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노동자들의 최소 효율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고된 일상과 삶의 애환을 알려준다.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은 자기모순적 행태를 보인다. 별걸 다 줄이냐는 줄임말에 대한 비판적 어조를 동시에 스스로 별걸 다 줄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적 속성을 지닌 현대인을 비판하는 일종의 자조적 표현이다.
'할말하않(할 말은 하지만 하지 않겠다)'은 사회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할 말이 많은데 하지 않는 상황이 언제인지를 생각해보자. 좁게는 집단 내에서, 넓게는 인관관계 전부이다.
좁다면...
집단에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한다면, 그 집단은 관료제를 표방할 확률이 크다.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관료제 사회에서 부하직원은 할 말을 하지 않는다. 이때의 문제점은 초기의 애로사항이 나비효과와 눈덩이효과를 거쳐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기의 애러사항을 발견한 사람은 분명 있다. 하지만 상사에게 말해봤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은 예측한 그 사람은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을 선택한 사람이 발견자였다는 것이 확인되면, 상사는 쓴소리를 시전한다. 하지만 이런 상사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피하고자 부하직원은 더욱더 침묵을 선택한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관료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탈관료제가 등장하였다. 탈관료제를 채택한 회사라고 규율이 없거나, 직원을 방임시키거나 하지 않는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소통에 있어서 막힌 물꼬를 터준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문제가 생긴다면 상사나 동료직원에게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회의나 대화가 이루어진다. 문제점은 초기에 발견/해결될 것이다. 직원이 할말하않을 보이는 회사가 있다면 조직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체제를 개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야 있지만, 병폐가 계속된다면 조직체제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바, 재수를 하는 수험생이 있다. 재수에 실패하면 삼수를 한다. 삼수에 실패하면 사수를 한다... 수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어떨지, 갈 수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은 어떨지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제 자체를 과감히 버린다면, 타개에서 파훼로 넘어갈 수 있는 절대자의 자격을 얻을 수도 있다.
넓다면...
인간관계에서 할말하않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다- 때문이다. 우린 매일매일 인적 네트워크의 소중함을 느낀다. 경제에 해박한 사람과의 교류, 정치에 몸담는 사람과의 교류, 예술가로 업적을 세운 자와의 교류... 이런 교류는 망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관계가 망상보다 못하단 이유로 고독을 느낄 순 없다. 현재의 관계까지 끊어버리면 인간이리를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강박은 매끄러운 관계 유지를 강요한다. 그 결과,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는 형국이 나타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으로 틀린 말,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말,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말 그런 것들에 대한 기갈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할 말을 다 할 필요 없다고, 친목을 위한 관계도 아닌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다고 되뇌이는 우리의 모습은 목에 막힌 고구마가 침에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미련한 누군가의 모습처럼 보인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우리의 삶의 의지는 할말하않으로 나타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실이 적금 같기를, 이자가 붙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만기일이 찾아오기를. 죽기 전에 그런 관계를 정리할 수 있기를,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