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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08. 2023

도쿄 단상 1


  코로나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2020년 나는 도쿄에서 일본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해 4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타로상에게서 문자가 왔다. “남편 말이(그녀의 남편은 NHK 방송국에 다녔다) 오늘 저녁에 긴급사태 선언이 있을 거래요. 얼른 생필품을 사둬요"라고. ‘설~마하다가 설마?’하면서 마트를 달려갔다. 쌀과 라면, 휴지는 이미 동이 난 상태였다. 이런 일이 도쿄에서? 믿기지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파스타면 몇 개 사는데 줄이 길어 한참을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데 휴지가 마음에 걸렸다. 다른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포기하고 돌아가다 한 군데만 더, 하며 간 곳에서 보통의 휴지 10배 가격이 표시된 휴지 묶음을 발견했다. 사? 말아? 하다 사버렸다. (그래봐야 두루마리 휴지 두 개였다.) 사람들이 패닉상태가 되면 왜 휴지를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남들이 하니 나도 따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평소에 부화뇌동을 안 한다고 자신했지만 인간은 역시 닥쳐봐야 아는 존재인지. 입으로만 부르짖은 내 이중성에 실망과 부끄러움이 일었다. 그날 저녁 고이케 도쿄지사는 도쿄에 긴급사태를 선언하며 불필요한 외출과 인접 도시로의 이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됐고 같은 해 8월 나는 도쿄를 빠져나왔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사이버대학에 편입을 하여 일본어를 계속하고 있다. 기말시험이 끝난 다음날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2년 반 만에 찾은 도쿄는 평온했다. 12월 중순임에도 병아리 털색같은 노오란 잎이 은행나무에 풍성하게 달려있었다. 길에 떨어진 은행잎은 우아하게 예뻐서 밟고 다니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겨울이라 하지만 도쿄의 풍경은 체감으로는 한가을의 정취를 풍겼다. 좌충우돌하며 지냈던 에도(도쿄의 옛 이름)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를 스치는 촉촉하고 깨끗한 공기는 상쾌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를 갔다. 마트부터 빵집, 라면집, 세탁소, 목욕탕, 헬스장 모두 그자리에 그대로였다. 코로나를 견뎌냈구나 생각하니 코 끝이 찡했다. 집근처 전철역이 있는 건물 5층에 자리한 유린당 서점을 찾았다. 조해진 작가가 쓴 <단순한 진심>의 일어 번역본이 있나 물으니 한 권이 있었다. 그간 몇 군데 서점에 들러 같은 책을 찾았으나 재고가 없다며 주문 후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척 반가웠다. 한국이라면 아무리 작은 동네 서점에도 일본 작가가 쓴 책이 있는데. 츠타야, 키노쿠니야, 산세이도 같은 일본의 대형 서점에서조차 한국 책이 드물다는 게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문학에 대한 무관심인지 소개된 책이 없어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쉬웠다. 그나마 한국 문화 열풍이 분다니 한국책도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혹자는 활자 책이 사라질 거라고 예언하지만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니 적어도 일본에서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tokyo bike’에 갔다.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윌 스미스가 자전거를 타고 뉴욕을 누비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자전거를 만든 회사다. 도쿄바이크 자전거를 좋아해서 구경이나 할까 하고 들렸다가 렌털 서비스가 있다는 말에 이틀간 빌려 도심을 돌아다녔다. 가게 직원에게 주변에 맛집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줄 서서 기다릴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며 친절하게 지도를 꺼내어 위치를 알려줬다. 테이블 서너 개의 작은 곳이었지만 이른 시간인지 빈자리가 있었다. 테이블로 가서 앉으려고 하자 종업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입구에 손 소독제가 있으니 손을 닦고 앉으라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아 미처 보지 못했는데… 아니 손을 소독해야 한다는 의식이 느슨해졌다는 편이 맞겠다. “하이!”하며 얼른 다시 가서 소독제를 뿌렸으나 민망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가게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손소독제가 입구에 있었고 사람들은 소독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문율처럼 누구 할 것 없이 지켰다. 덕분에 일본 여행을 하는 동안 내 손은 수도 없이 소독하여 무균상태가 되었다. 작은 가게 안의 손님들은 조용히 음식을 먹거나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잦아졌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현금만 받는다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밥값 낼 정도의 현금이 있어 다행이었다. 일본도 ‘캣슈리스’(현금 없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기사를 본 듯한데... 식당을 나와 편의점에 가서 현금부터 뽑았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세 분과 학교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삼십 대, 사십 대 그리고 육십 대인 스승들은 외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모처럼 만난 제자 부부를 반가이 맞아준 그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남편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한 타카노 선생은 원두커피와 과자를, 호시노 선생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사진집과 그가 쓴 에세이책을 선물로 주셨다. 나이가 제일 많은 혼마 선생이 남편에게 누런 봉투를 건넸다. 나와 남편은 같이 일본어를 배웠다. 학교에서는 정규수업 외에 학기마다 일본의 다도, 역사, 영화, 노래, 책, 만화 등을 소개하는 일본 문화 시간이 있었다. 학생들이 각자 관심이 있는 교실에 가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만화반을 신청했다. 그때 그린 만화가 봉투 안에 들어있었다. 놀란 남편이 어떻게 이걸 갖고 계시냐 물었다. 학생들의 작품은 내겐 소중한 보물이라 모두 보관하고 있어요, 하며 선생은 수줍게 웃으셨다. 남편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작품을 보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나는 국산 참기름과 도쿄의 서점을 다니며 구한 <단순한 진심> 일본어 번역본 책을 드렸다.  한국유학을 했을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깊은 타카노 선생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자 혼마 선생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한 구절을 일본어로 읊었다. 덧붙여 그런 멋진 청년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며 안타까워했다. 찾아보니 윤동주는 27살의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나는 아침이면 산책삼아 안산을 거쳐 연세대 캠퍼스를 걷는데 윤동주 시비를 늘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로 시작하는 ‘서시'를 일본어로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말과 글이 엮어주는 인연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두 선생과 헤어진 우리는 혼마 선생과 학교 정문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코로나 이후에 유학생이 줄어들어 오후반이 없어졌다는 교정은 쓸쓸해 보였다. 다음을 약속하며 혼마 선생과 헤어졌다. 그분이나 나나 60이 넘었으니 그 약속의 성사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누가 알겠는가.


도쿄는 활기차 보였다.  명품 거리 긴자에서는 중국말이 자주 들렸다.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라주쿠는 평일임에도 젊은이의 거리답게 인파로 북적댔다. 해가 지자 도쿄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도쿄 사람들이 지방에서 도쿄로 돌아올 때 도쿄타워가 보이면 ‘아, 집에 왔구나.’하며 안도감을 느낀다는 도쿄의 상징.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도쿄타워는 형형색색을 내뿜으며 멀리서도 빛이 났다. 도쿄역에서 황궁사이로 줄 선 가로수는 하얀 전등을 달아 눈이 쌓인 듯 눈부셨다. 빛에 취해 걷다가 신기루처럼 길 한가운데 서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보았다. 누군가 피아노 앞에 앉더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어 길 위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도쿄는 일상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나의 8박 9일간의 도쿄 여행도 마무리되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도쿄!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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