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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

은퇴 이후를 고민하며 


  다들 100세 시대라고 난리다. 특히 50•60세대는 100세 시대의 축복을 받은 첫 세대라며 흥분의 도가니다. 곳곳에서 시니어모델 아카데미가 성행하고 있고, 이런저런 이름의 시니어 대회와 쇼들이 쉼 없이 벌어지고 있고, 색소폰을 배우는 은퇴자들의 열기가 뜨겁고, 각종 자격증 학원마다 50•60세대가 넘친다. 그런데 100세 시대의 축복을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 한숨 섞인 탄식 소리가 들린다. 겉으로 보면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은퇴 이후의 시간을 사는 것 같은데 속내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은퇴 이후의 긴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들 털어놓는다. 


  60대 중반인 필자의 속내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3-4년 전부터 ‘언제 은퇴해야 하나? 은퇴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과 씨름해야 했으니까. 누가 내 옆구리를 찌르지 않는데도 눈만 뜨면 이상하게 은퇴라는 문제가 떠오르고, 은퇴를 생각하면 곧바로 ‘은퇴하면 뭐 하고 살지? 은퇴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솟구쳤으니까. 지금도 날이면 날마다 고민하며 생각하는 것이 ‘은퇴 이후의 삶’이다.   

   

  사실 우리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은퇴와 은퇴 이후는 그리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다. 평생 한두 직장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후 잠시 가족의 부양을 받다 보면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은퇴 이후를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100세 시대다. 이전과 달리 은퇴 이후의 시간이 길어졌다. 은퇴한 후 대충 30-40년을 살아야 한다. 재수 없으면(있으면?) 50년 이상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전체 인생에 비추어 보면 은퇴 이후의 시간이 무려 ⅓에서 ½이다. 정말 엄청난 시간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은퇴 이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슨 수로 적당히 외면하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마땅히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은퇴를 눈앞에 둔 50•60세대뿐 아니라 30•40세대 역시 은퇴 이후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흔히 말하듯 인생은 마라톤이다. 출발이 아무리 좋아도, 중간 레이스에서 보란 듯이 치고 나가도 그것으로 승패가 결정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라톤의 승패는 오직 골인 지점에서 결정되며,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달릴 수 있어야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고,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송나라 유학의 거두인 정이천(程伊川)은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少年登科)이 첫 번째 불행이고, 부모 형제의 지위에 힘입어 위세 부리는 것(席父兄弟之勢)이 두 번째 불행이고,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는 것(有高才能文章)이 세 번째 불행이다.”


  이 말을 가만히 뜯어보면 뭔가가 이상하다. 이 세 가지는 다들 하늘이 내려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인데 정이천은 불행의 덫이라고 깔아뭉개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깔아뭉갠 게 아니라 ‘잘난 것 가지고 까불지 말라’고 호루라기 분 것임을 알 수 있다. ‘잘난 것에 취하면 자기 페이스를 잃기 쉽고,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어려우니 조심’하라고 옐로 카드를 날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이천은 천 년 전에 이미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진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사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통찰은 100세 시대, 무한경쟁 시대,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요청되는 통찰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 통찰을 망각하고 잃어버렸다. 경쟁력과 변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면서 우리의 인생은 어느덧 단거리 경주가 돼버렸다. 그러나 단거리 경주로는 100세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낼 수 없다. 100세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내려면 우리의 삶이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통찰과 진실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에 눈떠야 한다. 인생에서 은퇴 이후가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차원에서 깨닫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은퇴 이후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은퇴 이전까지 치열하게 달려왔던 성취가 빛의 속도로 밀려오는 변화의 파도에 모래성 무너지듯 허물어질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 이전의 경력과 성취를 우려먹으며 은퇴 이후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이전의 경력과 성취를 우려먹고 살기에는 은퇴 이후의 시간이 너무 길뿐 아니라 변화의 속도와 파고 또한 매우 빠르고 높아서 언제 무너지고 가라앉을지 알 수 없다. 반면에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통찰에 근거해 인생을 조형해가면 은퇴 이후에 훨씬 품격 있는 삶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은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가는 대전환의 시간,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주체의 시간, 그동안 농축해온 삶의 자산을 향유하고 나누는 공여(供與)의 시간,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성숙의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다. 은퇴 이후의 시간을 인생의 노른자위로, 삶의 꽃봉오리로 수놓을 수 있다.     

 

  지난 3-4년간 은퇴와 은퇴 이후를 고민하며 발견한 진실은 이것이다. 은퇴 이후가 중요하다는 것. 은퇴 이후의 삶이 진짜 삶이라는 것. ‘100세 시대’란 다른 게 아니라 ‘은퇴 이후가 중요해진 시대’라는 것. 그래 나는 100세 시대를, 은퇴 이후가 중요해진 시대라고 푼다. 앞으로 120세 시대가 열리면 은퇴 이후가 더 주목받게 될 것이다. 사실이다. 인생의 승부는 대학 마크로 결판나지 않는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열심히 쌓은 스펙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성실하게 밟아온 경력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인생의 승부는 오로지 은퇴 이후의 삶으로 결판난다. 은퇴 이후의 당신이 진짜 당신이고, 은퇴 이후의 삶이 진짜 당신의 삶이니까. 

  물론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정현종 시인이 말한 대로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다. 하지만 깊이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순간이 동질의 꽃봉오리일 수는 없으며, 은퇴 이후의 시간이 훨씬 더 삶의 본질에 가까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 또한 살아오면서 은퇴 이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느끼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적잖은 시간 은퇴 이후를 깊이 고민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진실은 그러하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이요 당신의 삶이다. 국가도,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예술도, 돈도, 도덕도, 성공도, 당신과 당신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먼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자기만이 최고요 자기만이 소중하다고 외치는 게 아니다. 단지 사실이 그러함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당신이요 당신의 삶이지 않은가. 하여, 나는 감히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과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이 물음을 소환할 것이고, 이 물음을 추적할 것이다. 가능한 높은 시선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즉 은퇴를 통해 인생을 보고 인생을 통해 은퇴를 보는 시선, 일과 인생의 함수방정식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 진실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시선으로 당신과 당신의 삶은 안녕한지 물을 것이다.  모델이라는 낯선 세계를 기웃거린 이야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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