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스, 포르투갈
23년 3월 생일 즈음에는
23년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엄청난 결심이
마음속에서 뜨겁게 일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남쪽 끝을 갔다
그렇게 마주한 천혜의 아름다움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이것은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여기서 SUP(stand up paddle)이라는 보드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인 Benagil로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사람이 저렇게 작다
이런 기암절벽을 옆에 끼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바다와 나,
이렇게 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노를 젓다가
나중에는 한 번 일어서보라고 하시는데 (일어서서 노 젓는 게 훨씬 힘이 덜 든다)
일어나서 처음 보드 위에 두 발로 서면
다리가 정말 갓 태어난 기린처럼 후들후들 떨린다
내가 내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옆에 카약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보면 비웃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들거려서 창피했다
바다 한가운데 두 발로 서면
그 어떤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하다
눈을 가만히 감으면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꿈꾸던 이 바다 위에 두 발로 서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미친 듯이 뛰게 했다
심장이 한 네 개쯤은 뛰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면 예쁜 바다지만
당장 까딱하면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담은 깊은 바다는 또 달랐다
그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주어 노를 젓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나아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노를 젓다 보면 자꾸 바닥을 보게 된다
내가 팔을 휘젓는 걸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자꾸 아래를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이 소리 치신 말
If you look down, you go down
If you look up, you go forward
멀리 바다를 봐야 멀리 나아갈 수 있다니,
그 말을 듣는데 머리털이 삐죽 서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렇더라고
오히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수평선의 하얀 끝을 바라보면서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새 내 보드는 힘차게 전진을 하고 있었고 두려움도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이 동굴에 들어왔는데
극한의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첫 난관이었다
그걸 얼른 벗었어야 하는데 순간 이성을 잃어서 아무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유일하게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서 노를 젓는데
와중에 모래사장에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보드가 파도에 살짝 뒤로 밀리며
그 순간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이 오셔서 보드를 잡아주고 나서야 겨우 동굴 안쪽에 내릴 수 있었고
지금 이 사진에 보이는 풍경을 마주했다
내가 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바다는
나를 언제든 집어삼킬 수 있는 자연이었고
자연으로부터 온 공포감은
놀이 기구를 탈 때의 공포감과는 정말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베나길 동굴은 장엄했다
'장엄하다'라는 형용사가 가장 잘 어울렸다 그냥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이 동굴 사진을 보고 단숨에 마음을 빼앗겨 오게 된 포르투갈이었다
2천5백만 년 전 형성된 동굴
끊임없이 바람에, 모래에 침식되고 있으며
Circular 한 모양으로 침식되다가 여기도 아까 그 구멍처럼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단위의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뚫릴 거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단어의 단위는 몇 천만 년의 세월이었다
이 동굴에 남아있는 화석들의 나이는 몇 백만 살이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단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동굴과
늘 그렇듯 고요히 흐르는,
그러나 한구석에는 무시무시한 어둠을 간직한 그 자연 속에서
나는 팔다리가 길어지는 것 같은 성장통
키가 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어디까지 내가 두려운 지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