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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목마름 사이에서

미국 교외 생활

by Mindful Clara

17년째 미국에 살고있다. 하지만 이곳의 생활은 여전히 낯설다. 모든 게 넓고 여유있어 보이지만, 정작 그 속에 내가 숨 쉴 수 있는 ‘깊이’는 많지 않다. 4년전 텍사스 교외로 이사 오고 나서, 미국 생활에 큰 이질감을 느낀다.“아, 이곳이 진짜 미국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대도시의 중심에 살때는 다양한 사람들이 얕게나마 섞여 있었다. 삶의 스타일을 적당히 서로에게 맞추며 생활한다. 하지만 미국 남부의 교외지역은 다르다. 각자 인종별, 문화별 커뮤니티 안에 깊이 머무르며 서로 교차되지 않는 삶을 산다.

타 문화에 경험이 많지 않은 미국사람들, 인도에서 갓 건너온 인도사람들, 어디를 가나 한자리 차지하는 중국사람들 등은 자기 색을 더 진하게 드러내고 교류보다는 분리 쪽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이건 단순한 언어의 장벽이나 외국인으로서의 불편함이 아니다. 삶을 사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자주 체감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멕시멀리즘’이 하나의 생활 철학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집은 널찍해야 하고, 차는 크고 어른 수만큼 있어야 하며, 특별한날 (holiday) 때마다 집 안 전체를 테마에 맞는 장식으로 채우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번이라도 사용하는 것은 꼭 구입하고, 공간은 여백 없이 물건으로 가득 찬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에 대한 믿음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화 안에서, 나는 무언가가 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처럼 불편하다.


나를 들여다 보지 않았던 이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바라는 삶의 스타일, 문화의 무게.... 그 모든 것들은 단순히 남 보기에 ‘좋아보이는 요소’도 아니고, '물질적으로 넘쳐나게 갖는것'도 아니다. 그건 내 삶의 중심을 이루는, 꼭 필요한 정서들이다.


예전엔 나도 큰 집, 잘 꾸며진 인테리어, 수영장과 같은 편의 시설, 누가 봐도 멋지고 괜찮아 보이는 것에 마음이 끌렸던 적이 있었다. 그게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더 알게 되면서부터,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물질적 완성도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음식과 예술, 다양한 교류 속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삶...그런 것들이 내 주변에 있을 때 나는 더 충만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그 감각들이 사라질 때마다, 나는 ‘무언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뼈속 깊이 느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누리는 것에도 감사하고 있다. 감사해야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안전한 동네(미국은 총기 때문에 완전히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렵지만..)주차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는 공간, 충분한 식재료, 넓은 마당과 우리 네가족에게 충분히 크고 아름다운 집, 편하게 뛸 수 있는 잘 정돈된 산책로등 부족하지 않은 조건 속에 살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는 삶의 풍경이 나의 머릿속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그건 더 복잡하고 때로는 더 피곤한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 속에서 더 생생하게 나를 느낀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데려가 주길 바라지 않는다. 원한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안다. 지금 당장은 불평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 글을 쓰며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건강한 요리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나누며 이 곳에서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삶의 색을 만들어 가보는 것.

아직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가고 싶은 방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듯 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 내가 더 깊고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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