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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20. 2022

# 9. 업무폰, 경찰주재관의  대국민 소통창구

前)주베트남대한민국대사관 경찰주재관 경감 최재훈*

│최영사의 또 다른 일터│


휴대폰을 통해 국경을 넘어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 코로나19가 촉진한 비대면 문화,

그리고 자연스럽게 확산된 휴대폰으로 일하는 시대.

그 변화의 시기에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경찰주재관이 경험한 또 다른 일터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공유합니다




   

나는 베트남에서 일하는 경찰주재관이다. 그리고 내 곁에는 언제나, 휴대전화 두 대가 있다.

하나는 주로 국내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적 용도로 쓰는 개인 휴대전화고, 다른 하나는 공적 용도로 쓰는 업무용 휴대전화다.       

    

10년 전 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새내기 경찰공무원이었다.

그때도 내 곁에는 언제나 휴대전화 두 대가 있었다.

나는 오직 여자친구와 연락하는 용도로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번호의 휴대전화를 한 대 더 사용했다.           

경찰 직업 특성상 느닷없이 걸려오는 전화가 많았다.

때로는 예고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잘 받는지 점검하는 비상응소 훈련도 있었다.

경찰공무원이 전화를 잘 받는 것은 언제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여자친구와 달콤한 통화도 방해받기 일쑤였다.

또 여자친구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나는 여자친구와 소통을 다른 소통과 구별하고 싶기도 했다.


‘전용’을 뜻하는 영어 단어 ‘Exclusive’의 의미가 ‘특별한, 고급스러운’이라는 뜻으로 나아가듯, 여자친구 ‘전용’ 휴대전화는 서로의 존재를 ‘특별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다.     

당시 그 휴대전화의 호칭은 ‘스위티폰’이었다.

주말에는 어디서 외식하고 아들 장난감은 무엇을 사주는 게 좋을지 갑론을박하는 결혼 7년 차 부부가 된 지금은 그 휴대전화에 호칭이 있었던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그 호칭이 ‘스위티’라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 시절 스위티폰의 벨 소리는 특별했다.

특정 발신자를 넌지시 알려주는 그 벨 소리는 편안하고 반가웠다.

특히 이태원파출소에서 밤잠 한숨 자지 못하고 국민의 부름에 응답해야 했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스위티폰이 전하는 여자친구의 따뜻한 배려심은 무전기가 전하는 차가운 긴장감과 대비되어 아련한 온기로 가슴에 남았다.      


그러던 언젠가 직원 보호와 자료 보안 등 다양한 이유로 업무용 휴대전화가 경찰을 비롯한 공직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부서에 따라 실무 공무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가 지급되기도 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경찰공무원으로서 나도 업무용 휴대전화를 쓴 적이 꽤 많았다.

당시 그 휴대전화의 호칭은‘업무폰’이었다.        

업무폰이 더해져 나에게는 총 세 대의 휴대전화가 생겼다.

한 달쯤 지나니 도저히 세 대를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위티폰을 해지하는 것을 택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불편했고 언젠가 한 대는 잃어버릴 것만 같기도 했다.


스위티폰과 작별하게 했던 업무폰을 해외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2019년 8월, 영광스럽게도 나는 재외국민 보호 업무와 양국 경찰 간 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재외공관 영사 근무를 명 받아 베트남 하노이에 왔다.     

이곳에서 업무폰과 함께한 시간은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밤낮으로 사건 사고를 처리하기도 했고, 막 적응할 즈음 미증유의 대재앙 코로나19를 베트남에서 직면하기도 했다. 바쁘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영사로 일했던 지난날을 돌아봤다.  

      

‘업무폰과 일터’에 대한 이야기는 그 중심에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이 업무폰은 차원이 다른 업무폰이었다.

그간 써온 업무폰은 도구였다. 국내에서 경찰관으로서 썼던 업무폰은 여자친구와 소통 전용으로 썼던 10년 전 스위티폰처럼 업무 전용 휴대전화였다.

반면 베트남에서 쓰는 이 업무폰은 업무 전용을 넘어서 업무의 기반이자 상당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상 사무실(virtual office)이었다. ‘업무폰’은 나의 또 다른 ‘일터’였다.    


우선 국내 공무원과 소통은 여러 이유로 업무폰으로 집중된다.

나는 우리 대사관의 유일한 경찰 영사이다.

내가 다루는 일 중에는 ‘국민의 생명, 신체, 그리고 재산에 대한 급박한 위험’에 대처하는 긴급한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국내 공무원에게 현지 상황을 생생히 설명할 때는 업무폰에 설치된 ‘메신저’가 매우 효과적이다.

또 현장 출동, 관계자 면담 등으로 사무실에 부재할 때가 많은데 이 역시 업무폰으로 소통이 집중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업무폰을 통해 국내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 덕분에 나는 늘 우리나라 품격에 맞는 양질의 영사 조력 제공에 필요한 도움을 국내로부터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 공무원과 소통도 업무폰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임 초기에는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베트남 고위공무원과 대면 접촉하려고 애썼다.

이 기회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 고위공무원과 나 사이에는 언어 차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이는 베트남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부족한 내 역량 탓이기도 하다.    

   

외교에서 대면 소통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실제 베트남에서 고위공무원을 접촉해 난제를 해결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 맞춤형 조력을 제공하는 영사 업무에서는 효율성도 매우 중요하다.

대면 소통을 택하면 시간과 장소를 협의해야 하고 통역이 필요하다.

그러면 필요한 시간도 2배, 4배로 늘어나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은 직급을 따지지 않고 영어를 구사하는 공무원들과 외교네트워크를 왕성하게 맺고 이들과 전화나 메시지로 상시 소통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영사의 존재 이유이자 업무폰의 존재 이유인 우리 국민과 소통도 대부분 업무폰을 통해 이루어진다.

면적이 서울의 5배가 넘는 하노이에 단 하나뿐인 대사관이 국내 주민센터나 파출소와 같은 접근성을 갖출 수는 없다. 또 우리 기업이 베트남 곳곳으로 진출함에 따라 우리 국민의 거주지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베트남 전역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이 공관을 찾아 영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일이고 부담이다.

즉 재외공관의 도움을 받기 위한 최고의 수단은, 전화다.       

   

영사 조력의 시작은 낯선 나라에서 재외국민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그리고 영사 조력의 목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는 국민의 물음에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여 국민 권익을 도모하는 데 있다.

때로는 영사가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여 국민이 처한 어려움을 피부로 공감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영사가 관계 기관을 빠르게 접촉하여 적시에 조력을 제공할 때 국민이 진정 만족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로 현장에서 답을 찾는 경찰 업무와 달리, 영사 업무는 사무실에서 답을 찾는 경우도 많다.           


우리 대사관을 비롯한 모든 재외공관은 24시간 365일 ‘긴급신고전화’를 운영한다.

반면 나의 ‘업무폰’은 긴급신고전화와 구별되는 나의 영사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휴대전화이다.

전임자가 애써 형성한 외교네트워크를 최대한 이어받고자 나는 큰 고민 없이 업무폰을 그대로 인수하였다.

그런데 이 선택에는 예상하지 못한 단점도 있었다. 우리 대사관에 경찰주재관이 생긴 지 15년이 넘다 보니, 이 연락처가 베트남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에게 국내의 112처럼 알려진 것이었다.

교민 사이에 여러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이런 공간에서 내 연락처가 전파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적잖게 놀랬다.           


2019년 무려 430만 명의 우리 국민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이 전화는 ‘국민의 비상벨’처럼 쉴 새 없이 울렸다. 당시 하루 신고 건수는 국내 작은 파출소 신고 접수 건수에 비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퇴근 후 샤워할 때도, 새벽에 잘 때도 업무폰이 울렸다.

학수고대하던 주말과 연휴도 사건 사고 대응을 위해 반납해야 했다.

국내에서 위급할 때 반사적으로 112를 누르듯, 베트남에 있는 우리 국민은 내 연락처로 전화했다.


또 불법과 불의를 눈 뜨고 못 보셨던 일부 국민은 베트남의 민낯을 목격하실 때마다 나에게 제보하기도 했다.           

사실 나의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고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 재외국민에게 안내한 적도 없다.

우리 외교부도 ‘심야, 새벽, 휴일 등 근무시간 외 무리한 영사 서비스 제공은 하지 않는다.’라고 안내하고 있어 근무시간 외에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서 메시지로 대사관 긴급신고 전화번호를 안내했다.

하지만 답신은 이렇게 왔다. “경찰 영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통화 한 번 할 수 있을까요?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지인으로부터 연락처를 전달받아 전화하게 됐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관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합니다.’라는 경찰공무원 임용 선서부터 ‘하노이에 있는 유일한 경찰 영사로서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자.’라고 다짐했던 영사로서 초심까지, 지난 공직생활의 여러 다짐에 대한 자각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또‘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전화일 수 있다.’라는 걱정 어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실제 그런 전화를 받고 급히 현장으로 출동한 적도 많았다. 폭행, 연락 두절, 교통사고, 술값 시비 등 일종의 유형화된 신고가 대부분이지만

“지금 사람이 뛰어내렸는데 피가 철철 나고 있어요.”나 “직장 동료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의식이 없어요.”처럼 가슴 철렁한 신고도 여러 번 있었다.

몇 차례 이런 경험이 쌓이자 근무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는 데 오히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업무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받기로 했다.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명감은 사생활에서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아빠와 놀기를 참으로 좋아하는 어린 아들과 수영장을 갈 때도 나는 이 업무폰의 존재와 혹시나 올지 모르는 연락에 늘 신경 써야 했다.

지근거리에 둔 업무폰을 예의 주시하며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또 벨 소리 볼륨을 최대로 높였음에도 수영장 소음 때문에 혹시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부재중 전화가 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아빠! 왜 수영 안 해? 핸드폰 좀 그만 봐!” 아들로부터 몇 마디 타박을 듣자 수영장처럼 업무폰을 다른 곳에 두어야 하는 곳은 아예 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업무폰이 도구를 넘어 일터가 된 것은 의도된 변화는 아니고 시대 변화와 해외 근무가 만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오히려 남에게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수용하자고 끊임없이 다짐한다.

왜냐하면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 행동’이 다시없을 보람찬 영사 근무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의 시행으로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내가 행하는 직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2019년 제정된 재외국민의 안전한 체류와 방문을 위한 ‘영사조력법’이 시행되고 있고, 또 얼마 전 3월에는 ‘행정은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적시한 ‘행정 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적극 행정은 행정의 기본이므로 당연히 영사 조력에도 적용된다.

나는 두 법률의 제정 의미를‘해외라서, 언어가 달라서, 문화가 달라서 등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도 재외국민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사항을 숙지하라.

나아가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라.’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해석한다.

이 국민의 명령을 현실로 구현할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날의 영사 업무 경험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촉진한 비대면 문화를 생각해보니, 그 해답은 ‘업무폰’에 있음을 알게 된다.        


메신저 앱 대다수가 사용자 간 무료 통화를 지원한다.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큰 비용 부담 없이 통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국내에 있는 국민과 처음에 국제 전화로 소통했더라도 추가 연락 부담을 낮추고 영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꼭 말씀드린다. “편하게 카OO톡으로 메시지 보내도 됩니다.

그리고 국제전화 비용이 부담될 수 있으니 보이스톡으로 전화해도 됩니다.”라고 말이다.

2020년 11월, 외교부 영사콜센터도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무료 전화 앱을 출시했다.

이에 대해 시대 흐름과 국민 요구에 정확히 반응한 ‘적극 행정 우수 사례’라고 평가하고 싶다.          

 

‘업무폰’을 나의 또 다른 일터이자 적극 행정의 매개체라고 말하면서도 진정한 일터가 되기까지 해결할 과제가 많다는 점도 꼭 언급하고 싶다.

베트남에서 영사로 일하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제는 보관 부담이다.

특히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범죄자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기는 이른바 ‘휴대전화 날치기’가 횡행하는 베트남에서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국가자산이기에 당연히 보관에 더 주의해야겠으나, 휴대전화는 사무실에 있는 다른 자산과 다르다.


공무원의 보관 부담을 줄이고 보안 사고 예방을 위한 대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사실상 가상 근무 공간이 생겨 근무 장소가 무한히 확장되는 점과 근무시간도 출퇴근 시간에 한정되지 않는 점도 큰 과제다.

업무폰 때문에 피로도가 증가하고 휴식권마저 위협받는 측면도 있다.

사무실에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빨리 고쳐야 여기서 하는 일이 잘 되듯, 가상 사무실에 생긴 문제도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개선해야 할 것이다.       

동료 공관원의 이임사에서 빠지지 않았던 말은

한-베트남 관계가 발전을 거듭하는 시점에 베트남에서 근무한 덕분에 국익을 위해 일할 기회가 많았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 발달과 교류 증진에 새로운 입법과 코로나19까지 더해져 나는

‘두 개의 일터’에서 적극 행정을 몸소 실천하며 소중한 경험을 거듭했다.

아마도 내가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10년 전, 스위티폰이 내 머리맡에, 내 주머니에,

내 가방에, 내 손에 항상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여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렸다. 또 그 연락에는 따뜻함과 달콤함이 함께했다.

시간이 흘러 베트남에서는 업무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오늘 밤도 무사히’라는 말을 곱씹으며 아무런 연락이 없길 소망한다.

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 연락에는 긴박함과 긴장감이 함께한다.   

    

“베트남은 공산당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30년에는 현대식 산업기반을 갖춘 국가로 거듭나고 …”

흥미진진하게 10년 후 베트남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는데, ‘업무폰’을 통해 사건이 찾아와 흐름이 끊겼다.

이내 사건을 처리했지만, 나는 읽던 글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만의 상상에 접어들었다.

내 손의 스위티폰이 업무폰으로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앞으로 10년 뒤 같은 자리에서 일할 영사의 ‘업무폰’은 어떤 모습일까?

업무폰이 있기는 할까? 과연 지금 내 자리에서 일할까?

집에서 일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변화든 그 변화는 재외국민과 더 잘 소통하는 적극 행정을 위한 길의 한 여정이라고 믿는다.



* 現)서울청 광진서 자양4파출소 3팀장

  2011년 경찰 입직, 경찰청 외사국,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서울 광진·용산·송파경찰서,

 주베트남대사관 2등서기관 겸 영사(2019. 8월 ~ 2022. 8월) 등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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