는 시절의 프로 생활은 처음이었을 터. 어쩐지 벌써 2년이라는 프로 경력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신인 같은 풋풋함을 풍기더라니. 팀 선배들의 집중 놀림을 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사실 본지와의 만남에 앞서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 한탕(?)을 이미 뛰고 온 장재영. 일일 훈련 일정을 마무리하고, 당장 밥을 먹으러 가야하는 시간이었지만 (심지어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은 이미 다 밥을 먹고 이동하는 시간이었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인터뷰를 소화해줬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으로서는 한없이 감사함이 드는 대목.
어쩌면 장재영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단순히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실링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행동과 인상,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묘한 매력까지. 이러니 다들 자연스럽게 그의 등판을 지켜보고, 응원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제가 잘하든 못하든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이랑 응원을 많이 해주시는데, 일일히 답변을 못 드려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제가 올 시즌에 꼭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게끔 열심히 준비해서 잘할 테니까,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장재영 선수!
조금 빠르지 않아도 괜찮으니, 걸어가는 그 길 계속해서 지켜보겠습니다.
"올해 꼭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서고 싶어요. 선발이 아니더라도 1군에서 뛰는 게 목표입니다."
1군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는 걸 목표로 삼은 장재영. 그리고 2023시즌 그가 맡은 보직은 바로 선발 투수였다. 외국인 투수 말고도 안우진, 최원태, 정찬헌 등 국내 선발이 탄탄한 키움이기에, 운이 좋게도 그에게는 조금은 부담을 덜고 온전히 자신의 도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2년 여만에 오른 선발 마운드. 그리고 그는 차근차근 성장세를 보여줬다. 첫 두 경기에서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5월 한 달동안 퓨처스리그에서 재정비를 거친 뒤 6월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고, 7월 5일 NC전에서는 드디어 감격적인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기에 이른다.
불펜 등판도 병행하고 있고, 아직 소화 이닝도 5.1이닝이 최대인 만큼 더 나아갈 길이 멀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것. 그가 질롱에서의 호투에서 얻은 희망이, 빠른 시일 내로 현실로 이뤄지길 열렬히 응원해본다.
그리고 이건 인터뷰 진행에 도움을 주신 키움 구단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
훈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에스코트를 해주셨고
스태프 분들 수에 맞춰 스캠 기념 모자와 티셔츠도 주셨다.
이후 선수 식당에서 식사까지 제공해주신 건 덤.
현장에서 늘 구단 담당자분들의 호의에 감동하곤 하는데, 이날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