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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존재의 위엄으로 충만하라

     

  100세 시대란 바꿔 말해 은퇴 이후가 중요해진 시대, 은퇴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진 시대다. 

  

  100세 시대의 은퇴는 단지 일에서 물러나는 게 아니다. 100세 시대의 은퇴는 노동의 단계에서 존재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대전환의 문이다. 세상 속의 나로 살다가 세상보다 더 큰 나로 돌아가는 사건, 세상 속에서 나를 증명하며 살다가 세상 위에서 세상을 관조하며 사는 것으로 전환하는 대사건이다. 100세 시대의 은퇴는 또 다른 성장(아래로 자람)을 위한 출발이며 나로의 귀향이다. 알몸으로 태어나 이 옷 저 옷(학력, 경력, 지위, 외모, 소유)으로 열심히 자기를 가리고 포장하며 살다가 다시 ‘알몸인 나’(존재)로 돌아가는 나로의 귀향.  

    

  하여, 나는 몇 년 전 다음과 같은 존재 선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만물의 골칫거리요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자이다. 

한없이 어리석고 무정하며 왜곡되고 자아의 감옥에 갇힌 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우주보다 더 광대하고, 

어떤 성공보다 더 위대하며, 

어떤 명예보다 더 소중하고, 

어떤 보석(돈)보다 더 값지고, 

어떤 영광보다 더 찬란하고, 

어떤 문명보다 더 보배롭고, 

어떤 종교보다 더 심오하고, 

어떤 진리보다 더 빛나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할 수 없다. 

나 외의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나를 모독하는 행위요 나를 이 땅에 보내준 손길에 무례한 행위다. 

나는 오직 나에 대해 겸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의무다. 

그리고 이 의무에 충실할 때 

나를 나 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드라마가 시작된다. 

즉 나를 목적으로 대할 때 비로소 삶의 호흡이 시작되고, 세상을 위하는 길이 열린다.]    


 

  나는 이 존재 선언을 은퇴 이후 삶의 지표로 삼고 자주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성취보다 존재가 훨씬 위대하고 장엄하다. 세상은 온통 존재보다 성취에 열광하나 성취보다 존재가 더 위대하고 장엄하며, 성취보다 삶이, 성취보다 사랑이 훨씬 값지고 소중하다. 이것이 근원 진실이다. 그러니 존재보다 성취에 열광하는 세상에 현혹되지 말고 존재에 집중하라. 인생이란 결국 나를 세상에 선물하는 것이니.]     

  나는 자주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설득한다. 그리고 소망한다. 

  모든 은퇴자, 아니 모든 사람 또한 이런 존재 선언을 하면 좋겠다. 자기가 세상보다 더 큰 존재라는 진실에 눈뜨면 좋겠다. 자기 존재가 세상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은퇴 이후의 시간을 이전보다 더 여유롭고 풍성하고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살면 좋겠다.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노년의 몸으로도 존재의 위엄을 간직한 채. 

존재의 위엄으로 충만한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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