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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yang Dec 21. 2023

여자끼리가 좋아 여행

언니랑 나랑 고등학생 때 새언니가 들어와서 한집에 살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감정들이 있지만  뭔가 끈끈하면서도 센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핏줄이 아니어도, 함께 한 10년쯤 살게 되면 가지게 되는 정이랄까, 그런 관계가 성립된다는 거. 우리가 바로 그런  산증인들이다. 20대 후반까지도 같이 살다 결혼하면서 각자 살게 되었었지만 지금 우리 나이가 몇 개인가 그동안  생일이며 제사며 명절이며 함께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언니는 환갑이 지나도 항상 새언니라 좋겠다. 호칭이야 새언니라고 부르지만 제일 큰언니의 느낌이랄까. 한참 푸릇하던 시절에 만났고 가끔씩 생기는 오빠와의 갈등도 우리와 풀면서 이야기할 때도 많았다. 우리가 새언니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녀도 우리를 친구처럼 동생처럼 좋아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맺어짐이  보통은 어떤 틀에 많이 놓여 있다.  그걸로 인해 만들어지는 고정관념도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그 틀을 깨 버리면 마음 따뜻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여러 번의 솔직하고 화끈한 대화로 알게 된 우리 갑자매와 새언니의 관계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별다른 노력 없이도 우리의 고리는 튼튼하게 잘 이어졌고   세월이 흘러도 헐거워지지 않았다.  세명의 시끄러운 시누이와 오빠의 훌륭한 전여친은 이제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4명의  여행동지로 거듭나게 된다.



여행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날씨에 어울리는 장소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하고 가기 전에 빠진 것은 없는지 체크하고  일주일 전부터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집도 좀 치워놔야 하고 각자 식구들 먹을 밑반찬도 좀 만들어놔야 하고  캐리어를 다 싸서 현관 앞에 세워놓고는 그때부터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신나고 또 신나는 일이 있을 때 나는 잠이 안 온다. 오랜만에 라운딩이 잡힌 전날도 항상 마찬가지다. 다음날 컨디션저조로 세홀은 정신못차려도 설레기만 하면 잠이 안오는 불치병이 있다. 여행이라.~~ 캬아~~ 남편들 다 띠어 놓고 여자네명만 가는 여행. 집에 있는 남편들 누구도 걱정 안 할 나이의 여자네명.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방해하는 자들이 없다.ㅋㅋ 하긴 우리누구도 집에 있을 짝꿍을 걱정하지 않는것은 천생연분이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나라의 국룰처럼 감히 아무도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례행사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나 열심히 200%로 살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 되게 고파 올 때쯤 되면 남자들은 "아네 사모님 다녀오세요." 한다. 여행은 즉흥적으로 결정되며 짜인 형식은 전혀 없다. 꼼꼼한 막내가 다 알아서 하지만 우리는 거의 막내스케줄대로 다녀 본 적이 없다. 가다 배고프면 먹어야 되고 가다 목마르면 마셔야 되고 본성에만 충실한 ... 뭐 그 정도야.... 기본이지 ...괜히 갑이야? 우리 목에 상처있는 여자들이야~~~


시집 장가 다 보낸 지금의 우리는  너무 좋다.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엄청 챙기면서 서로들 살고 있다. 누구 관절하나 나가면  우리의 여행일정에 차질을 줄까 싶어 서로 조금만 아프면 병원 가기를 종용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엄마 제사상 앞에서 이렇게 줄줄이 딸사탕으로 낳아준 엄마에게 합동으로 감사드리곤 한다.  맨위에 오빠로 인한 새언니멤버영입은 괜찮지만 중간에라도 남자하나 낳았어봐 올케가 있을텐데 이건 좀 상상이 안되서 말이다. 감사한 우리엄마! 병도 샘을 부리듯이 같이 걸리고....  일본여행에서 엄청 힘들어했던 새언니는 당뇨가 왔었고  아들 테라스하우스 입주앞두고 오르락 내리락 도와주던 큰언니는 무릎이 아파서 수술했었지만  사실 별다른 이벤트없어도 만남 자체가 즐거운것 같기도 하다.  좀 더 먼 미래에는 우리들만의 여행도 끝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온통 인생이 슬퍼진다.  왜 좋은 건 항상 짧은 걸까.


우리 세 자매끼리 추정해 본 바에 의하면  어릴 때 우리가 자주 놀던 밭 근처나 아니면 놀이터에서 체르노빌에서 날아온 낙진을 한꺼번에 맞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을 지은적도 있다.  셋이 다 똑같이 걸린 게  아무래도 시원치 않은 숙제로 남는다. 조금 우울한 주제로 시작된 대화도 큰언니랑 나만 있으면 유쾌한 웃음으로 마무리 되는 신기자매들이라 ㅋㅋ 무조건 어떻게든 이겨낸다.  그때 누가 꼬셔서 나갔다는 둥, 아니 내가 아니라는 둥, 너는 꼭 그랬다는 둥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또 배꼽을 잡으며 웃게 되는 거 그런 게 만날 때마다 좋은 포인트가 된다. 새언니는 우리가 떠들면 주로 웃음을 담당한다. 고모들 너무 웃겨서 미치겠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웃기는 사람은 큰언니 아니면 나다. 웃음코드의 쌍두마차! ㅋㅋ. 새언니가 웃다가 화장실에 가고야 마는 사건의 시작은 늘 비슷하다. 주로 내가 던지면 큰언니가 받아치고  그걸 내가 다시 받고 다시 치면   큰언니가 더 세게  받고 그다음이 고비인데 나는 그 무렵부터  못 받아치고 기가 빨리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상항이 이 정도 되면 새언니랑 막내는 웃겨 죽는 뭐 그런 단순한 원리지만 우리도 웃겨 죽는다는...ㅋㅋ


괌으로 가기 전 출국장부터 시작된 새언니와 큰언니의 수다는 내릴 때까지 계속되고 잠도 안 자고 누구 하나 뻗을 때까지 떠든다. 저녁 무렵쯤 괌에 도착해서 아직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모두 헬슥하게 공항을 나왔다. 전날 집청소를 왜 했을까 사 먹으라고 할걸 밑반찬 만들어 놓는다고 장보고 음식 만들고 염색할 시간도 없었는데 말이지 물먹은 솜방망이처럼...... (참! 가족이라 좋은 점 아무렇게나 만나도 된다는 거... 너무 좋은 거...이따가  이 말 잊어버릴까 봐 문맥도 안 맞는 곳에 먼저 씀). 어느 공항을 나오든지 하늘을 먼저 보는 편인 나는 저녁인데도 푸르스름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큰언니는 모국방문이라며 좋아하고 막내는 주로 숙소와 렌터카를 담당하느라 바쁘고 비행기에서는 무료하다가도 공항만 나오면 바빠지는 이상한 우리의 루틴이다.   


우리 큰언니의 모국의 개념은 일단 자기의 옷 사이즈가 있는 나라가 자기의 나라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자기의 모국에 자기 옷사이즈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열변을 토하면 나머지는 모두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다. 실제가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우리 언니 사이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뭐 사실 우리도 새언니 빼고는 얼추 비슷하다. 엄마가 남겨준 유전자의 힘이랄까. 모두 우량이다. 아무튼 그렇게 괌은 첫 여행 때부터 큰언니의 모국이 되었다. 어느 옷가게를 들어가도 자기 사이즈가 있다며 이게 모국이지 뭐가 모국이냐고 좋아한다. 시민권 없는 모국 ㅋㅋ 그다음 날부터 이어진 아무렇게나 스케줄과 아웃렛 쇼핑 그리고 사진 커피 모든 것에  진심인 행복 여행이 된다. 막내가 차를 세우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혹시 대박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알고 가는 곳보다 천배는 더 좋은 것이다. 일본을 갈 때는 온천 오마카세 맛차 드럭스토어 진심 행복 여행이 되고 중국을 갈 때는 중국어 잘하는 큰언니의 쏼라덕분에 찐 A급 쇼핑, 음식투어, 진주가게 등 우리에겐 우리들만의 코스가 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세상 좋은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청소도 빨래도 음식도 내가 자주 말하는 죽어야 끝나는 우리들의 일상을 여행할 때만큼은 모두에게 예외가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여행을 이야기하고  기다리는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내가 어깨를 훌러덩 벗고 다녀도 아무하고도 엮이는  일이 없다는 게 너무 좋다. 여자끼리여서 가능한 것들이 있는 여행이 그래서 좋다. 두려움이 없는 나이들과 갑이 된 용감함에 한결 여행이 쉽다고 할까? 암튼 좋다.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주는 추억리스의 시간들은 우리를 가끔 지치게 한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면 이건 다 똑같은 거잖아. 어떤 사람들은 오늘을 잘 살아야 그것이 곧 미래를 잘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근데 난 아니다. 난 다르게 살고싶다.오늘과 똑같은 내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무엇을 하더라도 같은 루틴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 삶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감독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뒤죽박죽의 생각과 일들이 벌어져도 같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고. 그런 비획일이 주는 위안은  언제나 새롭다. 그중에서도 여자끼리의 여행은 내 연극의 프롤로그 같은 내 삶의 별미이다.  막내가 짠 스케줄이 비록 있어도 용감하게 우리의 본성에 충실하면서  지키지 않는 언냐들이 있고, 때로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 되어, 때로는 정숙한 숙녀의 모습으로  순수자유여행자들이  되는, 오랫동안 친숙한 여자끼리의 여행은 늘 좋다. 겨울철 시원 달콤한 동치미국물처럼 내 삶의 별미 중의 별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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