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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노을 Feb 08. 2022

첫눈이 내리면

첫눈을 새롭게...

 짜장면과 짬뽕, 산과 바다는 양자택일의 단골 문제이다. 여름과 겨울도 그중 하나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전 세계의 50% 정도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50% 정도 일 것이고, 당신이 속한 공동체의 50% 정도 될 것이다. 그들이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의 막대한 비중은 아마 '눈'이 차질할 것이다.  

 올해의 시작부터 필자가 이 글을 쓰는 2월 4일까지 눈이 내린 풍경을 다섯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그중 첫 번째 눈이 내리는 날, 즉 첫눈 내리는 날은 유독 눈이 뭉클함으로 번져서 내린다. 하지만 이런 생각 안 해 보았는가. 왜 우리는 첫눈은 기억하지만, 첫 비는 기억하지 않을까. 첫 벼락, 첫 천둥, 첫 햇빛은 왜 기억하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기상상태 중 첫눈만이 합성어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첫눈만 많이 사용되는 단어인 것이다. 우리는 왜 눈에만 의미를 부여하는가. 농경사회의 유전자가 아직도 우리 몸에 존재한다면 비를 더 소중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비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눈을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 이유를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얀 눈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머리가 하얘지는 병을 가지고 있다. 병은 그 자체로 부정적이겠지만,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마냥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얀색은 쓸쓸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을 보여준다. 많은 드라마의 이별 장면 중 시청자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눈이 내리는 곳에서의 이별이다. 눈 자체가 주는 쓸쓸함이 이별의 슬픔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눈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사랑 장면 중 시청자의 행복을 고양시키는 것은 눈 내린 들판에 연인이 누운 상태로 팔과 다리를 휘적여 천사의 그림자를 들판에 남기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 그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 있으랴. 첫눈은 쓸쓸함보다 순수함의 하얀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순수함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니체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 초인이 탄생한다고 했다. 순수한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사회가 지우는 짐을 묵묵히 등에 매는 낙타의 모습에 불과하다. 부조리에 저항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런 순수한 모습은 고전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대학을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취업을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면서 결혼 후 시달린 자금난을 생각한다. 직업을 생각하면서 돈을 생각하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유산을 생각한다. 친구를 생각하면서 질투를 느끼고, 어떤 사람의 행복이 본인에게 불행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순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죽은 학자들의 이야기에 아직도 귀 기울인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 중 일부는 잭팟을 위해, 혹은 명예를 위해 공부할 뿐이다. 경영하고 싶다는 사람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는 질타를 받고, 세상이 살만하다는 사람에게는 경험과 나이가 부족하다는 반응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렸을 적 우리의 꿈은 과학자였다. 마술사, 요리사, 대통령, 의사, 간호사, 경찰. 그중 대부분의 직업은 우리에게 직업 자체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명예, 지위, 연봉이 먼저 보인다. 직업은 부산물인 것이다. 이런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첫눈은 조금이라도 순수해지기를 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첫눈은 세상에 처음 태어난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는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려는 하늘의 작은 선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돈을 좋아하는 필자의 모순적인 태도는 역설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낯선 눈

 눈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눈 내린 다음날에 알 수 있다. 비가 내린 다음날은 어제와  같다. 하지만 눈이 내린 다음날은? 설경(雪景)이 되어 있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삿포로 눈 축제가 거론되는 것만 봐도 설경의 매력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어느샌가 '호캉스'가 유행이 되었다.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인데, 호텔에서만 묵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침대 정리, 설거지 등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호캉스가 유행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있진 않을 것 같다. 필자는 매너리즘의 탈피를 그 이유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똑같은 회사로 출근하고, 똑같은 업무를 맡으며, 똑같은 날짜에, 똑같은 계좌로 월급을 받는다. 동료도 비슷하고, 출근 때 입는 옷도 비슷하고, 상사의 잔소리도 비슷하다. 회사의 풍경, 출근길과 퇴근길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일상에 지친 직장인에게 휴가는 활력소가 된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똑같은' 일상에서 말이다. 호텔에는 그 자체로 집과 다르다. 집에 있으면, 예쁜 쓰레기가 되는 소품이 호텔에서는 작품이 된다. 집에서는 때가 타는 것들이 호텔에서는 고급이 된다. 호텔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잠시나마 이끈다.

 설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항상 봐 온 풍경을 낯설게 한다. 문학에도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이 존재할 정도이니,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해 가능하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기념일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초콜릿 공장의 상술이네, 기업이 만든 날이네, 하면서 기념일을 비판하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아직도 기념일은 건재하다. 달력에 존재하는 중립적인 숫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달력에 존재하는 빨간 날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보이게 해주는 마법 같은 매력의 색깔 놀이, 그리고 그 색깔들을 프리즘에 모이게 하면 나오는 흰색. 첫눈에서 흰색을, 흰색에서 희망을 찾는 우리네 모습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잠시나마 투영된 것은 아닐까.


첫눈을 반기는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이룬다. 우리 사회에도 첫눈 같은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대선으로써, 누군가는 경제성장으로써, 누군가는 외교로써, 누군가는 안보로써, 누군가는 죽음으로써, 첫눈 내리는 날을 만들고자 한다. 철학과 사회학, 경제학과 심리학, 언어학과 종교학, 수학과 물리학은 자신들의 첫눈을 하늘에서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당신에게 첫눈은 필요한가. 그렇다면 당신의 첫눈은 무엇인가. 지친 일상에서 하늘을 볼 때, 첫눈이 내리면 잠시나마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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