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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Feb 19. 2022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 하루의 가치

hwain_film 추천 no. 14

제목: 사랑의 블랙홀

감독: 해롤드 래미스

출연: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등

네이버 평점: 9.18

개봉: 1993


 1초가 모여 1분이 되고, 1분이 모여 1시간이 되는 비슷한 원리로 하루가 만들어진다.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1년이라는 시간이 될 때쯤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소중함과 하루의 가치를 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소개한다.


 1. 90년대 영화는 이랬다.


 이 영화도 곧 있으면 서른 살이 된다. 출연 배우들도 작품 속에서 '젊은이'라고 불리지만 현재는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백발의 노년 배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빌 머레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73세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소싯적 전성기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90년대의 영화들은 수채화처럼 흐릿하지만 부드러운 매력이 담겨 있다. 정감 있는 색감의 화질부터 영상미까지 그 시절 특유의 풋풋한 감성이 있다. 전달하려는 감독의 메시지가 뚜렷하고 배우들의 개성이 분명하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과장되고 유치한 연출이 작품에 풋풋한 매력을 배가한다. 이 작품 역시 지극히 90년대스러운 작품이다. 그 시절의 아련한 감성이 여전히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화려함과 예술성에 중독된 현대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풋풋함 때문이 아닐까.


 2. 재밌는 설정, 심오한 메시지


 이 작품도 80~90년대를 강타한 타임루프 영화들 중 하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바로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는 설정. 지금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당시에 주로 등장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아닌 반복되는 하루에 갇혀버린다는 설정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반복되는 하루를 주인공인 '필 코너'만 기억해낸다는 부연 설정도 재미있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루하루가 쌓이지 못하고 오전 6시부터 시작되어 다음날 오전 5시 59분을 끝으로 모래성처럼 휘발되는 이 재밌는 설정은 점점 심오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다. 우리는 어느새 안정을 위안삼아 하루하루를 반복한다. 매일 집 밖에서 나와 같은 사람,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주인공 '필'은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이 시간의 쳇바퀴 속에 빠졌지만,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이유로 시간의 쳇바퀴에 제 발로 들어간다. 더 이상 주인공의 모습이 유쾌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3. 하루의 가치


 하루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1시간보다는 매우 길고 일주일보다는 매우 짧은 하루라는 시간은 우리 인생 속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여유'다. 우리는 '하루아침에'라는 말로 극적인 순간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바쁘니 내일 봅시다'라는 말로 잠시 여유를 두기도 한다. 하루가 여유의 최소 단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루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짜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하루를 낭비해도 다음날이 또 있고, 내가 보낸 하루가 어디 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에, 하루의 가치는 쉽게 저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은 '쌓이지 않는 하루'라는 설정을 통해 오히려 하루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우리는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지만 하루가 모래성처럼 쌓이지 않고 반복된다면 인생과 나의 존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느낌이 들 것이다. 


 4. 하루의 가치를 아는 방법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하루의 반복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된다. 매일매일 흩어지는 하루 때문에 타인들과 교감할 순 없어도 그 하루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자신과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은 '자신과의 교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내가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썼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하루의 가치는 절대로 저평가되지 않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어제와 조금은 다르게 하루를 살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제 발로 들어온 쳇바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5. 한 줄 평- 나만 알고 있어도 충분한 내 하루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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