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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Feb 24. 2022

어느 한 기독인의 기도문

하나님.

자신이 만들어낸 한낱 미물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아들의 죽음을 방관하신 하나님.

자식 한 명을 위해서는 국가도 파는 것이 부모일 텐데, 아들로써 미물을 용서한 하나님.

죄와 자유를 같이 주신 하나님. 잇쉬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뱀에게서 다리를 앗아가신 동시에, 더 이상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신 모순의 하나님. 당신의 지혜를 따라가는 것을 불가능함을 직시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 세상을 주님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사랑과 관용은 제쳐두고 억압과 폭압과 폭력과 질책과 무시와 질투와 강요와 강압으로 일관하는 기독인이 있습니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독인과 평화롭게 사는 비기독인의 간극은 어떠하며, 그들 중 누구를 구원할 것이며,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며, 구원 후의 세계는 권태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의 세계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완전한 것이며,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며, 세상이 변함에 따라 주님 말씀의 의미도 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한 답을 제 목숨이 달려 있는 동안 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 누가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죽어서야 알 수 있는 답을 살아 있는 육신이 알려는 것은 조급함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만 만들고, 답할 수 있는 질문만 던지고, 세상의 많은 미지의 영역을 알지 않으려는, 자신의 무식과 무지를 파고들려 하지 않는 행위만 보이는 것입니까. 

주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불변과 가변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려고 하거나,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하는, 극단적 횡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불변하는 것에 대한 관용과 용서를, 가변하는 것에 대한 용기와 포용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죄인이 존재합니다. 주께서 아들의 죽음을 통해 살리진 미물의 후손이자, 미물인 자들입니다. 주께서 그들을 살리신 이유는, 미물은 알지 못하는 심오한 뜻은 해석 불가능한 것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빅뱅은 주의 뜻으로 만들어진 겁니까. 진화론과 창조론은 양립 불가능한 것입니까. 세상에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 주님은 사랑과 시기 중 어떤 것으로 보십니까. 주님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여럿이면서 하나입니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인류 역사를 포함한 지구의 역사를, 지구의 역사를 포함한 우주의 역사를 만드신 분이 주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은, 다양한 생각은 주님의 불확정한 면을 형상화하여 탄생한 것들입니까. 그렇다면 세상에 대한 사랑과 관용이 주님께서 기독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인 것입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주님을 찬송하는 것도, 주님을 없애는 것도, 주님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의 표면적 불멸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으시는 주님의 뜻입니까. 인간이 고통과 맞바꾼, 낙원과 맞바꾼, 노동의 힘듦과 출산의 고통과 우리가 누릴 수 있던 모든 것과 맞바꾼 자유의지는 온전한 것입니까. 이 세상에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까. 주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모두 아십니까. 우리의 인생은 정해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 시공간에 상관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나약한 실수와 착오는 사실 죄책감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입니까. 주의 뜻을 언제쯤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이 기도문을 읊조리는 와중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품으로 가는 것입니까. 지옥으로 간다면, 지옥은 주님의 품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천국으로 간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갑니까. 누군가의 말대로 비어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입니까. 어렸을 때의 몽상에 따라 되고 싶은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천국으로 가는 죽음은 왜 인간에게 두려움을 야기합니까. 그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는 곳이 천국입니까. 지상에서 학문에 뿌리내리는 자들은, 주님을 알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천국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지상에서의 노력은 천국에서 어떤 보상으로 다가옵니까. 보상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천국을 지상에서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으면서도 이를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까. 주님이 계신 곳에 대한 상상이 어려운 것도 역시 주님의 뜻입니까.

형식적이면서도 장황한 기도문과 도발적이면서도 모난 돌 같은 기도문 중 어떤 것을 듣고 계십니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이면서 여럿인 주님의 답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독인으로서, 본인을 믿지 못하여 주님을 믿는 기독인으로서 남은 삶을 주님께서 이끌어주실 줄을 믿어야만 합니다. 제 믿음이 변화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이기심만큼 변화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이 기도문에 대한 답을 여실히 찾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도록, 주님께서 찾도록 허락하신 답을 찾을 수 있는 운명을 설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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