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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Feb 13. 2022

일과 삶의 적분과 미분

일과 삶을 하나로 보는 시각과 둘로 보는 시각

 일하지 않으면 좋은가? 누구나 해봤을 질문이다. 월요일에 병에 걸리고, 금요일에 불타는 사람들은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한다. 이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한 것일 수도, 개인의 생각이 일치하여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둘 중 무엇이 옳든 일은 단순히 일을 의미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에게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통적으로 우리는 일과 삶을 하나로 보았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이 괜히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전쟁 불모지에서 선진국 반열로 이끈 것은 한강의 기적이었다. 기적의 주체는 노동자였다. 피라미드도, 만리장성도 모두 노동자가 만들었다. 노동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이 정체성은 디트로이트에서 발현되어 트럼프를 승리하게 했다. 노동 때문에 살아 있으며, 살아 있기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에서 자신을 찾았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집단이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옛날에는 지역 간의 이동이 거의 없었다. 상인을 제외하고는 지역 간의 이동이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직업을 물려받으며, 태어난 곳에서 죽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집단을 공동사회라고 한다. 공동사회는 아무런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태어난 김에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김에 지속된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계몽되었다. 자본주의가 활성화되었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공동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이익사회가 생겨났다. 특정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사회는 개인이 정체성의 부재를 느끼게 했다. 공동사회에서는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사회가 곧 정체성이었다. 이익사회에서는 달랐다. 정체성에 구멍이 생겼다. 다른 곳에서 태어난,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도시에 모였다. 그들은 정체성이 필요했다. 정체성 없는 개인이 어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은 정체성이 되었다. 이익사회를 중심으로 이끄는 유일한 구심력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 변화는 철학에서도 나타난다. 플라톤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이든 고전 철학자들의 사유 대상은 자연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에 답했다. 하지만 니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은 자신에게 집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정체성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하지만 최근의 풍조를 보면 이에 대한 반론이 생기기 마련이다. 워라밸이라는 풍조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둘의 상이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일을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과거에는 일한 만큼 성장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했다. 많이 일하면 빨리 성장하고, 빨리 성장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일과 성공의 비례 관계는 자연법에 써 있었다. 그러다 기계가 등장했다. 기계는 인간보다 많이 일했다. 처음에는 육체노동을 침범하더니, 정신노동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전유물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사람들의 굳건한 믿음은 깨지기 시작했다. 일과 삶이 하나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일의 부재는 위험으로 다가왔다. 일과 삶의 분리는 적응의 결과였다. 양자를 배타적으로 생각하면 일은 포기해도 삶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생각은 명맥을 유지했다. 한때 유행했던 월요병과 불금을 생각해보자.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금요일, 전자를 꺼리고 후자를 원하는 모습은 일을 삶을 억압하는 무언가로 생각할 때만 자연스럽다. 

 하지만 워라밸과 전통적 노동의 본질은 똑같다. 결국, 삶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노동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하지 않으면 좋은가?'는 '살지 않으면 좋은가?'와 같은 질문이다. 워라밸의 관점에서 '일하지 않으면 좋은가?'는 '생계 유지의 수단을 잃으면 좋은가?'와 같은 질문이다. 어느 쪽의 편에 서든, 질문에 대한 긍정은 삶의 포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로써,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일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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