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초기 한인 이주자들은 ‘애니깽’이라 불렸음. 애니깽은 용설란의 품종 중 하나인 헤네켄(Henequen)의 스페인어 발음인 '에네껜'을 한국인 노동자들이 애니깽으로 알아들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용설란(에네껜)은 그 줄기를 이용해 대형 선박용 밧줄로 만들었으며,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해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멕시코로 오게 되었다. 힘든 노동으로 인해 많은 한인들이 병사(病死)했고, 살아남은 한인들은 멕시코 내 각지로 흩어지거나 인근 쿠바 등으로 이주하는 등 우리 멕시코 한인 이민사의 슬픈 서막이었다>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 멕시코,
1521년 에스파냐 탐험대의 장군 코르테스에게 정복된 이후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이후 미겔 이달고 신부의 유명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을 계기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냈으나, 진정한 독립은 1910년 농민・노동자로부터 시작된 멕시코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진정한 의미로서의 국가적(역사적) ‘해방’을 이뤄냈다. 그 해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라 쿠카라차 (민초를 뜻함)들이 짓밟혀 왔는지...
1905년 4월 4일 당시 조선인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호에 몸을 싣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한 달여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메리다 지역에 도착했다. 새 삶을 찾고 배고픔을 벗어나기를 꿈꾸며...
하지만 경술국치로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그들의 진정한 해방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그들의 한인 후손들이 117년이 흐른 후에 한인 2세, 3세로서 멕시코(한반도의 9배 크기) 땅에서 또 다른 의미의 ‘해방’을 이뤄내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 접경하여 있고, 중남미 대륙의 중간에 위치하여 허브 국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멕시코에는 약 4백여 개의 크고 작은 우리 기업체가 진출하여 있다.
또한 유학생뿐만 아니라 새로운 꿈을 찾아 멕시코로 이주하는 신이민자들의 발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는 먼 옛날부터 수많은 ‘드림 시커(Dream Seeker)’ 들이 찾는 곳,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곳에 발을 내딛는 것일까...
경찰주재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나아가 외교관으로서 부임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속에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Ⅱ.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한 부임
‘11, 140, 500, 4’
언뜻 보면 암호 같기도 하고, 아니면 로또 추첨 숫자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혹시 자연 속에서도 우주에서도 인체 비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피보나치수열의 일종인가?
2020년 2월 경찰주재관으로서 멕시코 대사관에 첫 부임을 하였다.
이후 얼마 가지 않아 코로나19 팬데믹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멕시코도 21세기 신(新) 흑사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멕시코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재외동포들도 갑자기 등장한 병마(病魔)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멕시코는 코로나19 팬데믹(20년~22년) 기간 동안 약 32만 명의 사망자(세계 5위)를 기록,
사회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크나큰 시련을 겪었다.
‘11명’, 코로나19 팬데믹 기간(20년~22년) 동안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한 재외국민의 숫자이다.
수 십 년 동안 멕시코에서 살아왔던 평범한 가장, 일자리를 찾아 멕시코에서 갓 취업한 대학 졸업생, 회사 업무차 방문하였던 출장자... 설마라는 의구심과 함께 보이지 않는 병마에 감염되어, 이국땅에서 가족의 마지막 임종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생을 마감하였다.
대사관이 확인하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이 얼마나 더 있었을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140명’, 팬데믹 기간 동안 코로나19에 확진되어 병마와 싸워왔던 사람들이다.
사회적 격리와 차가운 시선 속에서 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민들을 위해, 경찰주재관은 의료 방호복을 착용하고, 의약품과 음식물을 전달하였다. 입원할 병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교민들을 위해 병원장을 만나 애원하기도 하고, 보건국장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사지(死地)를 헤매는 우리 국민을 보듬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경찰주재관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완치된 교민들은 감사의 말을 전화로 전하며, 직접 찾아와 마음을 전하고 싶으나 전염의 우려 때문에 전화로만 전하는 것에 죄스러움을 표했다.
그리고 팬데믹 기간 동안, 멕시코 대사관 소속 외교관 3명, 행정원 4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어 치료를 받았으며, 이 중 외교관 2명은 중환자실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500명’, 중남미 각 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이 멕시코를 거쳐 한국으로 귀국한 숫자,
우리 대사관은 이들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제공하였다.
에콰도르(76명), 과테말라 (70명), 니카라과(63명) 등지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를 포함, 우리 국민 여행객, 기업 출장자 등 병마와 싸우더라도 고국, 가족이 있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급작스런 팬데믹 광풍의 도래로 인해, 대부분의 항공 노선은 취소되고, 모든 공항의 입출국 규정이 까다로워졌다.
중남미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은 오로지 멕시코시티 공항!
우리 대사관은 항공사뿐만 아니라,
공항 관계자 나아가 멕시코 항공 교통국까지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멕시코시티 공항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힘들게, 우리 국민들을 애타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대사관의 이러한 노력으로 20년 5월 한-멕 직항노선 중단 이후, 우리 대사관의 재외국민 출국 지원활동이 외교부 발행 “우리의 특별한 귀국 이야기”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4명’, 죽더라도 한국에 가서 죽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는 교민을 에어 앰뷸런스에 태워 보낸 숫자이다.
멕시코에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여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내 부모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가족들의 열망으로, 에어 앰뷸런스 (의료시설이 구비된 전용 항공기로써, 멕시코-한국 이송 비용은 약 1억 원 이상이 소요)를 이용해 환자를 한국으로 보내드렸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는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폐가 돌덩이처럼 굳어 죽음을 앞둔 교민이 의료진의 노력과 가족의 헌신으로 목숨을 건진 스토리는 아직도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이러한 노력이 서울경제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엄마 살려달라, 멕시코서 고국행 에어 앰뷸런스 띄운 효심”)
막연히 나열된 숫자들, 숫자 하나하나는 단순한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을 하나씩 되짚어 보면 스토리가 풀어져 나온다.
수치로 표현한 숫자는 무색무취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오롯한 무게감을 느끼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Ⅲ. 3번이나 좌절된 아메리칸드림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은 1931년 출간된 ‘미국의 서사시’에 등장한 용어이며, 모든 사람이 풍족한 삶을 살고, 열심히 일한 성과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는 꿈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음>
21년 2월 어느 날,
미국 샌디에이고와 접해있는 티후아나市 경찰청 소속 경찰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년의 한국 여성 (63세)이 모든 소지품을 도난당한 채로 길거리에 앉아 어쩔 줄 모르고 있어 대사관에 신고를 접수한 것이었다.
해당 여성 (P씨)과 면담을 통해 입국 경위를 파악한 내용은 이렇다.
P씨는 과거 로스앤젤레스에서 장기간 거주하였으며, 한국으로 재 이주하여 살았으나, 어느덧 나이가 60이 넘으니, 옛 친구들과 가족이 살고 있는 나성(羅城)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이 도진 것이었다.
나성이란 로스앤젤레스의 중국식 한자 표기로, 아직도 LA에 있는 한인교회의 상당수는 “나성○○교회” 같은 이름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떠난 지 오래되고 이민법상 문제가 있어 미국행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방법은, 육로를 이용해 밀입국하더라도 그렇게 들어가는 것뿐이리라...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간 나는 P씨에게 미국으로의 밀입국은 불가능하며, 범죄 등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설사 미국 땅을 밟을지라도 다시 한국으로 송환된다고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례도 발생한다고 설득했다. 마지못해 설득당한 P씨는 나와 함께 동행하여 한국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하였으며, 나는 P씨에게 밀입국을 위해 멕시코에 다시 오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은 후, 출국장으로 향하는 P씨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몇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21년 5월, 핸드폰으로 P씨의 낯익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미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왔는데 결국 국경 이민소에서 입국이 거절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밀입국 중개인도 알아보고, 이민소에 찾아가 사정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더란 것이었다.
나는 올 초에 무사히 한국으로 돌려보냈으나 다시 찾아온 P씨의 무모함을 크게 꾸짖으며, 한국으로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코로나19 음성 검사서, 출국 시 건강 질문서 작성, 그리고 하루치 호텔 숙박비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는 P씨에게 서약서까지 받았다. 앞으로 다시 밀입국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21년 10월, P씨에 대한 사건도 가물가물 해지던 어느 날, 티후아나市에서 활동하는 영사협력원 K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P씨가 다시 입국을 하여 예전에 만났던 멕시코 경찰관을 통해 불법 밀입국 중개인을 알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밀입국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중개인이 요구하는 일인당 밀입국 수수료가 천만 원 단위가 넘고, 본인이 가진 돈이 적어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란다.
결국 P씨는 미국 국경 이민청을 통한 정식 입국이나, 불법 밀입국 방법까지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한국으로 다시 귀국하였다.
“영사님,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갑니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남긴 채 P씨의 아메리칸드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멕시코에 3번이나 오면서, 왕복 항공료에 체류 비용까지 합치면 꽤나 많은 돈이 들었으리라. 소매치기를 당하면서 공포에 떨기도 하고, 결국에는 끝없는 좌절감을 맛보면서까지, P씨는 ‘나성(羅城)에 가면’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쓰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나성에 가면’: 1970년대 후반 한국에서 히트한 가요곡, 이역만리 이국땅에 이민 가는 연인과 헤어지며, 편지로나마 소식을 전하자는 이별의 노래임. 2014년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Ⅳ. 총알도 뚫지 못한 사모곡(思母曲)
‘가여운 멕시코, 천국과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까운.’
(Pobre Mexico, tan lejos de Dios y tan cerca de Estados Unidos)
<문구 설명: 멕시코 대통령 포르피리오 디아스(재직기간 1884~1911)가 한 말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접경하여 있는 멕시코의 지정학적 운명을 압축하는 관용어로 쓰임>
멕시코 국내에는 약 1천5백만 정의 총기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중 약 85%가 불법 총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미국 국경으로부터 약 20 만정 가량의 불법무기가 밀반입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에 마약을 팔고, 미국은 멕시코에 무기를 파는 것이다.
멕시코 내 살인범죄의 약 68%에 이러한 불법무기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미성년자가 약물에 취해 권총강도를 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1년 8월, 나른한 오후에 걸려온 전화,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의 벨소리였다.
한인 상가에서 장사를 하는 교민 K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인접 상가에서 장사를 하는 교민 A씨가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나오는데, 이를 미행하던 강도들이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으려고 했다. 교민 A씨가 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몸싸움을 하던 도중에 범인이 권총을 발사하여 몸에 총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팬데믹 시기에 좀 잠잠한 것 같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사안의 심각성을 직감한 나는 공관 내 보고 절차를 시작으로 비상대응팀을 구성하고, 피해자 가족 및 한인회 등과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여 실시간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편, 현지 경찰기관과의 네트워크를 총력 가동하였다.
그리고 사건 현장으로 바로 내달렸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총기 사건의 특성을 잘 알기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내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제발 생명에는 지장이 없기를 간곡히 기도하였다.
사건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경찰 관계자뿐만 아니라, 인근에 거주하는 교민들도 다수 모여 있었다. 교민 A씨가 총을 맞아 쓰러졌던 자리에는 선홍색 핏자국이 선명하였다. A씨는 다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었으며 바로 출동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현장에 있던 다른 교민이 내뱉는 탄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숨이 중요하지 그깟 돈이 뭐 중요하다고, 그냥 줘버리지 왜 총을 맞아, 총을 맞냐고”. A씨는 상당히 큰돈을 환전하였고,
한국에 계신 노부모님에게 보내기 위한 돈이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한국에 계신 연로한 부모님들이 아주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도 누군가 덧붙였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 덕분일까..
천만다행으로, 총알은 급소를 비켜나갔고 총상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있는 A씨와 면담하고 가족을 위로하였다.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걱정 마시고 치료에 전념하십시오, 대사관도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건넸지만,
A씨와 그 가족에게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A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영사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범인을 잡고 돈을 찾기는 힘들겠죠?,
여기 멕시코 경찰이...” 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노부모에게 보내야 할 거금을 빼앗겼다는 A씨의 허탈감과 탄식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섰다.
관할 지역 경찰서장에게 특별 면담을 요청하였다.
수사과장이 배석하였고,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다소 잠잠하던 시기에 발생한 총기 강도 사건일 뿐만 아니라, 피해금액이 상당히 큰 점, 심지어 범죄조직과 시내 환전상 간의 불법 커넥션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의 적극적인 대응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담당 수사과장이 귀찮아할 정도로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간식거리라도 사들고 무작정 경찰서로 찾아갔다.
멕시코 경찰에서 지원이 필요하면 대사관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의 모든 한인들이 힘을 보태서 어떤 일이라도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압박에 가까운 간청으로 범인을 조기에 검거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그렇게 애타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후안 에르난데즈 경찰서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총기 강도 사건의 용의자 3명을 검거하였다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낮은 범인 검거율을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신속한 검거였다.
빼앗긴 환전 금액을 모두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피해금액의 일부도 찾았다는 전갈과 함께...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부여잡고 A씨에게 기쁜 마음으로 범인 검거 소식을 전하였다.
이제 A씨는 더 이상 자책과 후회 속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리라, 한국에 계신 노부모님께 계속 효도할 수 있으리라, 멕시코 강도들의 총알도 뚫어내지 못한 그만의 사모곡(思母曲)을 온전히 부를 수 있으리라.
사건 종결 이후, 대사관 내부 건의를 통해 검거 유공 멕시코 경찰관들에 대한 포상과 감사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포상행사는 연합뉴스에 ‘주멕시코대사관, 한인 대상 총기강도 검거한 현지 경찰에 감사장 수여’라는 제목으로도 실렸다.
멕시코 현지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인들을 생각하면, 멕시코 경찰은 또 다른 의미의 조력자이자 든든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이 우리 한인들을 지키고 세심하게 보살펴 줄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경찰주재관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소명(召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사관 주재 유공경찰관 감사장 수여 행사>
멕시코에서는 교민, 여행객, 유학생을 불문하고 권총강도 피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건에 마음 졸이고, 때로는 긴장감 속에서 판단력이 흐트러질 때도 있다.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불어 닥치고 있다.
경찰주재관은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누구보다도 냉정한 판단과 예리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재외국민 보호라는 사명감이 이정표가 되어, 경찰주재관이 나아갈 방향을 흔들림 없이 제시해 주리라...
Ⅴ. 멕시코에서 또 다른 해방과 자유를 꿈꾸며
‘멕시코는 관대하다’, 경찰주재관인 내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떠들던 문장이다.
멕시코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기간에도, 출입국과 여행·이민 등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고수해 왔다.
공항, 항만 등의 외국인 입출국 제한 조치나 국내 이동제한 조치 등은 시행되지 않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도 엄격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러한 관대함과 인심 후한 멕시코의 정책 때문에 경찰주재관이던 나로서는 더 바쁘게 살았는지 모른다.
코로나19라는 정체불명의 괴물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교민들을 위해, 어느 날 훌쩍 한국을 떠나온 수많은 여행객들 틈바구니 속에서, 때로는 투정과, 때로는 타박을, 어떨 때는 통사정까지 해가며, 우리 국민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느라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였던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과거의 시간에 묶여 있던 나만의 좁은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한층 깊어진 심미안을 가질 수 있게 했으리라 생각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가져 본다.
‘멕시코는 자유다’,
멕시코를 찾아오는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꿈을 꾸며 첫발을 내딛는 이곳에서 처음 떠올리는 단어가 ‘자유’ 일 것이다.
중남미의 허브 국가인 멕시코는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많은 중남미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한국에서 이민오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도 역시 ‘자유’라는 두 글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의 중심부에서 어느 나라로 이주하여 정착하든 새로운 꿈을 꾸면서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멕시코에서 ‘애니깽’의 슬픈 역사가 깃든 멕시코 이주 한인들은 1세대들의 고단한 삶을 지나,2세대들과 3세대들을 거쳐 가면서 또 다른 의미의 해방과 자유를 찾아가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 개봉되었던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Coco)는 멕시코 과나후아토 지방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인간의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멕시코 문화와 시각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영화 Coco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며, 멕시코의 고유 명절인 ‘망자(亡者)의 날’을 배경으로, 죽은 가족의 영혼과 만나고 꿈을 향한 열정을 그린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영화 코코에서 화려하게 빛나던 별빛과 야경만큼이나 그 배경을 이루는 ‘어둠’ 또한 깊고 무겁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다.
경찰주재관은 결국 그러한 ‘어둠’으로부터 재외국민들을 지켜주는, 홀로 우뚝 선 ‘별 빛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자유와 해방을 꿈꾸며 멕시코를 찾아오거나, 멕시코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우리 국민들에게 경찰주재관으로서의 나의 삶은 여전히 묶여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멕시코 해방 일지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며,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열린 결말’이라고 매듭지어 본다.
*現)주멕시코대사관 경찰주재관 근무(20.2월 ~ 23.2월). 1995년 경찰 입직(경찰대학), 스페인 마드리드 아우토노마대학 석사 졸업(2015년), 경찰청 치안시스템 전수사업 참여(2017년 볼리비아, 2019년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