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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20. 2022

# 7. 동료들과 함께 일군 보이스피싱 피해금..

現)주광저우대한민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 경감 김찬원*

고국의 동료들과 함께 일군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수記

 

중국에 네 번째 경찰주재관으로 부임하는 광저우총영사관....

업무 시작도 전인 입국 격리기간에 받은 한통의 전화로 십여 년 전 보이스피싱 사건이 시작되었다  




     Ⅰ. "여긴 중국에 있는 총영사관입니다"

     Ⅱ. 역시! 대한민국 경찰

     Ⅲ. 송금 절차가 왜 이리 어려워

     Ⅳ. 두터워진 공조 네트워크

     Ⅴ. (후기) 남겨진 숙제들



. 여긴 중국에 있는 총영사관입니다



2021년 3월, 중국 지역에 네 번째 경찰주재관으로 부임하는 광저우총영사관....

부임하는 외교관도 예외 없이 코로나19 격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주중대한민국대사관으로부터 받은 업무 연락

한 통은 한참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보이스피싱 사건 관련 아국인 피해자의 피해금(약 18만 4천 위안, 당시 환율 기준 약 3200만 원)을 환수해 가라는 중국 공안부의 공문을 접수했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관할지역인 광동성 주하이시에서 대만 화교들에 의해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은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중국 수사 담당 부서에서 이들의 범죄수익금을 모두 추징하고 환수하였다. 피해금이 중국 국고 계좌에서 12년간 주인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동안 한국 경찰과 공조를 통해 끈질긴 노력 끝에 한국 피해자들이 특정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피해자의 계좌 정보만을 갖고 피해자들을 찾아서 피해금을 반환해줘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되었다.    

 

격리가 막 해제된 3월 10일, 부임해서 적응도 하기 전에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 대한 연락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파악된 피해자들에게는 휴대폰으로 수차례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여긴 중국에 있는 광저우대한민국 총영사관입니다. 여보세요~ 강00님 맞으시죠?” 우리 직원의 연락에 답변은커녕 ‘뚜뚜뚜뚜....’

중국 국가번호가 찍힌 해외에서 발신된 우리 공관의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피해자의 행동에서 다시는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속 다짐이 느껴졌다.     


중국 현지의 공안기관(광둥성 공안청)에서는 새로 부임한 나에게 부임 인사를 겸한 상견례를 갖자고 했다. 공안청과 광저우 시공안국 관계자들을 만나 앞으로의 협조를 부탁하면서 상호 공조를 잘해보자는 대화가 오갔다.

현지의 공안청도 중국 공안부의 지시 공문을 받았는지 그 사건의 피해자들과 연락이 잘 되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국내 피해자들과 연락을 시도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수많은 재외국민 사건사고를 처리해 봤지만, 국내에 있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환수해가라는 임무는 처음이었다.

이 임무를 꼭 완수해서 우리 경찰, 그리고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이미 포기했던 피해금을 반환 받았을 때 기뻐할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하루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Ⅱ. 역시! 대한민국 경찰     


피해자를 찾아 수차례 시도했던 연락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해외에서 연락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국내에서 연락을 취하도록 도움을 구해보자는 생각으로 외교부 재외국민 보호과에 파견된 후배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였고 후배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연락도 피해자들에겐 마찬가지였는지 응답을 해오는 피해자가 없었다.     


현지에서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다시 연락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5명이었고 각 피해자들의 연령이 대부분 60세 이후인 할머니, 할아버지인 상황에서 가족들의 신원정보를 통해 어렵게 연락처를 파악하였다.

가족들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봤지만 역시나 부모님의 어려움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으로 오인했는지 적극적으로 대답을 해주는 이가 없어 상황은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4월까지 이어졌고 주중대한민국대사관과 중국 공안부에서는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을 돌려주겠다는데 그걸 왜 파악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계속 재촉해오고 있었다.      

결국 경찰청의 피해자담당관실과 경제범죄수사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각 부서의 담당자를 통해 연락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경찰청 담당자들은 현지 공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주었다. 피해자 가족들과 연락만 되면 위임장을 받아서 피해금을 환수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서...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피해자 중 한 분의 아들이라면서 외교부 파견 후배의 연락을 받고 메일을 보낸다는 피해자 가족과 연락이 되었다. 강00님의 아들 조0씨가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피해자 가족은 상세한 사건 경위를 메일로 받은 뒤, 내가 보내준 어머님 명의의 위임장을 보내오면서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피해자 가족들의 주소지가 파악된 후, 경찰청 관련 부서인 피해자담당관실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보이스피싱 사건 피해를 당한 뒤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오갔던 불편함과 억울함이 앞섰던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오래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금을 돌려준다며 위임장을 작성하라는 경찰서의 연락에 또 다른 사기가 아닌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심스레 위임장을 작성해주겠다는 뜻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위임장 작성은 멀리 있는 나에겐 또 다른 숙제였다. 이번에는 일선 경찰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피해자들 주소지 관할 경찰서의 도움을 받으면 피해자들이 좀 더 안심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피해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우리 경찰의 화려한 성과로 돌아왔다.


피해자들 가족 한 분 한 분이 주소지 관할 경찰서 청문감사관실 또는 연락을 받았던 파출소에 가서 위임장을 작성해주었고 이렇게 5장의 위임장 모두 작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우리 일선 경찰관서의 노력의 결과로 취합된 피해자들의 위임장은 외교부 재외국민 보호과에 파견된 경찰관에게 전달되었고 6월 15일 외교행낭을 통해 광저우에 도착했다.

위임장을 모두 수령했다는 소식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 공안기관에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Ⅲ. 송금 절차가 왜 이리 어려워?        


피해자들의 피해금 환수에 대한 위임을 전달받은 나는 광둥성 공안청의 안내로 6월 18일 주하이시공안국의 궁베이공안분국을 방문하였다. 공안청 관계자들 그리고 공안분국 수사담당자와 부국장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오랫동안 기다렸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방문 전날 담당 형사는 우리 공관의 행정원에게 피해금을 어떻게 가져가겠냐며 물어왔고 우리 직원은 현금으로 수령하겠다고 답하였다.

사실 나중에 알았지만 계좌 이체를 해도 되는데 수신자가 피해자 계좌여야 한다는 말에 위임장을 지참하고 현금으로 수령한다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현금 보관용 007 가방까지 갖고 방문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연초 부임하면서부터 사력을 다했던 임무가 석 달 보름 만에 종료되었구나 하는 안도의 순간,

수령한 피해금을 국내로 송금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1백 위안권 지폐 1만 위안 묶음 18개와 남은 잔액들을 주하이공안분국 국고계좌 은행에서 모두 수령하는 과정에서 담당 부서 형사들은 걱정이 되었는지 계속 수행을 해주었고 덕분에 피해금은 200킬로나 떨어져 있는 광저우 공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절차는 각 피해자에게 송금하는 일, 중국에서 한국으로 송금하는 절차는 너무 복잡했다. 광저우 현지에도 한국계 은행이 있지만, 중국은행과 마찬가지로 금융당국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쉽게 송금이 되지 않았다. 송금할 돈이 피해자들로부터 입금되었다는 근거가 없으면 그 피해자들의 계좌로는 송금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결국 은행 측에서는 나의 그간 급여소득 입금실적을 공문으로 요청했고 지난 2017년 이후 칭다오 근무 시절 내가 받았던 급여 액수가 충분하다는 공문을 칭다오총영사관으로부터 받은 뒤에서야 피해금의 한국 송금을 허용했다.     


2009년 대만 범죄자들로부터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우리 피해자들이 12년 만에 어렵게 그 피해금을 돌려받게 된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의 범죄수익금 즉, 피해자들의 피해금이 주인에게 돌아간 순간, 범죄를 퇴치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우리 국민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도 하루빨리 치유해줘야 할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Ⅳ. 두터워진 공조 네트워크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사건사고를 처리하다 보면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 성과 중 하나는 항상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현지 경찰들과 더욱 끈끈해지는 것이다. 광둥성 공안청 국제합작처 량 과장과 옌 처장은 주하이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수를 계기로 더욱 연락이 잦아졌고 코로나19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업무 협조를 위한 만남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또 한 건의 긴급한 공조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주하이 현지에서 우리 국민 2명이 도박(포커)을 하다가 현지 파출소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중 한 명인 최 모씨는 산둥성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총괄책 중 한 명으로 확인되어 국내 수사팀(남양주서)으로부터 긴급히 송환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주하이 사건 피해금 환수로 인해 공안부와 협조 및 공조가 잘 이루어져 업무 만찬까지 한 상황인지라 신뢰가 쌓인 옌 처장과 량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또 주하이에 갈 일이 생겼다고.....

량 과장은 자신의 고향이 주하이라며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고 다음날 공관의 공식 공한으로 체포된 최 모씨 영사 면회 요청 관련 내용을 보내주었다.

량 과장의 신속한 협조 덕분에 도박으로 체포된 2명 중 1명인 교민은 풀려나고(사실 도박죄는 경범죄라서 행정구류 5일 처분으로 끝나서 석방되는 게 맞지만) 최 모씨는 계속 구류소에 수감시켜 두었다.      

12월 9일 오전, 산둥성이나 북부지역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날씨와는 반대로 25도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주하이시 구류소에서 직접 최 모씨를 면회하면서 신원을 확인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하여 대면 면회가 제한되었는데 특별히 신원을 확인하고자 대면 면회를 요청했고, 허용된 것이다)

지난 9월 말 선전시 구류소에 1년 3개월 송환 대기 형식으로 수감되어 강제 추방된 인터폴 적색수배자 김 모씨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수감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최 모씨에게 인내심을 갖고 대기해 줄 것을 알려주었다. 최 씨는 화들짝 놀라며 모든 범행에 대해 국내에 가서 진술하겠다며 제발 빨리 국내로 보내달라고 수감장 내 환경이 거의 수용소와 같다고 울부짖고 애원하였다.  

   

영사 면회를 마치고 12월 10일 오후 옌 처장과 량 과장에게 최 모씨의 국내 송환 협조를 부탁했다. 옌 처장은 이미 도박으로 처분을 받은 자이고 여권도 무효화되어 추방하는데 전혀 문제가 안된다며 12월 23일 주하이공안국 경찰관들이 직접 광저우 바이윈국제공항으로 최 모씨를 압송하여 국내로 송환시켰다.


그리고.... 올해 언젠가 뉴스를 통해 남양주서에서 이 건을 계기로 보이스피싱 사건 총책을 검거했다는 보도를 보게 되었다.     

주하이시.... 보이스피싱 피해금 환수에 이어 국내 보이스피싱 적색수배자의 신속한 송환으로 이어지는 끈끈한 국제공조 스토리의 메카가 되었다.


               

Ⅴ. (후기) 남겨진 숙제들   


2006년부터 중국 지역(칭다오, 선양, 광저우)에서 사건사고 담당 경찰 영사로 11년 6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광둥성 주하이시에서 발생한 위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금 반환을 계기로 남겨진 숙제들이 마음속에 쌓여만 가고 있다.


현재 중국 각 지역에서 진행 중인 우리 국민 피해 보이스피싱 사건 재판들과 그로 인한 우리 국민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금을 어떻게 하면 환수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30일 푸젠성 푸칭시라는 곳에 재판 방청을 위한 출장을 갔다. 우리 국민 1명이 포함된 10명의 보이스피싱 범죄단의 선고공판을 방청했다. 적게는 600만 원에서 많게는 2천만 원에 이르는 이들의 범죄에 대하여 중국 법원은 징역 11년 이상의 엄중한 처벌을 선고했다. 피해금에 대한 배상명령도 포함되었다. 경찰을 사칭하고 금융위원회를 사칭한 이들 범죄자 로부터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반환받아야 할 남겨진 숙제들은 이제 한-중 양국 간의 사법공조와 우리 경찰주재관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미력하나마 우리 국민 범죄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나의 모든 노력을 쏟고 싶다.               




* 現)주광저우총영사관 경찰주재관

  경찰대학 7기 중국 산동대학 법학원 법학석사,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주칭다오총영사관(2006~2009, 2017~2020), 주선양총영사관(2011~2014) 경찰주재관,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경찰협력관 파견(2016) 근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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