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를 돌아보기
20대까지는 쇼핑이 너무나 즐거웠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쇼핑몰. 수다를 떨며 구경을 하다보면, 별 생각없이 이것저것 구매하게 된다. 예쁘면 사고, 비싼 물건이 세일이면 무조건 사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그 조건에 맞으면 구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아, 실제로는 잘 착용하지 않게 되는구나. 비싼 옷인데 나한테는 안 어울리네..'
남들 기준에 예쁘거나 가격에 이끌려 덜컥 집어 든 물건 중, 결국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것들은 순간의 만족감만 남긴채 결국 옷장이나 서랍 속을 차지하는 짐이 되어버렸다.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주방 용품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물건을 직접 보고 사야하는 고집 때문인지, 인플루언서의 추천이나 한국에서 흔했던 홈쇼핑 유행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유용해 보이니까’, ‘가성비 좋으니까’, '내 요리가 편해질거 같으니까' 라는 이유로 적당한 물건을 사는 버릇은 여전히 갖고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는 가족이 준 옷과 가방들이었다. 몇번밖에 안 입었다며, 좋은 것이라며, 볼 때마다 잔뜩 쥐어주었지만 사실 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가족 덕분에 내 옷장은 점점 무거워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진짜 좋아하지 않는 물건에 나를 맞추고 있는 느낌이 싫었다. 비싼 옷은 아니더라도, 내 몸에 걸치는 것은 내가 직접 고르고 마음에 꼭 드는 것만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인에게 필요가 다한 물건을 나누는 것도 참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있다. 나에게 가치가 있었다고 해서 다른이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법은 없다. 즐겁게 쇼핑하는 만큼, 지혜롭게 처리하는 방법도 배워야한다.
*본인 아이가 입던 옷을 지인에게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처리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맘에도 들지도않는 물건과 두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는 이런 고민이 더 깊어진다. 소비를 부추기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새 학년을 시작할 때마다, 학교에서는 공책과 폴더 색깔까지 세세히 정해주며 새 물건을 구입하게 만든다. 크레용, 마커, 색연필, 공책—조금밖에 쓰지 않은 것들이 매년 집안에 쌓인다. 어떤 아이들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책가방, 텀블러, 런치백까지 새것으로 바꾼다. 안 그래도 아이 한명 키우려면 집안에서 굴러다니는 장난감과 아이물건에 혼이 빠질 지경인데, 학교와 주변에서는 한술 더 뜨고 있으니 새학기 쇼핑시즌만 되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이런 주변 환경에서 ‘나는 필요한 것만 산다’는 소신을 지키며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에 와서 과거 나의 소비 습관을 분석해 보면, 최고로 만족스러운 걸 하나 갖는 대신 그저 적당한 걸 여러 개 들여놓는 방식이었다. 남의 말에 혹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일은 잘 없지만, 필요없는 물건을 잘 거절하지 못했다. 옷가지든 주방용품이든 질 좋은 몇가지 아이템이면 충분한데, 그저그런 물건을 상황별로 다 갖추려고 하니 집은 터져나가고 그 전에 내 머리가 먼저 터질 지경이었다.
사람마다 소비에는 특징이 있다. 누군가는 주변인과 인플루언서의 말에 잘 넘어가고, 누군가는 남들에게 보이려고(인증하려고) 사고, 또 누군가는 세일이면 무조건 사고, 단지 유행이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기도 한다.
그래서 본인의 소비 패턴을 차분히 분석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걸 직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건을 줄이는 건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머릿속을 정리하며 내 삶에 진짜 중요한 것들을 지켜내는 과정이다. 소비하기 전, 스스로에게 꼭 물어보자.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내 삶을 더 깊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