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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Feb 16. 2022

늙는다고 어른은...

 어머니와 자녀로 보이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 어머니는 해맑은 표정을 짓는 반면, 딸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딸의 나이는 40대 후반, 어머니의 나이는 70대로 보였다. 둘 중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을 '늙은이'라고 한다. 이의 반의어는 '젊은이'이다. 비슷한 맥락의, 반의 관계로 어린아이와 어른이 있다. 보통 우리는 늙으면 어른이 된다는 명제를 머릿속에 품고 다닌다. 하지만 늙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에는 지대한 차이가 있다. 두 여인은 내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어른에 관하여

사람은 늙는다. 수분이 빠져나가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하얘진다. 이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힘이 약해지고, 건강은 나빠진다. 이것이 나이 듦의 법칙이다. 나이 듦의 법칙에 어른 됨이 낄 자리는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얼다'라는 단어가 있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에~>라는 황진이의 시조에도 나오는 단어인데, 육체적 사랑을 의미한다. 에로스와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얼다'에서 파생된 단어가 어른이다. 육체적 사랑을 경험한 사람 정도로 해석하면 될 터이니, '육체적'과 '사랑'을 이해하면 자연스레 어른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육체적 사랑은 연인 간의 신체를 공유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체액이 섞이기도 하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육체적 사랑의 전제이다. 즉, 육체적 사랑은 정신적 사랑보다 정열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양자 간에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말한다. 책임, 보호, 존중, 이해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지고 보호하고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70대 노인의 상황에서 네 가지를 이해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까. 누군가를 책임질 재정도, 체력도,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나이인 사람이 누군가를 보호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할 수 있을까. 존중할 수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면서 살아온 자들의 생각에 자신들은 지금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할 순 있을까. 70년의 세월 동안 견고히 다져진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보다 그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을 책임지고 보호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어른'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는 나이를 얼마냐 먹었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인가. 늙은이 중에는 어른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종종 보인다. 일상에서도, 미디어에서도, 눈앞에서도 종종 보이곤 한다. 늙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사회에서 공동으로 이뤄질 때, 진정한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 늙음과 젊음이라는 자연적 구분, 어른과 어린아이라는 사회적 구분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다. 당신의 나이는 어느 정도인가. 그런 당신은 어른으로 불릴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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