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건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사이클을 타다 화장실이 급해 실례를 했던 사례자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운동을 끊었고, 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과민성 대장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트라우마를 고쳐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일이 아닙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민감한 장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히 차만 타면 꼭 화장실에 가야 했습니다. 변비는 거의 걸려본 적이 없어서 주변에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일본 여행 중, 친구가 변비로 고생하는 동안 저는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운동으로 마라톤을 합니다. 10km는 참고 뛸 수 있지만 하프나 풀코스를 뛸 때는 기록에 집중하기보다는 화장실 위치를 먼저 확인합니다. 작년 춘천 풀코스 마라톤을 처음 도전했을 때가 기억에 납니다. 목표는 6시간 이내 완주였지만, 초반부터 몸이 긴장한 상태였습니다. 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화장실 한 번 가려면 20분 이상 줄을 서야 했습니다. 제가 속한 F조 순서가 다가오는데 저는 화장실 줄에 서 있었습니다. 줄이 줄지 않아 마음이 더 조마조마했습니다.
마라톤 전 팸플릿을 보고 풀코스 지도를 확인했지만 화장실 위치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출발선을 지나면 화장실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끝까지 기다려 출발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카운트다운에 맞춰 출발했지만, 10km도 채 가지 않아 화장실이 보였습니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음 화장실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갔습니다. 신기하게도, 화장실만 보면 신호가 옵니다. 그렇게 1시간도 되지 않아 화장실을 네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기록은 이미 저 멀리 춘천 의암호를 건너가 버렸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함께 뛰던 사람들은 이미 앞질러 가 사라졌습니다. 하프 지점을 넘기자 몸에 긴장이 풀려 홀로 묵묵히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어릴 때도 화장실과 관련된 사연이 많습니다. 가족여행 때마다 저의 화장실 문제로 휴게소마다 들렀습니다. 몇 해 전 명절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막혀 남편이 국도로 우회했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 짜증을 냈던 기억도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만, 항상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급하지 않아도 집에서 꼭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할 때는 물과 커피 섭취를 줄입니다. 고속도로에 차를 타고 가면 다음 휴게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급하지 않아도 미리 다녀옵니다. 이런 사소한 준비가 제게는 큰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딜 가든 사전 연습과 준비만 잘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을요. 또 며칠 후면 고속도로에서 반나절을 보내야 합니다. 미리 준비하면 이번 명절도 문제없이 잘 고향을 다녀올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