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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청 Oct 20. 2022

# 6. 타들어가는 사막 위에서 혈혈단신으로..

現)주두바이대한민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 경감 김재훈*

타들어가는 사막 위에서 혈혈단신으로 전 세계를 관통하는 사건들에 맞서다


세계적인 교통허브이자 중동의 상징적인 대표 국가 아랍에미리트,,,

핵심 토후국 두바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일상 속 이야기를 소개한다.



     

Ⅰ. 생애 첫 경찰주재관 선발

Ⅱ. 웰컴 투 두바이, 국제적 사건사고의 집합소

Ⅲ. 중동국가에서 대사관도 아닌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어려움


. 생애 첫 경찰주재관 선발


 1. 주재국에 대한 연구로 언어적 약점 극복     


아라비아반도, 이슬람, 아랍.. 두바이의 화려한 야경과 함께  중동국가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문화권이라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IS와 같은 극단주의 등 테러리즘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수도인 아부다비보다 두바이에 장기 거주하는 교민들이 더 많고, 국제도시 이미지로 인해 방문객도 훨씬 많다는 이유로 대사관이 아닌 주두바이 총영사관에 경찰주재관이 배치되어 있다. 마천루가 숲을 이루는 미래도시의 상징처럼 관광으로 방문하기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곳이지만, 막상 일을 하기에는 세계에서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인 아랍어에 대한 부담에서부터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슬람교 문화를 거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각종 사법·행정 절차의 정보 부족까지 준비도, 의지를 다지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주재관이 되기 위해서 주재국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고, 얼마나 그에 맞춘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아랍에미리트, 특히 두바이는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90% 가까이 차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오히려 영어 사용국가에 가까울 정도로 영어 소통이 활발한 점을 확인하였다. (다만, 경찰 등 사법기관들은 영어로도 충분히 소통은 하지만 문서나 사법절차는 모두 아랍어로 진행되며, 북부의 중·소 토후국들은 아랍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

    

 2. 사람·물류의 허브, 화수분 같은 다양한 종류의 사건사고 대응전략   

 

두바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백신접 종률에 대한 자신감으로 각종 대규모 오프라인 행사를 치러내고, 특별히 큰 제한 없이 여행객들을 받아들이는 등 하늘길, 바닷길, 육지길을 사실상 모두 개방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이에, 모든 물류와 사람이 소통하는 세계 최대 허브로서 기능하다 보니 별의별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발생하지만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대사관과 달리 소규모의 총영사관이 위치하고 있는 두바이의 특성상 정말 경미한 일반적인 민원부터 대형 사건사고까지 경찰주재관에게 오롯이 부담되는 구조가 되어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곳이 바로 이곳, 주두바이총영사관이다.     


나는 한국에서의 12년간 모든 수사 분야(강력, 폭력, 여청, 과학수사 등 형사분야부터 지능, 경제, 사이버 등 교통 수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사 분야)에서 짧게라도 경험해 본 것이 사건사고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업무적으로 영어 소통에 큰 장애요소가 없다는 점을 어필하며, 적임자가 나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승부를 걸었고,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랍어를 할 줄도 모르고, 해외 근무 경험이 없는 초임 주재관이 두바이에 배치되게 된 상황이라, 합격 이후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컸던 것 같다. 속성으로 아랍어 알파벳을 떼고 가려 애를 썼고, 평소 자주 사용할 일이 없던 영어회화도 어떻게든 익숙해지고자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Ⅱ. 웰컴 투 두바이, 국제적 사건사고의 집합소

     

 1. 해상에서도, 육상에서도, 복합적으로도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     

 |우리 국민 승선 화물운반선 등 코로나19확산 관련 지원


부임한 지 채 3개월이 되지 않은 때였다. 처음으로 하는 해외 근무에 적응도 쉽지 않았던 시기, 샤르자·아즈만 등 북부 에미리트는 고사하고 두바이에 대한 파악도 완전하지 않던 시기였다. 하루에 10 통도 넘게 울리는 긴급전화 중에서도 유난히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부산 00선사 00과장입니다. 저희 화물 운반선 승선자 절반이 코로나에 걸렸는데, 한국인 선원 한 분은 이미 선상에서 돌아가셨고 나머지 한국인 선원 한 분도 상태가 극히 좋지 않으신데 가장 가까운 푸자이라 항구에서 입항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두바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이상 가야 하는 푸자이라 항구를 10번도 넘게 다녀왔다. 항만청, 항구의료센터, 항구 출입국사무소, 항구 경찰, 푸자이라 보건청, 푸자이라 병원, 푸자이라 일반 경찰... 절대로 허가될 수 없다는 것을 새벽까지 간절히 요청하고 협조 구하고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대사관까지 협조 구해가며 하나씩 해결해 갔다. 아랍어-영어 통역까지 대동해가며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미처 해결되기도 전에 푸자이라에서 1시간, 두바이에서 1시간 10분 떨어진 라스 알 카이마 남쪽 알자지라 항구에도 어선에서 코로나가 확진됐단다. 한국인 선원이 역시 위태하고 똑같이 입항도 거절되고 있다고 한다. 가슴이 턱 막혀왔다.

     

두바이-푸자이라-라스 알 카이마를 삼각형을 그리듯이 수차례를 돌아다니며 기관이라는 기관은 다 만나고 때로는 문전박대까지 당해가며 때로는 별것 아닌 도움에도 연신 감사를 표해가며 협조를 구했다. 한 달 걸릴 수 있다던 입항이 사흘 만에 이뤄지고, 일주일 걸린다던 시신 육상 안치와 응급환자 병원 긴급 후송 역시 이틀 만에 이뤄졌으며, 불가능하다던 육상 병원 입원도, 선원 교대도 결국에는 이뤄냈다.      

한국에서 비보를 들은 유족분들이 불편함 없이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시신 확인이 불가한 당시 방역지침에도 불구하고 시신에 짧게라도 예를 갖출 수 있게 경찰 정복을 입고 현장에서 관계자들 설득해가면서, 유해를 무사히 한국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가며 나 스스로 생각해도 초인 같은 대응을 능숙하게 해냈다.

상당수의 선원들이 무사히 회복해서 한국으로 돌아갔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다.

착하기만 하시던 유족분들은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구조 당시, 문자메시지 보낼 힘이 없어 SOS 세 글자만 반복해서 보내며 구조를 요청했고 응급 후송돼 고비를 넘기신 후, 덕분에 생명을 구했다며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에 뭐라도 해낸 것 마냥 어깨 으쓱해대던 내 모습은, 결국 두 달 뒤 차갑게 안치된 시신으로 그분들을 다시 뵙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보람도 속상함도 크게 와닿은 임기 첫 대형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주재국에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우리 국민 시신 송환


근무 기간 동안 뜨겁고 척박한 땅에서 안타깝게 사망하신 분들도 많았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죽음의 의미가 이 생에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보기 때문에 장례도 길게 치르지 않고, 우리처럼 어떻게 고인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신속한 처리와 빠른 일상 회복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이 있고 이러한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주재관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된다.     

높은 빌딩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신 우리 국민이 발견됐다. 가족들은 먼저 실종신고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틀 동안 경찰서와 숙소를 오가며 최종적으로 고인이 사망하셨음을 알게 됐다.


가족들은 도저히 두바이에 올 수 있는 상황은 되지 않는다며 사망원인에 대한 충분한 규명과 시신의 국내 송환을 요청하셨다.     

우리나라였으면 최소한 추락원인이라도 정확히 확인할 것 같지만, 현지 경찰은 추락으로 인한 상처 외엔 다른 상처는 확인되지 않았고 약물 검출도 되지 않았으며, CCTV상 추락 시간 임박해서 다른 사람의 관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아주 단순한 결론으로 사건을 종결하였다.

포렌식 보고서 같은 자료도 제공을 거부했으며, 당연히 현장에서 발견되었어야 할 휴대전화조차 처음엔 없다고 했다가 나중엔 포렌식 분석 중이라며 무한정 기다리라고만 했다.     


사망원인조차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사망진단서와 어쨌든 범죄 관련성은 없다고 결론 났다는 수준의 통보로는 유족들을 도저히 납득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 와중에 해당 건물 운영팀은 추락으로 인한 건물 파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두바이 경찰은 시신이 경찰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왜 빨리 송환하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정신없이 건물 현장, 경찰서, 경찰청을 뛰어다니며 관계자들을 만나고 설득한 결과 포렌식 보고서도 제공받고,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 유류품도 확인했으며, 건물 파손 부분도 유족들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여전히 사망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지만 나의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유족들은 나를 믿고 기다려주었다.   

  

유족을 대신하여 시신을 직접 확인도 했고, 훼손이 심한 시신은 형제분들만 확인하고 특히 고인의 모친께는 가급적 대면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드리게 되었으며, 무사히 시신을 송환한 뒤에도 5개월이나 더 현지 경찰과 실랑이를 한 끝에 반환받은 고인의 휴대전화 2점과 노트북 1점도 무사히 한국으로 전달해 드렸다. 노트북은 DHL 등 배송에 어려움이 있어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 직접 전달드렸는데, 너무나도 고마워하며 어쩔 줄 모르시던 유족분들의 그 눈빛과 모습에 내가 해외주재관으로 일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몇 건의 사망사건이 더 발생했고, 그때마다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무사히 송환 절차를 마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범죄조직에 속아 감금된 우리 국민 탈출 및 귀국지원


 “탈출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짧고 다소 어눌한 목소리가 긴급전화로 걸려온 후 끊어졌다. 바로 다시 걸었지만 수신되지 않았고,

잠시 후 문자메시지로 두바이 외곽 중국인 다수 거주지역의 어떤 빌라의 위치가 전송되었다. 즉시 비상상황이 발생함을 알리고 동료 행정직원들과 함께 나는 현장으로 달려갔고, 즉각적인 현장 조치를 위해 두바이 경찰에도 신고하여 현장으로 와 주기를 요청했다.     


현장은 조용했지만 극도로 의심스러웠다.

해당 빌라에는 아프리카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건물 밖을 응시하며 경계하듯 감시하다 우리 차를 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작은 승용차를 운전하며 약 1분 동안 3번 정도 마주칠 정도로 반복적으로 빌라 주변을 배회했고, 대낮인데도 우리 차가 등장한 이후 빌라의 커튼이 쳐지는 등 실제로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어와 한자(중국어)가 섞인 문자메시지 2건과 납치감금이 의심된다는 나의 진술만으로 주거지 진입 허가가 나거나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끈질기게 상황 확인 필요성과 의심스러운 정황, 신고자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임을 2시간 넘게 설득한 끝에 어느덧 현장에는 경찰특공대 차량 2대와 순찰차 8대, 본청 수사간부 차량 2대 등 수많은 차량과 인력이 투입되었다.


두바이 경찰은 총 26명의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조직 (중국인 23명, 나이지리아인 2명, 파키스탄인 1명)을 검거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나 당일 우리의 대처 덕분에 혼란한 틈을 타 무사히 탈출하였고 다음날 아침 주두바이총영사관을 방문했다.     

사안을 보니 두바이에 있는 불법 조직들은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한국인 또는 귀화자 등을 노려 가벼운 통역과 홍보업무를 진행한다고 속여 두바이로 입국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입국하게 되면 숙소로 안내한 후 잠깐 안심시켰다가 이윽고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사실상 감금한 채로 불법 사이트로의 호객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어쨌든 무사히 탈출한 우리 국민(귀화자)은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체류하면서 귀국을 준비하고 있고, 유사한 다른 사건들에서 탈출한 여타 우리 국민들은 무사히 귀국을 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우리 국민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연신 감사의 전화를 하였다.

        

 2.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복합 사기 사건의 온상     

|로맨스 스캠, 암호화폐 투자사기, 복합 폰지사기까지


두바이의 화려한 도시 경관과 배경은

여행객들에게는 환상을 주지만,

이것이 사기범들에게도 너무나 좋은 환경이 된다.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두바이 갑부들의 사례에 익숙해진 우리 국민들이 다소 허황되고 엉성한 수법과 조악한 문서에도 불구하고 두바이라는 그 이유 자체만으로 쉽게 믿었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두바이에 체류 중인 사기범이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 있으면서 마치 두바이에 있는 것처럼 사기 범행을 하거나, 근거지를 에스토니아, 영국, 나이지리아, 싱가포르, 스위스 등 해외에 두고 있으면서도 두바이의 자산을 관리한다고 속이거나 두바이를 실제 배경으로 하여 사기 범행을 벌여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사례들도 다수 발생하고 있으며, 범행 수법 또한 전통적인 무역·투자·차용사기 등에서부터 암호화폐 복합형 폰지사기·스미싱 등 신종 사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에 따라 경찰주재관인 나는 다양한 유형에 대한 핵심 내용과 대처방안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상담이 가능한 상황이 되며, 해외 국가의 상황이나 절차도 인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행히 수사부서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각종 자료들을 뒤지며 새롭게 공부할 수밖에 없다.     


로맨스 스캠 범인들은 왜 그렇게 두바이에서 체포되었다, 구금되었다, 문제가 생겼다, 금괴·현금 등을 압수당했다 등등 두바이를 배경으로 삼아서 범행수법을 구성하는지 모르겠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혼인신고도 안 했지만 남편이나 아내인 사람이 두바이에 잡혀 있고, 한국에서 같이 쓰기로 한 고액의 현금이나 금괴 등을 뺏기고 체포당했다고 제발 좀 우리 배우자 좀 살려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는 전화를 들으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속상하다. 어떤 때는 이런 사랑 한 번도 안 해봤냐고 역정을 내는 민원인들에게 욕설을 듣고 잠시 멍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미 사기임이 분명하고 스스로도 깨달았다고 진술하고도 재차 돈을 보내고 진짜 사기가 맞냐고 되묻는 우리 국민께 정신 좀 차리시라고 역정을 내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자문하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그래도 내가 다그쳐 준 덕분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긴 했지만 그나마 추가 피해라도 막았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UAE 전체의 사기사건 상담관으로..


경찰주재관은 주재국 현지에서 수사를 할 수는 없다.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피해상담, 신고절차 안내, 대응방법, 예방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그런 조력을 받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일반적인 경찰 수사절차나 주재국 사법 당국의 간단한 동향을 안내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분들이 많다.     

주재관으로 부임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나가니까 주재국 내에서 주두바이 총영사관에 새로 온 경찰주재관이 수사경력이 많아 각종 형사사건, 특히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형인 사기 사건에 대해 상세하고 세밀한 상담을 제공한다는 식의 입소문이 돌아 각종 피해 사례에 대한 상담 수요가 급증했다. 대사관 관할인 아부다비에 거주하는 교민들까지 상담을 요청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상황부터, 주재국에 거주하다 한국으로 귀국하신 분들의 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상 UAE 전체의 사기범죄 상담관처럼 활약하게 되면서 현지 한인신문에 인물 소개 기사도 게재되는 등 보람도 컸지만 동시에 업무부담도 너무 과중되었다.

올해부터는 공관 자문변호사로 위촉되신 현지 로펌 소속 한국인 변호사님과 상담 부분을 잘 배분하여 슬기롭게 대응을 하고 있다.     


 3. 허브국가·국제도시의 숙명, 타 국가 사건까지 간접 대응     


퇴근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겨 저녁도 먹을 겸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퇴근했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한국 뉴스를 검색하는데 히말라야 등정 중 실종된 산악인 소식이 보였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외교부 본부 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그 실종된 산악인께서 사용 중이신 위성전화의 통신회사가 두바이에 있으니 바로 접촉해서 세부 위치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한다. 두바이에 근무하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결국 그날 한 밥은 다음 날 저녁에서야 먹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외교부 본부에서 일본 해상에서 발견된 시신이 한국인으로 밝혀지면서 신원확인을 위해 가족 DNA 채취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다고 말씀드리려던 그때, 직계가족이 현재 두바이에 체류 중이니 DNA 채취 키트를 두바이로 보내줄 테니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하여 보내달란다.      


동중국해에서 침몰된 선박의 선사가 두바이에 있어서 수색·배상 등 협의를 위해 선사를 긴급 접촉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허브국가·국제도시에서 근무하는 경찰주재관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Ⅲ. 중동 국가에서 대사관도 아닌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어려움     

 

1. 협력은 힘들고, 국민 기대치는 높고     


중동지역이 힘든 것은 기본적인 협력이 쉽지 않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정무·경제·양자 업무와 같이 외교부다운 업무에 대해서는 주재국의 요청도 많고 우리가 요청할 사안도 많아서 상호주의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경찰주재관이 담당하는 사건사고 업무에 대해서는 주재국이 요청할 일이 거의 없고, 우리가 요청하는 사안은 보안이 크게 요구되거나 고도의 정치적·사법적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부분들과 관련이 되다 보니 간곡한 협조 요청에도 주재국 경찰 등 당국에서 응답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또한 중동 특유의 ‘인샬라(신의 뜻대로...)’ 문화로 행정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결과 통지도 상세하거나 친절하지 않은 것도 중대한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주재국에 체류, 거주하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재외공관,

특히 경찰주재관에 대한 기대치와 요구사항은 훨씬 크게 다가온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접촉하고, 확인해도 명확한 대답을 주기가 쉽지 않고, 예외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매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주재국에서는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경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업무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며, 극복을 위해서는 내가 부지런해져야 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오늘도 별일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잘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2. 총영사관의 여건으로 인한 업무부담의 가중     


다수의 직원들이 배치되어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면 되는 대사관과 달리, 소수의 직원들이 배치되어 한 명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공관 운영이 쉽지 않은 총영사관은 그 여건부터 근무자로 하여금 부담을 주는 곳이다.

그곳이 두바이처럼 교류가 활발하고 수요가 많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주재관은 일종의 ‘업무 무한 확정성’의 늪에 빠지기 쉽다. 직군 자체가 민원과 사건 대응에 특화되어 있고, 높은 경쟁을 뚫고 배치된 사람들인 만큼 전문성과 경쟁력이 출중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건사고 대응뿐만 아니라 일반 민원행정,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사증, 동포 업무와 같은 분야도 넓게 보면 사건 사고성 특징을 미세하게라도 갖는 경우가 많으니 전문성 있는 경찰주재관이 처리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분위기가 생긴다. 책임감과 집중도, 한계 등을 잘 형량 하여 슬기롭게 대응해나갈 수밖에 없지만 어려운 문제다.     


 3. 그래도, 또다시 새로운 다짐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두바이에 있는 것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 국민들이 두바이에 많이 있고, 그들에게 최적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또 어떤 보람과 긍지를 갖게 될지 기대하며 구두끈을 고쳐 묶고 힘찬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現)주두바이총영사관 경찰주재관

  2006년 경찰 입직, 경찰청(수사국, 과학수사관리관실 등), 서울경찰청(형사과),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수사과, 부산 북부경찰서 형사과 등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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