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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20. 2022

# 4. 살인청부업자에게 추억은 없다

現)주앙헬레스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경감 윤종탁*

전 세계 한국인 피살사건의 30%, 매년 10명이 피살당하는 필리핀에서  청부살인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코리안데스크가 있다



   

      Ⅰ. 필리핀에서 살인을 청부하다

      Ⅱ. 용의자 특정과 검거는 끝이 아니다

      Ⅲ.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Ⅳ.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 필리핀에서 살인을 청부하다


2020년 7월 1일 나는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의 코리안데스크 근무를 명 받았다. 내가 원한 것이고 경험해 보고 싶은 근무였다.     

파견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가장 많이 공부한 것은 필리핀에서 발생한 살인 등 필리핀 교민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사건들이었다. 내가 맞서야 하는 현실에서 전임자와 인수인계 기간은 3일에 불과하므로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나 홀로 근무지에서 나의 임무를 실수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필리핀의 수많은 강력사건 중에 살인사건들만 살펴보았다.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5건의 살인, 16건의 납치, 강도 범죄로 영화 범죄도시 2의 모티브가 된 필리핀 살인기업 사건, 필리핀 경찰이 한인 사업가를 납치하고 필리핀 경찰 본청에서 살해한 후 화장하고 변기통에 버린 지익주 씨 사건, 재산 문제가 있던 한인이 고용한 킬러가 한인 피해자의 사무실로 찾아와 ‘WHO IS MR PARK?’이라고 묻고 타깃을 확인 후 총으로 저격한 3초 살인사건, 한국인 3명을 사탕수수밭에서 살해한 박왕렬 사건 등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즐비했다.      


여기 필리핀에서 나는 CIDG(Criminal Investigation and Detection Group, 한국의 광역수사대와 유사)의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나, 팀장도 팀원도 없다.

오로지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내가 혼자서 뛰어들어 해결해야 한다.     


발령 후 2020년 12월 18일 늦은 저녁 9시경, 필리핀 앙헬레스 코리안타운 내 피해자의 집 앞에서 필리핀 킬러가 사제 총기로 살해를 시도하였으나 불발되어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Ⅱ. 용의자 특정과 검거는 끝이 아니다     


위 신고 접수 후 앙헬레스 한인회가 만든 자율방범대 안전대책 위원회(앙헬레스 코리안타운에 강력사건이 빈발하여 만들어진 교민 자치조직)와 앙헬레스 CIDG와 함께 현장에 출동하였다.     

앙헬레스 CIDG는 증거가 부족하고,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 접수조차 거부하였다. 나는 이들이 수사 의지가 없음을 알고 발길을 돌려 관할 파출소로 찾아가 사건 접수를 요구하였고 그 파출소에는 이미 많은 교민들이 도착하여 사건 접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필리핀, 특히 앙헬레스에는 지난 2016년 10월 현지 경찰들이 한인 사업가를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하고 경찰청에서 살해한 사건 등으로 필리핀 현지 경찰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       

필리핀 경찰에게 한국 경찰로서 정당한 사유 없이 사건을 접수하지 않으면 한국대사관과 한국 경찰청을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한 후에 그나마 사건이 접수될 수 있었다.      


그 후 피해자는 평소 환전 등으로 거래업무가 있고 1억 원의 채무가 있으나 변제기일을 뒤로 미루고 있던 L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며 피해자의 사무실로 L씨를 불렀고 나에게도 동석을 부탁했다.   

용의자 L씨는 고용한 킬러가 범행에 실패한 것을 알았으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리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피해자는 모든 수신통화를 자동 녹음하고 있다고 하며 불상자가 쌀 배달을 직업으로 하는 피해자에게 전화하여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쌀 배달을 요청한 전화 통화 녹음 내용을 들려주었다.     

장시간의 대화로 용의자 L씨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휴대전화에서 쌀 배달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용의자의 목소리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피해자는 L씨에게 쌀 배달을 요청하는 ‘00으로 00시간에 배달해 주세요’라는 문장을 따라 해 보기를 요청하였다.    


어느 정도의 대화로 긴장이 풀린 용의자 L씨는 요청한 문장을 따라서 하였고 피해자는 그 말을 그대로 저장하였다.


용의자는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나에게 임의 제출하였다. 용의자가 건넨 휴대전화는 평소에 쓰는 전화기가 아닌 제2의 휴대전화였고, 그 휴대전화로 킬러를 구하고 청부살인을 실행한 것이다.  

     

피해자는 용의자가 건넨 휴대전화를 들고 사건이 접수된 관할 파출소로 찾아가 제출하자 관할 파출소는 ‘한국 경찰이 압수한 휴대전화는 증거능력이 없어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라며 아무런 증거도 없이 용의자를 검거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교민들은 평소 L씨와 관할 파출소간의 유대관계가 있었음을 나에게 알려 주면서 사건 수사를 하지 않으려는 수작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파출소 담당 수사관(필리핀은 파출소마다 직접 수사를 하는 수사관이 지정되어 있다)에게 용의자가 임의로 제출한 휴대전화이니 증거능력에 문제가 없고 휴대전화의 내용을 보면 킬러를 구하고 살인을 교사하는 문자메시지와 대화 내용이 있음에도 사건 접수를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했다.

그 담당 수사관은 대략 5분 정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허리에 찬 총을 꺼냈다가 닦았다가 다시 총집에 넣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사건을 접수하지 않는 이유를 필리핀 법조문에 따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한국 교민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것을 한국대사관과 한국 경찰청에 정식으로 보고하겠다.”라고 하였다. 그제야 담당 수사관은 처음으로 웃으면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사건을 접수하겠다.”라고 말한 후 용의자 L씨가 필리핀 킬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 피해자에게 고소장을 받자마자 용의자 L씨를 체포하였다.

 

이때가 범행이 발생하고 난 다음 날 새벽 5시였다.

나는 유치장에 수감된 용의자 L씨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L씨, 코리안데스크 윤경감입니다. 본인이 보시기에 여기 대화 내용과 본인의 방금 한 말의 억양과 말투가 어떤 것 같은가요?”

용의자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L씨 혼자 하신 겁니까?”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용의자는 조금씩 천천히 답하기 시작했다. “경감님, 저와 같이 사주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이 더 나쁩니다. 할 말이 많습니다.” 그렇게 용의자는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다른 용의자에 대한 진술을 진술서로 작성하기로 하였다.      


나는 필리핀 경찰청으로 파견된 한국 경찰이다. 따라서, 필리핀에서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나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감은 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밤을 꼬박 새웠지만, 조금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용의자를 특정하고 증거자료를 제출하였으며 용의자가 체포되어 구금되었으니, 이제 사건은 끝난 것이며 이후부터는 필리핀 사법당국이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경찰청이 필리핀에 경찰을 파견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의 뿌듯함을 느꼈으나 곧 알게 되었다.      

필리핀에서는 용의자를 특정하고 검거한다고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Ⅲ.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용의자 L씨가 살인교사 혐의로 검거된 후, 바로 앙헬레스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보석신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앙헬레스 검찰청에 확인해 보니 정말로 용의자 L씨가 2만 페소(한화 50만원)의 보증금으로 3~5일 이내에 석방 예정이라는 것이다. 살인교사, 그것도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하여 구금된 자가 보석으로 석방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한국 경찰로서 한국의 법체제에 익숙하여 한국의 기준으로 여기 필리핀, 그것도 앙헬레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청을 거친 후 용의자가 구금되어 있는 앙헬레스 2번 파출소로 가는 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지금 용의자 L씨는 인터폴 수배는 물론, 국내 수배도 없다. 석방된다면 도주할 우려가 높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한참 고민 끝에 결국 결심했다.

‘이 사건으로 인터폴 수배서를 받으면 된다. 인터폴 적색수배 서가 있으면 보석이 되더라도 이민국 수배자 검거전담팀에서 신병을 인수하여 외국인 수용소에 입감 시킬 수 있다.’    

 

필리핀 코리안데스크담당관으로 발령 나기 전에 경제팀에서 10년간 수사한 경력은 나의 강력한 무기였다. 나는 총도 없고, 팀도 없지만, 대한민국 경찰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다.     

우선은 경찰청에서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도록 급히 피해자를 만나 필리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한국 경찰청에 지원을 요청했다.

 

내가 홀로 근무하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경찰청 인터폴계 신OO 경감은 발생 보고와 사건 접수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를 받은 즉시, 국제범죄수사대에 사건을 배당하였고, 국제범죄수사대는 사건을 접수한 후 체포영장 신청 준비를 하였다. 다음 날 피해자 진술서와 녹취파일, 용의자 자백 진술서를 토대로 관할 검찰청을 찾아가 사안을 설명하고 법원에서 단 하루 만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으며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는 인터폴 본부에 적색수배서를 신청했고 4시간 만에 발부받아 국제공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틀 후 보증금 2만 페소(한화 50만 원) 납부 조건을 내용으로 하는 용의자 L씨 석방 결정 공문이 L씨가 구금된 파출소에 도착했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고, 살인청부업자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이유라고 한다.      

코리안데스크 팀장 김OO 경정은 이민국 수배자 검거 전담 팀장에게 즉시 용의자 신병 인수를 요청하였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20년 12월 말은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에 이른 상황으로 필리핀의 공무원들은 1/2만 출근하는 상황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필리핀은 연말에 모든 관공서가 쉰다.    

여기는 필리핀이니 내가 적응해야 했다.   

    

이민국 수배자 검거 전담팀장은 인수할 인원이 없음을 이유로 용의자를 구금한 관할 파출소에 보석으로 석방되더라도 신체적 구금을 대행하도록 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관할 파출소는 법원의 결정이 우선이라며 용의자를 석방했다.     

 나는 용의자가 석방된 날부터 이민국이 검거 작전을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용의자를 주시하며 필리핀 이민국이 검거 작전을 개시하기만을 기다렸다.     

한 해가 지나고 2021년 1월 초순경, 이민국 수배자 검거 전담팀에서 준비가 되었으니 작전 일자와 장소를 알려 달라고 한다. 사실상 필리핀에서 한국인 수배자 검거는 코리안데스크가  이민국 수배자 검거전담팀에 작전 요청을 하여 검거 작전이 개시되는 경우가 많다. 코리안데스크가 모든 준비를 마쳐야 검거 권한이 있는 필리핀 이민국과 같이 검거 작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Ⅳ. 대한민국 경찰이다     


이민국 검거전담팀과 함께 용의자의 소재 정보를 확인하고 잠복하면서 보석으로 석방된 용의자를 다시 검거하였다. 검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때까지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들었다.     

용의자 L씨 검거 1주일 후에 필리피노 살인청부업자를, 2주 후에는 공범을 모두 검거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였다.

필리핀은 청부살인사건이 다수 발생하였으나, 코리안데스크 담당관들이 파견된 이후에는 살인을 청부하였던 한국인 살인 교사범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이것이 코리안데스크 담당관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이다. 최근 필리핀 한인 커뮤니티 신문을 보면 코리안데스크를 어벤져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용의자 L씨를 검거한 후 필리핀 한인 신문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의 고무적인 발전이라는 표현까지 기사에 실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환상은 없다. 대한민국 경찰청에서 해외에 경찰을 파견하는 취지와 이유만 생각하면 된다. 해외에서 발생한 한인 청부살인사건 등을 순차적으로 해결하면서 청부살인사건이 급격히 줄었다. 범죄자는 검거될 것이 예상되는 범죄는 하지 않는다. 코리안데스크 담당관이 필리핀 교민들의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리핀을 거점으로 삼아 보이스피싱을 주도하거나 도주한 보이스피싱 사범 총책을 검거하고 조직폭력배 두목을 검거하여 송환시켜 한국 법정에서 심판을 받도록 할 수 있다는 것도 필리핀에 한국 경찰이 파견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리안데스크가 앙헬레스에 없었다면 제1심 재판만 5~10년이 소요되는 필리핀에서 청부살인을 사주한 범인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일반인 속에 섞여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나에게 보람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그러하다. 나는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  




* 現)주필리핀앙헬레스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2002년 경찰 입직, 용산·송파·수서 경찰서 경제팀(장), 수사연수원·중앙경찰학교·서울지방경찰청·서울특별시 특별사법경찰단 외래 강사(수사분야)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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