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기온은 ’3월 30도, 4월 40도, 5월 50도’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정말로 인도의 5월 더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날아가던 새가 폭염에 지쳐서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왔을 정도이다.
나의 사무실은 대사관 별관 2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에어컨마저도 폭염을 이기지 못해 자주 고장이 난다.
폭염에 에어컨까지 작동이 안 되는 날이면 정말 최악이다. 그런 날은 한증막 사우나가 따로 없다.
그렇게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5월 어느 날 아침에 해외안전 담당 행정직원인 홍○○ 실무관이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다.
참고로 홍실무관은 이곳 인도에서 초, 중, 고, 대학을 졸업했고, 영어는 물론 힌디어에 능통하며, 성격도 좋고 업무 역량도 뛰어나 우리 해외안전팀의 보석 같은 친구이다.
Ⅱ. 인도경찰로부터의 연락
홍실무관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발하여 인도 뉴델리를 향해 오던 비행기 안에서 우리 국민이 사망하여 뉴델리 삽다르정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는 연락을 델리 공항 경찰서 담당자로부터 지금 막 받았다고 하였다.
우리 국민 사망사고는 작년 8월 부임한 이후로 처음 겪는 일이라 무척 긴장이 되었으나 차분하게 어떻게 해야 하나 정리를 하였다.
모든 재외국민 사건사고는 항상 안타깝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지만 사망사고는 유난히 더 신경이 쓰인다.
낯선 타국에서 고인이 되신 분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의 슬픔을 잘 위로해 드리는 것 또한 재외국민 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홍실무관은 델타 바이러스가 극심했던 시기에 사망사고 처리를 한 경험이 있어 홍실무관에게 처리절차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휴가 중인 부영사에게까지 연락하여 사망사고 처리 전반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사망사고 처리에 대한 매뉴얼도 찾아서 확인해 보았다.
경험자 두 명의 이야기와 매뉴얼 등을 종합해 보니 어떤 것부터 챙겨봐야 할지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챙겨봐야 할 들을 살펴보니, ① 사망자 신원 확인, ② 유족 확인, ③ 유족 연락처 확인 및 연락, ④ 유족이 한국에 계시다면 여권 및 비자 확인, ⑤ 여권 및 비자 없다면 즉시 발급 추진, ⑥ 항공편 확인, ⑦ 시신 상태 및 보관 기간 확인 ⑧ 경찰 처리절차 확인 및 연락체계 유지, ⑨ 부검 여부 및 절차 확인, ⑩ 시신 운구 및 화장 여부 확인, ⑪ 시신 운구 시 또는 화장 시 절차 확인, ⑫ 장례 대행업체 확인 등이었다.
일단 무엇보다 급한 일은 사망자 신원확인과 유족과의 연락이므로 사망자 소지품에서 나온 여권을 바탕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여권 신청 자료를 바탕으로 유족 연락처를 확인하였다.
Ⅲ. 보이스피싱인가요?
유족인 고인의 여동생에게 사무실 전화로 연락을 하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국에서 오는 전화라 의심스러워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카카오톡을 통해 보이스톡 통화를 요청하였다.
어렵게 고인의 여동생과 통화가 되었고, 고인께서 베트남에서 출발하여 인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이야기해 드렸다. 고인의 여동생께서는 많이 놀라셨고 믿지 않으셨다.
다음으로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삽다르정병원 영안실로 즉시 향하였다. 인도에서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영안실이 드물어서 시신 상태가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삽다르정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여 시설을 살펴보니 그나마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당분간 시체 안치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고인의 상태는 외견상 특별한 손상은 없었고, 여권 사진, 인도경찰로부터 받았던 비행기 안에서의 사진 등과 대조하여 동일인 여부를 확인하였다.
영안실을 나서며 확인한 내용을 고인의 여동생에게 다시 한번 알려드렸다. 고인의 여동생께서는 아직까지도 충격에서 빠져서 이러한 상황을 믿지 못하고 계셨다. 이런 소식을 전하는 내가 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외교부에서 확인 전화가 와 있었다.
고인의 여동생께서 내 전화를 받으시고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셨는지 외교부로 확인 요청을 하셨던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고인의 여동생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시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유가족들이 인도로 오셔야 할 일이 남았다.
고인의 여동생 부부와 남동생 등 세 분이 오시기로 하였는데 두 분은 여권이 없었고,
비자는 3명 모두 없었다.
유족께 시신을 운구하실지, 화장을 하실지 여쭈어보니 인도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모시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고, 고인의 유족에게도 연락이 되었으니,
이제는 유족을 인도로 모셔서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일이 남게 되었다.
앞으로 처리할 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일자별로 진행해야 할 일을 정리하였으며,
예정대로 진행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1안, 2안, 3안까지 생각해 두었다.
Ⅳ. 유족의 입국과 장례 준비
1일 차에는 고인 유족 연락처를 확인 후 통화하였고, 영안실을 방문하여 시신 보관 상태 및 신원을 확인하였다. 인도에 입국하는 유가족이 세 분임을 확인하였고, 여권 및 비자 소지 확인, 입국 절차 안내, 항공기 편 안내, 장례절차 및 예상 비용 안내, 유족 요구사항 확인 등을 하였다.
2일 차에는 유족이 관할 시청을 방문하여 ‘48시간 내 발급 여권(전자여권)’을 신청토록 하고, 외교부 여권과에 인도적 차원에서 신속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3일 차에는 여권이 발급된 것을 확인 후 유가족에게 여권 수령 후 인도 비자접수센터(VFS) 방문하여 비자를 신청하도록 안내하였다.
하지만, 마침 당일이 비자발급을 하지 않은 날이어서 우리 대사관 비자팀 장○○ 실장께 주한 인도대사관 비자담당과 연락을 해 보도록 요청하였다.
장실장님께서는 유족의 딱한 사정과 비자 발급이 바로 안 되면 이틀 후에 예정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여 인도적인 차원에서 비자 발급을 요청했다.
주한인도대사관 비자 담당자는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현장에서 바로 유족에게 비자를 발급해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제일 걱정이 많았던 여권발급과 비자발급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유가족이 토요일 인도로 출국하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4일차에는 다음 날 입국 예정인 유가족분들께 입국절차, 주의사항, 준비물 등에 대하여 안내하였다.
중요한 것은 유골함은 한국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점이었고 이를 유가족분들께 미리 주지 시켜 드렸다.
인도 사전 입국신고서(Air Suvidha) 업로드는 외국 방문이 처음이신 유가족분들께 어려워 보여 홍실무관이 대행해 드렸고, 유가족분들이 머무르실 호텔도 이분들이 제시하는 예산 범위 안에서 예약을 대행해 드렸다.
큰 충격을 받은 유가족분들이 인도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좋은 숙소를 찾아드리고 싶었다. 여러 루트로 확인하고 호텔과도 직접 연락을 취하며 수소문 끝에 가장 좋은 조건의 호텔을 예약해 드릴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5일 차에는 유가족들이 델리 공항에 오시는 날이어서 미리 공항 패스를 발급받아 입국 수속 지원 준비를 하고, 유가족과 단톡방을 개설하여 진행 상황을 공유하였으며, 이동 차량은 2대를 미리 대기시켜 놓았다.
오후 4시까지는 삽다르정병원 영안실에 도착이 되어야 당일 부검 및 화장이 가능한다. 유가족들의 일정을 고려해 가능한 예정 시간 안에 도착을 하려고 하였으나, 입국 수속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짐을 찾는데 또 시간이 소요되어 예정 시간보다 20분 늦게 영안실에 겨우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영안실에 도착하여 담당 경찰관을 만나 유족 신원을 확인하고, 고인의 유류품을 인계받았으며, 부검 동의서 등 관련 서류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당일 부검이 밀려 있어서 부득이 고인의 부검은 다음날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시신 보관기일을 추가로 연장하였다.
델리 공항 경찰서 담당 경찰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의견을 잘 들어주고 협조를 잘해주어 무척이나 고마웠다.
6일 차에는 부검의와 면담, 부검, 화장 등의 일정이 진행되었다. 화장 전에 고인에 대한 유가족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는데, 이때 고인에 대한 예우를 위해 생화로 관을 장식해 드렸다.
이후 화장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장례 대행업자에게는 유골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해 줄 것과 수습된 유골은 유가족께서 미리 준비해 오신 유골함에 고이 담아 주실 것을 당부드렸다.
다행스럽게도 인도인 장례 대행업자는 인상도 좋으시고 고인의 상황에 대해 함께 공감해 주시고 함께 슬퍼해 주셨다.
Ⅴ. 보내드리며
마지막 7일 차에는 유골함을 인계받고 필요한 서류들에 대한 공증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