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유일하게 챙겨보는 한국 방송이 있다.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 유명 셰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 속 재료를 가지고 -15분 요리 대결-을 펼친다.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 가볍게 즐기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요리를 하는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방송을 볼 때마다 '나였다면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저 재료를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구나', '이렇게 조합하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이탈리안 셰프, 파인 다이닝 셰프, 중식 셰프, 아마추어 셰프 등 다양한 셰프들이 출연한다.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이는 셰프, 게스트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읽는 셰프, 주제를 정확하게 꿰뚫는 셰프 등 그들의 개성을 분석하면서 보는 재미가 크다.
나는 건강 요리를 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모든 요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건강 요리’라고 하면 사찰음식 같은 특정한 이미지만 떠올렸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식을 경험하고 배우다 보면, 언제든 건강한 재료로 대체해 나만의 건강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파인 다이닝 셰프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나의 관점이다.) 물론 이들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인 다이닝 특유의 다층적인 요리 방식이 인상 깊다. 다양한 요리 기법의 믹스, 재료의 특성을 꿰뚫는 조합, 상상을 넘는 재해석이 기본이 된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안 셰프 파브리의 활약이 인상 깊다. 여러 미디어 속에서 그는 늘 허당 같고 사람 좋은 이미지였지만, 알고 보니 10년 넘게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진짜 실력자였다. 그의 요리를 보면 '시간은 결코 무시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험이 많은 셰프들은 확실히 다르다. 아이디어의 깊이와 넓이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끝없는 배움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
한 자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라 해도 꾸준히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배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타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음식 속에 녹여낸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확실한 차이가 생긴다. 나 역시 잠깐의 여행만 다녀와도 그 지역의 음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요리도 이 세상의 모든 일처럼 배움을 멈추면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젊은 셰프들과, 10-15년 이상의 경력차이가 나는 셰프들 사이에는 아이디어 깊이에 대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흑백요리사'등 요리 관련 방송의 인기로 셰프들의 입지가 어느때 보다 단단하다. 하지만 그로인해 현재 주목받는 젊은 셰프들도, 한때의 인기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 배움을 이어가길 바래본다.
AI가 우리의 삶 속 깊숙이 들어온 시대다.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맛은 더욱 정교해지고있다. 나는 셰프라는 직업이 결코 AI로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간단하고 큰 기대가 없는 음식을 위한 AI 요리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진짜 좋은 음식’에 대한 욕구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의 손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요리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경험의 깊이, 창의적인 해석, 셰프로서의 태도까지. 많은 요소들이 내게 배움의 기회를 안겨주고있다.
방송 안의 셰프들 처럼 나 역시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