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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14. 2022

# 1.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다 해주는 건데

前)주호치민대한민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 경정 천현길

베트남 휴양지 8세 여아 변사사건


아직 우리 아이 심장이 뛰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뭐라도 해봐 주세요!!! 제발요!!!

그렇게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졌던 귀엽디 귀여운 여덟 살 여자아이는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Ⅰ. 위급환자 신고 접수

Ⅱ. 8세 여아의 사망

Ⅲ. 영사 조력을 위한 현지 출장

Ⅳ. 사건의 전말

Ⅴ.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다 해 주는 건데...


 

Ⅰ. 위급환자 신고 접수     


호치민에서 4년간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본 변사체가 10여 년간 경찰서 형사 하면서 본 변사체만큼이나 많다고 이야기하곤 할 정도로 호치민에서는 변사사건이 많이 발생한다.

10만 여 교민이 살고 있고, 한국인 방문객도 연간 200만 명을 넘어서기에 교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변사사건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수많은 변사사건 중에 5월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안타까운 아이의 죽음이 있다.     


2019년 5월 어린이날이 막 지난 어느 날.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인 푸꾸옥(Phu Quoc) 섬에서 8살 여자아이가 물에 빠져 위독한 상태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호텔에 가족 여행을 왔다가 엄마가 튜브에 바람을 넣으러 간 사이, 아이가 풀에 빠져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후송한 상태라고.      

현지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서 도와 달라고 다급히 부탁하는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호찌민에서 먼 거리라 당장 가서 도와 드릴 수 없으니 의료진을 통해 상황을 확인 후 설명을

드릴 테니 의료진을 바꿔 달라 했다.  


     

Ⅱ. 8세 여아의 사망     

     

아... 이미 뇌사에 빠졌고, 강심제(에피네프린)를 투여하여 간신히 심장만 뛰게 하고 있는 상황이나, 5~10분 후면 사망할 것이라 한다.

다시 어머님을 바꾸어 달라고 한 후,

어렵게 말씀을 전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라고 운을 떼자 느낌이 오셨는지... "안돼요!!!"라고 하며 울부짖으신다.

"이미 뇌사가 온 상태이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하자, 연신 안돼요!! 안돼요!! 하신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아버님께서 전화를 바꾸어 받으시면서 "와서 좀 어떻게 도와주시면 안 돼요?" 라며 너무 절박하게 애원하듯 말씀하신다.     


호치민에서 푸꾸옥섬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리고, 이미 그 시각 항공편은 마감이 된 상황이었다.

의료진의 설명을 전해 드리자, "아니, 그래도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요, 심장이 저렇게 뛰고 있는데요. 어떻게든 뭐라도 해 봐주세요!!" 하신다.

나도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그 순간 감정이입이 되어 울컥해서 말을 더 잇기가 어려웠다.

저... 어머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요. 아버님께는 의료진 말을 그대로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는 의료진의 말을 전해 드렸다.

아... 안돼요!! 안돼요!! 하면서 전화기 너머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오늘 비행기 편은 없습니다. 내일 제가 직접 가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푸꾸옥섬에서의 이러한 사건사고를 대비해서 구축해 놓은 연락망인 한국인 호텔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자기 일처럼 도와주신다며 바로 준비를 하셔서 가셨다.

현지인들과 말도 안 통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한국인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부모님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몇십 분 후,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사망했다고...  


        

Ⅲ. 영사 조력을 위한 현지 출장  


다음 날

첫 비행기로 푸꾸옥 출장길에 나섰다.  

공항에 도착하니 경찰서 담당 공안을 같이 만나기 위해 유족분들께서 나와 계셨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또 바로 “도와주세요”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아... 그동안 수많은 변사자들의 유족을 만나보았지만, 이번은 감정을 추스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일단 담당 공안 빙(Binh) 대위를 만나 조사상황을 확인하고,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 없이 최대한 빨리 시신을 수습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사실 빙 대위는 경찰주재관인 나를 보자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사망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그 나라의 경찰주재관이 직접 와서 변사사건을 수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하면서 말이다.     

한국인 사건 처리에 최선을 다해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하며 시신을 보여 달라고 하니, 근처 병원에 안치되어 있는데 어제 유가족이 너무 심하게 오열을 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유가족은 경찰서에 대기하고 나에게만 보여주겠다 한다.     

유족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영안실로 향했다.


아... 평온하게 잠든 듯 차가운 안치실에 누워 있던 아이.

말간 콧물이 살짝 흘러 있었고 가슴에 CPR을 했던 선홍색 흔적만 없었다면, 금방이라도 잠에서 깨어 일어나 "어... 여기가 어디예요?" 할 것 같다.

조심스럽게 차디찬 볼을 어루만져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변사자에게 행하는 나만의 리추얼인 양발을 어루만져 주며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렴...'하고 마음속으로 빌어 줬다.

시신에 기타 특이한 외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빙 대위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는 호텔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Ⅳ. 사건의 전말  


140센티미터 수심의 물 미끄럼틀이 있는 풀장이 시신이 처음 발견된 곳이라 한다.

바로 옆 45센티미터 수심의 물 미끄럼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수심일 것으로 착각하고 물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서는 바로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유가족을 모시고 사고 당시 정황을 들어 보니, 역시나... 45센티미터 풀에 있던 미끄럼틀을 타다가 그 옆 풀에 있던 미끄럼틀을 혼자 타러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 한다.    

      

자세한 경위는 이렇다.

40대 초반의 부부는 8살, 5살 딸을 데리고 그 호텔에 휴가차 놀러 왔었다.

풀장도 구비되어 있어 가족호텔로는 딱인 그런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풀어놓고는 바로 풀장으로 나왔다. 얼마나 신났었을까... 비행기도 타고, 시설 좋은 호텔에 와서 풀장으로 바로 왔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45센티미터 수심의 물 미끄럼틀을 신나게 탔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튜브에 바람을 넣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엄마 껌딱지였던 둘째는 엄마한테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빠는 첫째 아이에게 엄마한테 다녀올 테니 물 미끄럼 타고 있으라고 했고, 첫째는 바로 그 옆 미끄럼틀을 가리키며 아빠 난 그럼 저 미끄럼틀 타고 있을게... 했다.

그렇게 자리를 비운 지 10여 분.

부부와 둘째가 튜브를 들고 수심 45센티미터의 풀에 왔을 때, 첫째는 없었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수심 140센티미터 풀에

왔을 때...

아이는 풀장 중간에 엎어져 둥둥 떠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부부는 바로 눈앞에 떠 있는 아이를 구하러 들어가지도 못하고, 으악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를 연신 외쳤고, 근처에 있던 다른 한국인이 이 소리를 듣고 아이를 건져냈다.          


이미 의식이 없던 상황

호텔 차량에 태워 CPR을 하면서 인근 병원으로 후송을 했으나...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Ⅴ.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다 해 주는 건데...        

  

비보를 듣고 한국에서 급히 오신 친척분들과 넋이 반쯤 나가 있는 부부께 비자 문제, 향후 시신 운구 절차 등을 설명드렸다.                              

다양한 수사 경험이 보상 관련 조언을 드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폭포 익스트림 스포츠 도중 사망한 한국 청년의 보험금이 2,000만 동(100만 원) 정도였고, 교통 사망사고 보상금이 4억 동(2,000만 원) 정도 선에서 결정되니 호텔 측과 협의할 때 참고하시라고 전해드렸다.  

   

그리고, 호텔의 한국 매니저에게는 같은 한국인인 만큼 최대한 보상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이러한 내 노력으로 소송 없이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설명을 다 드리고 난 후,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곁을 지켜드리는 것 외에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언니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알고 있는 둘째는 "엄마~ 언니는 병원에서 언제 와?" 하고 있고...

어머니께서 중간중간 아이 생각을 하며 하시는 말씀들은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색칠공부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이 색칠공부 책도 마저 못 칠했는데...

맨날 뭐 해달라고 하면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안 해줬는데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 걸...

우리 아이는요... 5살 동생에게 항상 양보만 하던 착한 아이였어요... 하시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속으로 얼마나 울음을 삼켰는지 모른다.

   

어느덧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고...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인사를 드린 후,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길...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음 날, 호텔 매니저와 부부께서 총영사관으로 찾아오셨다.

푸꾸옥이 그렇게 먼 줄도 모르고 무조건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곳까지 와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장례절차 지원이 다 끝났고, 운구 업체에서 나머지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방문이 필요 없었는데, 딸아이를 보낸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예의를 차리셨다.     

나 또한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다시 한번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명복을 빈다고 해드리고는 두 분을 보내드렸다.

그다음 날 항공편으로 안전하게 시신을 한국으로 모시게 되었고, 이렇게 푸꾸옥 섬에서의 여아 변사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아이야...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렴...      


에필로그|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수영장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수영을 하다가도 나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건가...

바로 근처에 엄마, 아빠와 동생이 있는데, 그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얼마나 가족들이 생각이 났을까...

엄마, 아빠를 얼마나 목이 터져라 외쳤을까...

바로 앞에 떠 있는 딸아이를 건져내지 못하고 소리만 질렀을 부모 생각...

이런 생각에 말이다.       


다시 한번 아이의 명복을 빈다.     

  



* 現)서울중랑경찰서 형사2과장

  1997년 경찰 입직,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팀장, 서울서초경찰서 강력팀장, 서울강남경찰서 경제범죄 수사1과장, 주호치민총영사관 경찰주재관(2015~2019)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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