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 불안을 기회로 딛고 일어선 1만 동포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던 그때를 돌아보며...
Ⅰ. 과테말라 경찰주재관으로 파견되다
Ⅱ. 김 사장 납치 의심 신고와 불길한 예감
Ⅲ. 피를 말리는 몸값 협상
Ⅳ. 절망의 늪에서 정의감을 불태우다 – 납치조직 일망타진
Ⅴ. 정의와 현실 사이
Ⅵ. 다시 찾은 추억의 과테말라
Ⅰ. 과테말라 경찰주재관으로 파견되다
2009년 2월 과테말라 경찰주재관으로 파견됐다.
당시 과테말라에는 우리 동포 1만여 명이 주로 봉제산업과 의류 도소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인구 1,300만 명의 국가에서 연간 6,000여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그야말로 ‘치안 부재’의 나라였기에 경찰주재관에 대한 동포사회의 기대가 더없이 높았다.
부임한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있을 때부터 현지 근로자들의 봉제공장 점거 사태를 비롯해 강도, 살해 협박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3년을 어떻게 보낼까’하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경찰주재관’은 외교관 신분으로 해외 공관에 파견되어 재외국민보호 업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각종 외교 행사에도 참석하여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과 우애를 다지며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기에 경찰관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 파견된 주재관들은 수많은 사건․사고를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기에 외교부에서 부여한 ‘영사’보다는 ‘나 홀로 형사’로서의 역할이 더 걸맞다고 할 수 있다.
현지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있을 무렵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사건이 터졌다.
바로 2010년 1월 18일 발생한 우리 기업인 납치․살인사건이다.
주재국에서 사법권이 없는 외교관 신분으로 치안 당국에 철저한 수사와 신속한 범인 검거를 요청하는 의례적인 활동의 이면에서, 납치범을 꼭 잡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현장을 동분서주하던 그때를 회고해 본다.
Ⅱ. 김 사장 납치 의심 신고와 불길한 예감
2010년 1월 18일 18:44경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낯선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영사님, 우리 사장님이 납치된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사장님께서 ‘경찰이 나를 잡았어’라고 말씀하시고는 연락이 끊어졌어요.”
신고를 한 사람은 김 사장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의 공장장 C씨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과테말라 내무부 장관 직속 납치전담수사팀 노엘(Noel)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즉시 신고자 C씨를 과테말라시티 호텔 지역에 있는 M호텔로 오도록 하고 노엘 팀장과 팀원들이 합류했다.
C씨는 김 사장이 전날 교민 L씨가 운영하는 포커 게임장에 갔었는데 당일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순간 직감적으로 L씨가 관여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사장이 큰돈을 땄다면 그 돈을 노린 범행일 수도 있겠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경찰주재관 부임 직후부터 축적해 두었던 교민사회의 사건․사고 분석 자료에서 L씨와 그의 지인 Y씨의 휴대전화 번호 4개를 찾아내어 노엘 팀장에게 건네주며 통신 수사에 활용하도록 요청했다
신고 접수 당일 23:15경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현지인 남자가 전날 L씨의 게임장에 함께 있었던 김 사장의 친구 강 모 씨에게 김 사장의 몸값으로 미화 150만 달러를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는 제보를 받았다. 강 모 씨는 이 사건에 관여되기 싫다며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나마 발신 번호는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C씨에게 몸값 협상 전화가 올 수 있으니 당분간 납치전담팀과 함께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정을 꾸리며 직장을 다니는 C씨에게 쉬운 부탁은 아니었다.
Ⅲ. 피를 말리는 몸값 협상
김 사장의 가족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납치 소식을 듣고 과테말라로 날아왔지만, 납치범과의 협상은 현지어 소통이 가능한 C씨가 계속하기로 했다.
교민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호텔에서 온종일 납치범의 전화를 기다리며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피랍자의 생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것이 납치사건 협상의 기본이기에 우리는 김 사장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C씨는 회사 공금으로 몸값의 일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1월 18일 23:15경 김 사장의 지인 강 모 씨에게 몸값 150만 달러를 요구했던 첫 전화,
이튿날 밤 9시경 C씨에게 두 번째 전화, 그 후로 매일 밤 9~10시 사이에 단 한 통의 짧은 전화로
몸값이 얼마나 준비됐는지 묻고, 돈을 더 준비하지 않으면 김 사장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남기고 끊었다.
발신 번호는 매번 달랐다.
납치범이 요구한 150만 달러가 전달된다면 피랍자를 죽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납치전담팀의 판단이었고, 나 역시 큰돈을 주면 검거될 경우 가혹한 처벌이 두려워 피해자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또한 ‘재미를 본’ 납치범들이 한인들을 주된 타깃으로 삼아 납치를 하려고 눈이 벌겋게 설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인 선에서 더 이상 돈을 준비할 수 없다고 맞서기로 했다.
1월 24일 저녁 8시경 납치범은 그때까지 얼마가 준비됐는지 물으며 김 사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테니 몸값을 가져올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살려줘,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