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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20. 2022

# 2. 오늘도 범죄자를 뒤쫓는, 나는 한국 경찰

前)주세부분관 경찰주재관 경정 오영훈*

그때는 위험한 상황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범인들을 반드시  잡아야만 했었고, 체포를 위해서는 정당한 근거가 필요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

 “나는 한국 경찰이다!(I am a Korean policeman)”라고 외친 것이다



     

      Ⅰ. 피해 신고는 늘어나고 해결책이 없었다

      Ⅱ. 절도범들이 눈앞에 보였다

      Ⅲ. 나는 한국 경찰이다

      Ⅳ. 전문 절도단을 마침내 잡았다

      Ⅴ. 마치면서



. 피해 신고는 늘어나고 해결책이 없었다

  

주필리핀 대사관 세부 분관은 대표적 관광지인 보라카이와 세부를 포함한 필리핀 중부지역을 관할한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까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한국 관광객이 필리핀 세부를 찾아왔다. 세부 공관은 분관이지만 영사콜센터에 접수되는 사건·사고 건수는 전 세계 우리나라 180여 곳의 공관 중에 10위 안에 포함될 정도로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종종 한국인 총기 피살사건도 발생하여 늘 긴장하며 일하는 공관이다.           


세부 분관에 신고되는 사건·사고 중에 가장 많이 신고되는 것이 절도 사건이었다. 2017년도와 2018년도에도 각각 250여 건의 절도 사건이 접수되었다. 가방이나 지갑만 도난당하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그 가방과 함께 여권까지 도난을 당해 귀국 항공편 연기 등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건·사고팀에 같이 근무하고 있는 허 실무관이

내 방을 찾아왔다.

“오영사님! 오늘도 세부에 있는 한인 식당에서 한국 관광객이 의자에 가방을 걸어 놓았는데 도난당했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허 실무관! CCTV를 보면 2, 3명이 같이 하잖아. 전문 절도단 같이 보여.

왜 필리핀 경찰이 못 잡지?”

“영사님! 필리핀 경찰은 용의자가 자국민이고 피해자가 외국인이라 크게 검거할 의욕이 없어요.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검찰에 사건 파일링(고소)이 안됩니다.”          

세부지방경찰청장을 찾아갔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대상으로 절도 사건이 매일 발생하고 있으니 예방 활동과 함께 적극적으로 검거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

세부지역 각 경찰서에 필리핀 경찰청장 명의의 공문은 하달되었지만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이나 담당 지역 형사들은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세부 분관에 경찰 영사로 부임할 때부터 절도 신고는 늘 나를 괴롭혔다. 세부 한인회에서도

매 회의 때마다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세부 분관 사건사고 처리팀에 나를 포함해서 5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책이 필요했다. 절도 사건 예방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세부공항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마트, 마사지샵에 배포를 했다. 여행사, 어학원 등 한국인이 모이는 각 기관 회의마다 방문하여 예방책을 홍보하였다. 심지어 사건사고 팀원 중에 한 명을 여행객으로 분장시켜 절도범을 찾아보자고 결의를 다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공관 직원들은 체포권과 수사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약 범행 현장에서 총기 피살이라도 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기에 시도하지 못했다. 모든 대책을 강구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방법은 없는 것일까?     


  

Ⅱ. 절도범들이 눈앞에 보였다  


2019년 1월 9일 저녁 9시경 연초 세부 한인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차를 몰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인회 양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사님! 차를 타고 가는데 한인회 단톡방에 올라와 있는 절도 용의 차량이 한인식당 앞에 정차해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순간 고민이 들었다. 용의 차량을 검문하려면 필리핀 경찰관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112 신고를 하면 되지만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같은 신속한 112 신고 시스템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필리핀 경찰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사이에 용의 차량이

정차해 있는 한인식당 앞에 도착했다.

내 차를 적당한 거리에 주차를 시키자 근처에 있는 양 회장이 차량 문 유리를 내리면서 용의 차량을 가리켰다. 흰색 용의 차량 안에 여러 명이 타고 있었다. 얼핏 5명은 차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했다.       

양 회장은 내가 한국 경찰이니 먼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관할 지구대에 신고하러 가야 하는데 그사이 용의 차량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용의 차량이 움직인다. 나는 신속하게 차를 운전해 용의 차량 뒤를 쫓았다. 양 회장도 내 뒤를 따라왔다. 이런 식으로 뒤를 쫓다가는 용의 차량을 놓칠 것만 같았다.

대로 모퉁이에 오토바이 여러 대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정차해 있었다. 교통난이 심각한 필리핀에서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상업용 오토바이다. 필리핀에서는 이것을 하발하발 이라고 부른다. 용의 차량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하발하발로 갈아타야 했다. 그 사이에 용의 차량은 멀리 가버렸지만 다행히 양 회장이 계속 용의차량을 쫓고 있었다. 양 회장은 휴대폰을 통해 용의 차량 위치를 계속해서 알려 주었다.

거의 한 시간을 추적하면서 용의 차량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마사지샵을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리핀 순찰차가 도로변에 보였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순찰차에 다가갔다. 아벨론 순경이라는 젊은 경찰관 한 명이 타고 있었다. 나는 한국 경찰주재관이고 지금 절도범들이 타고 있는 차량을 쫓고 있다,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벨론 순경은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앞장서고 순찰차가 내 뒤를 따라왔다.          

용의 차량을 쫓고 있는 양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용의 차량을 놓쳤다는 것이다. 놓친 장소를 물어봤다. 아이티 파크 근처 라훅 거리에서 놓쳤다고 한다. 그 순간 생각했다.

라훅 거리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명한 마사지샵이 있었다. 분명히 그쪽으로 올 거라 생각했다. 지름길을 이용하여 그 마사지샵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정차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출동한 순찰차에도 정차를 요청했다.

예측이 맞았다. 흰색 범죄 용의 차량이 내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Ⅲ. 나는 한국 경찰이다


절도범 용의 차량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교통량이 많은 거리라서 차들은 서행을 하고 있었다.

하발하발 운전기사에게 오토바이로 흰색 용의 차량을 가로막으라고 부탁했다.

오토바이가 용의 차량을 가로막았다.

용의 차량이 멈췄다. 용의 차량 안에 타고 있던 절도범 5명이 차량 문을 열고 순식간에 도망갔다. 나와 필리핀 경찰관은 도망가는 절도범들을 쫓아 뛰어갔다가 나는 다시 용의 차량 쪽으로

되돌아왔다.           

그때 한 남자가 용의 차량 쪽으로 다가와 나에게

“이 차는 내 차인데 당신은 뭔데 이렇게 하냐”라고 따져 물었다. 순간 생각했다.

절도범이 차를 버리고 도망갔다가 내가 혼자인 것을 보고 차를 찾기 위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네가 이 차의 주인이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나는 한국 경찰이다”

신기하게도 그 절도범이 손을 들어 투항 자세를 보인다. 재빨리 그 사람의 몸을 수색했다.

혹시나 총기를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다행히 총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 용의자의 손목을 잡았다.           

왕복 4차선의 모든 차량이 멈춰 서 있었다.

그때 가까이 있던 어떤 승용차 운전자가 나한테 무슨 일이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절도범들을 검거 중입니다, 차량 진행을 막아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그 운전자가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기에 서 있는 저 사람도

그 용의 차량에서 도망 나왔다고 알려 주었다. 그 절도범과 나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그러자 나에게 다가와 양손을 벌리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앗! 이것 봐라’ “나는 한국 경찰이다.” 이번에도

두 손을 번쩍 들면서 투항 자세를 보인다. 이런 것은 필리핀 경찰이 잘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그 사람의 몸수색을 했고 총기가 없음을 확인했다. 절도범 두 명을 양쪽 손으로 각각 잡았다. 총이 없으니 둘이 덤벼들어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겁은 났다. 이들의 태도가 자꾸 거칠어진다. 그래도 놓칠 수는 없었다. 두려움의 시간이었지만 의연함으로 이들의 기세를 제압해야만 했다.          


이때 아벨론 순경이 도망간 또 다른 공범 한 명을 잡아 왔다. 5명 중에 여성 공범 2명은 놓쳤지만 나머지 3명을 잡았다. 이제는 이 절도범들을 관할 지구대로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Ⅳ. 전문 절도단을 드디어 잡았다


아벨론 순경은 무전으로 관할인 마볼로 지구대 순찰차 출동을 요청했다. 순찰차가 도착했고, 용의 차량과 절도범 3명을 마볼로 지구대로

데리고 갔다.

우리나라 같으면 긴급체포 제도를 이용해서 체포하면 되지만 필리핀에서는 긴급체포가 없다. 현행범 체포를 폭넓게 적용하는데 이 3명은 조금 애매했다. 하지만 이 3명을 그대로 풀어 줄 수는 없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마볼로 지구대장과 상의했다. 마볼로 지구대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마볼로 지구대장이 절도범 3명의 주머니에서

 각 마약이 발견되어 마약 소지죄로 전부 현행범 체포했다고 전해 주었다. 마약 소지죄는 보석으로 석방이 되지 않는다. 절도범 3명이 마약 소지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씩 웃는 지구대장의 얼굴로 보았을 때 본인도 이들을 풀어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을 느낀 모습이었다.

영사 활동하면서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인적 네트워크다. 마볼로 지구대장 하고는 1년 이상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도 적극적으로 마무리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세부 분관에 근무하는 허 실무관과 홍 실무관이 마볼로 지구대로 왔다. 홍 실무관은 세부 한인회 단톡방에 전문 절도범이 검거되었고 피해자들이 지구대로 올 수 있도록 안내 문자를 보냈다.

용의 차량 트렁크 안에서는 한국인 여권과 가방이 발견되어 증거물로 압수가 되었다. 3명 모두 구속되었다.     


Ⅴ. 마치면서      

    

세부 경찰서장은 나에게 서장 표창을 수여하며, 필리핀 범인들은 총기를 가지고 있고 위험하니 다음부터는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는 아벨론 순경과 마볼로 지구대 경찰관들에도 표창 수여 등 적절한 격려를 부탁했다. 세부 분관 총영사도 세부 경찰서에 감사 선물을 보내 사의를 표했다.

한인회 양 회장을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번 절도범들은 양 회장의 신고와 추적이 없었다면 결코 검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양 회장은 우리 공관 직원들의 노력을 칭찬했고 나에게는 양 회장 차량의 블랙박스에 촬영된 검거 장면 파일을 선물로 주었다.  


세부 교민신문에 전문 절도단이 마침내 검거되었다고 크게 보도가 되었다.

이후 세부 분관에서 경찰 영사로서 임무를 마칠 때까지 식당과 마사지샵에서 절도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사건사고 영사인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였지만 주재국에서는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경찰로서 오랜 습성이 범인들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발현된 것이다. 그때는 위험한 상황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범인들을 반드시 잡아야만 했었고, 체포를 위해서는 정당한 근거가 필요했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 “나는 한국 경찰이다. (I am a Korean policeman)”라고 외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빨리 코로나 19 이전으로 되돌아가 많은 한국 관광객이 필리핀을 방문하고 모든 여행이 사건·사고 없는 안전한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 現)부산청 부산진서 형사2과장

  1993년 경찰 입직, 부산 금정경찰서 강력팀장, 부산진서 수사2과장, 주필리대사관 세부분관 경찰주재관 (‘17. 9. 1~’20. 8. 3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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