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coyang Dec 22. 2023

 아홉 수의 고뇌

나에겐 내 나이의 끝자리마다 부여된 나만의 계획이 있다. 열살 스무살에는 이런 생각조차 못했던 나이었고 서른이 지나면서 서른 아홉에 겪은 고뇌의 끝에  얻게 된  계획이다. 서른을 지나 흔히들 아홉수라고 하는 서른아홉이라는 애랑  마주하고 보니까 다가올 4자에 대한 느낌이 영 찝찝했다. 벌써 4라구? 이제부터는 마흔 그담엔 마흔하나... 마흔둘...마흔셋이라구? 좀 어처구니없어 나혼자 마흔하나 마흔둘을 소리내어 말해봤었다. '모야 인생이 참 어처구니가 없네'  한참 아이키우고 남편사업 봐주구 언제 다 지나갔는지 이렇게 하다가는 싹 도둑맞은 것 같은  세월을 더이상 정의 내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 20대 때는 꽤 노느라고 지나간거 인정! 근데 서른 부터 서른아홉까지는 통 뭘했는지 맨날 밥짓고 빨래하고 애키운거 밖에 ... 물론 그 10년은 우리 가정 경제로 볼때는 기반을 잡는 중요한 시기여서 나름 아껴서 집도 사고 아이도 유학 보내고 딱히 한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썰렁한 느낌의 10년을 붙잡고 며칠동안 아쉬워 하는건 또 뭐지?. 그해 서른아홉 겨울 쯤에는 그런 느낌의 절정..... 혀밑언저리가 간질간질한 느낌? 아니 저 내장쪽 어디가 사각사각한 느낌? 뭐라 표현못할 느낌때문에 그해 아홉수를 넘기는 데 무척 힘들었었다. 누군가가 간지럼을 태우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는거 별거아닌데 뭘 정의하고 뭘 의미부여하고 쓸데없는 짓이야. 밥잘먹고 어디 안아프고 남편사업잘되고 아이공부잘하면 장땡이지. 안그냐?'' 내가 수도없이 맨날 말하지만 적당히 해라"

몇번을 나한테 이렇게 뇌시키면서 목덜미를 움켜잡아도 스물스물 올라오는 '서른 아홉 마흔 마흔하나 마흔 둘 ..... ''그래 이제 며칠안남았네 나는 다시는 30대없어. ''그래서 뭐 어떤데 누가 잡아가나? 왜그래 40도 젊고 좋은 나이잖아' 하면서 관객없이 나만의 필름은 또 돌아갔다.





아예 남편한테 해가 바뀔때까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 가만놔두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해 놓고말이다. (ㅋㅋ 그때도 난 어렸었나봐... 유치하기 짝이없네 )남편은 그렇게 예민하게 굴게 뭐있냐며 자기는 나이드는거 아무 감정도 못느낀다고 했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당신은 아직 일년 남았자나! ""내가 3개월 누나벌인데 해가 바뀌고 띠가 바뀌어서... 어쨌든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세상 느낌도 내가 먼저잖아! "라고 소리치며 당신은 이 느낌 모른다고 일부러 슬픈영화를 보면서 막 크라이막스에  목놓아 울었다. 그러니까 우리 유디티 남편은 손수건도 아니구 욕실타올을 가져다 주는데 어이없어서 나오던 눈물이 쏘옥 들어갔었다. 하긴 당신이 뭔잘못이야. 한달에 한번 예민해지면 시비걸고 연말에 시비걸고 생일 결혼기념일 하다못해 우리나라 기념일도 아닌 발렌타인데이에도 시비걸고..... 알아 다 아는데 ...남편은 나한테 동감을 못해주는게 늘 화근이 되는걸 모른다. 몇번 감정이입과 동감에 대한 강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한 충성과 애국심 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  머리속으로  교과서를 밀어넣을 수가 없다.  





나는 원래 어떤것을 미리 못하고 닥쳐야 하는 좋지못한 습관이 있다. 공과금고지서가 날라와도 고지서 마지막날 은행 붐빌때 가서 사람이 왜이렇게 많냐고 짜증 있는데로 부리면서 내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큰언니랑은 대조적으로 매우 즉흥적이고 준비성없고 덜렁거리고 물건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후회나 자책은 또  해본적이 없다. '이런건 아무나 가질수 있는 게 아니야.' 하면서 오히려 '이런 매력덩어리' ㅋㅋ 웃어버린다. 근데 끝자리가 0으로 시작해서 9까지 십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시간인가!  이제 막 해가 바뀔려고 하는 이 순간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두고 고민에 빠진단 말인가... 내일 종말이라도 올것같이 집안 분위기를 일부러 침침하게 만들고 말이다. 남편이 한번 그 두꺼운 팔로 꽉 안아주면 병이 나을 것도 같은데... 건드리지도 말라고 엄포한 이후에는 어디에 숨어있는지 남편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당최 뭘모르는 내남자!








대망의 마지막날 12월31일 남편의 제안

"이따가 맥주한잔 하면서 제야의 종소리 들을까?"

'맥주같은 소리하고 있네 맛있는 와인에 치즈두 아니구'

"당신 이제 그만해라.. 여자들은 뭐가 그렇게 복잡해 . 내일 뜨는 해도 오늘 뜬 해랑 똑같은 거야"

'저게 말이야 방구야. 세상 만물사에 의미를 부여를 할줄 모르는... 으이구'

12월중순에 시작된 막바지 10주년 고민행사가 이제 나도 슬슬 지겨워지면서 (원래 끈기도 없고) 나두 어떻게든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던  찰라였어서  가만히 듣는척 하다가

"그럼 가서 맥주하고 안주 뭐 사와" 하니까 남편은 금방 화색이 돌면서 겉옷도 입지않고 나간다.

"자갸아  밖에 추워 이거 입구가아~~"   



내맘 쓰리다고 맨날 타겟은 짝꿍이니 한편으론 미안하고 한편으론 그건 당연한 거구  대체적으로는 내가 좀 심하다. 항상.. 우리 남편은 처음도 무 마지막도 무 그냥 없을 무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감정기복이 무인 사람이다 . 산악회 아이디가 무인도!  남편성화에 한번 따라갔던 산악회에서  회원들이 " 무인도에 사는 분이 누군가 했더니 이분이시구나" 라고 했었는데 . "뭐? 무인도? 희망사항? "  어이가 또 없었다. 암튼 ... 나만 고요하면 세상 고요한 사람인데 조금 후회하면서 남편이 슈퍼에 간사이에 아직 못낸 결론을 내기로 하고 앞으로의 십년계획을 후다닥 세운다. 뭐하기 뭐하기 이렇게 살기 저렇게 살기 건강하기...........

나는 벌써 맥주랑 함께 먹을 오징어를 꺼내고 청양고추 썰어넣은 마요네즈를 만들고 있었다.고뇌 이제 무!


이전 08화 아버지의 고백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