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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Feb 24. 2022

아이러니.

무표정은 표정인가. 무계획은 계획인가. 무목적은 목적인가. 무행위는 행위인가. 무지함은 지함인가. 무결점은 결점인가. 무승부는 승부인가

무색은 색인가. 무념(念)은 념인가. 무상(想)은 상인가. 무맛(味)은 맛인가

...


이 세상은 실재와 부재로 이뤄진다. 무언가의 존재와 무존재, 배중율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는 태어난다. 누군가는 져야 누군가는 이긴다. 누군가는 평균 이하여야 누군가는 평균 이상이 된다. 누군가가 평범해야 누군가는 특별하다. 누군가가 패배해야 누군가는 승리한다. 누군가가 체념해야 누군가는 극복한다. 누군가가 슬퍼해야 누군가는 기뻐한다. 아와 비아의 대립으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무와 유의 대립으로도 세상은 이뤄지겠지.  

우리 삶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없음으로 생기는 있음, 공(空)으로 생기는 만(滿). 지는 게 이긴다는, 방어가 공격이라는, 사랑하면 져야 한다는, 진실은 용서된다는, 옛날에는 그랬다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파렴치한 조언, 조언으로 위장한 독침. 

지는 건 지는 거다. 패자는 위로받는다. 존경받지 못한다. 간디의 투쟁이 실패했다면, 그는 한낱 미물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막는 건 막는 거다. 역사 속 이름을 떨친 어떤 장수도, 장군도, 대령도, 군인도 막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싸웠을 뿐이다. 공격한 것뿐이다. 

사랑하는 것과 지는 것은 별개이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의 경쟁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랑 속에서 승자와 패자는 없다. All or Nothing일 뿐이다.

진실은 용서되지 않는다. 떄론 거짓말이 용서된다. 진실되게 말해도 세상은 진실을 진실이라고 생각 안 한다. 본인의 잘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진실이라고 치부할 뿐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옛날은 근거가 되기에 정당성이 빈약하다. 가부장제는 전통이었다. 하지만 근거가 빈약해서 없어지는 추세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은 전통이었다. 가부장제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전통은 전통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본인의 모습을 전통이라는 가면으로 감추지 말기를.

시대가 바뀌었다고? 어떻게 바뀌었는가. 과거에는 어땠는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어떤 생각을, 어떤 사상을, 어떤 사고를, 어떤 관계를, 어떤 것을 지금 발견할 수 있는가. 동시에 과거에는 발견되지 않았는가. 시대가 바뀌어도 지혜는 그대로다.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황금률이 된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은 조언한다. 조언의 전제는, 조언의 대상이 조언의 주체보다 못난 처지에 있다는 것. 사실 조언의 주체도 조언대로 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언을 남발할 수도. 본인이 머릿속에서만 했던, 상상 속에서만 했던, 꿈에서만 가능했던,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체되지 않는 덩어리를, 침으로 어떻게든 녹여내서 잘 소화시키려는 의도는 아닐까.

필요할 땐 조언이지만, 필요 없을 때는 잔소리에 불과한, 온갖 잠언과 설교는... 발화자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누군가의 경청으로 해결되는 발화자의 소화불량. 누군가의 침묵이 누군가의 소란을 잠재울 수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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