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애들 웃음소리에 맞춰 웃고 있는 나도 있었는데, 웃음이 나가는 속도보다 공허함이 더 빨리 돌아왔다. 얘네는 그대로인데, 나만 그때처럼 서 있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같이 웃는 척을 하니까 잠시 편해지는 줄 알았다. 딱 거기까지만.
“이제 뭐 하냐, 우리?”
“몰라. 일단 한 대씩 피자.”
“아 씨, 벌써 돗대네.”
저녁의 길 한복판에서도 애들은 주변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익숙한 매캐함이 우리 주변을 감돌았다.
“뭐 하냐, 민재?”
“아… 어.”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툭 건드리듯 불렀다. 정신이 늦게 따라붙은 것처럼 대답하자, 금세 내 앞에는 담배 한 개비가 건네져 있었다. 라이터를 톡톡 두드리는 버릇이 있는 애였다.
“하나 펴. 오랜만이지?”
그 말과 동시에 우리가 차지한 의자 근처로 누군가 지나갔다.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과 짧게 스쳤다.
그 한 번의 시선만으로 선뜻 담배를 받을 수 없었는데, 그러다가도 결국, 한숨과 함께 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래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냥 오늘만. 그런 합리화를 하며 라이터 불을 붙여 담배 끝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입에 물려고 하기 직전. 내 행동은 그대로 멈춰 섰다.
담배 끝 때문이 아니라, 시선이 먼저 붙잡힌 곳 때문이었다.
길 건너편. 조용히 걸어가던 여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연서였다.
“…아.”
눈을 마주치자, 세상은 마치 모든 게 늘어진 테이프 속의 영상이 된 것 같았다. 내 손에 들린 담배는 아직 입에도 닿지 않았다.
근데, 어째선지… 들켰다는 생각보다 저 표정 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잠시 멈춰 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보지 마. 왜 날 보고 있어. 가던 길 가. 이건… 정말 아니야.
꺼낼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말이 목구멍에서 허공에 뜬 채 맴돌고 있었는데, 다른 목소리가 그것을 잘라냈다.
“와, 미쳤다. 쟤.”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니 다른 녀석이 물던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여자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부터 바뀌는 놈이었다.
시선은 대놓고 아이에게 꽂혀 있었다. 불안이 확 밀려와, 나는 급하게 말을 끊었다.
“뭔 소리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잖아.”
“저런 애 번호 따면 난리 나겠다, 그치.”
녀석이 익살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쳐다봤다.
“담배 다 폈으면 가자. 버스 탄다며.”
나는 관심을 거두게 하려고 일부러 팔을 잡고 녀석의 몸을 뒤로 끌었다.
“아, 놔 보라니까. 잠깐.”
그러나 녀석은 팔을 뿌리치고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분위기가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동을 걸어야 했다.
그때였다. 태평하게 구경하듯 보고 있던 녀석이 문득 눈썹 사이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근데, 야.” 녀석이 나를 돌아봤다.
“쟤… 너네 학교 애 아니냐?”
그 말을 듣자마자 가벼운 눈동자를 잠시 똑바로 바라봤다. 침묵을 오래 끌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선 넘지 마."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주변 기류가 확 바뀌었다. 담배를 피우던 애들, 화면을 보던 애들 전부 미세하게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말에 녀석은 혀를 차며 피식 웃었다. 누가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재미라도 된다는 얼굴로.
“그래서 지금 가오 잡는 거야? 같은 학교라고?”
숨이 깊게 나왔다. 감정이 튀어나오지 않게 누르려고 했다. 그 찰나의 뜸조차, 녀석은 빈틈을 파고드는 데 썼다.
“야, 민재 진짜 변했네. 인문계 가더니 물 싹 빠졌어. 아주 정의의 사도가 됐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자고 했다.”
좋게 끝내려던 마지막 시도였다. 그런데 녀석이 연서 쪽을 재차 보더니 씹듯이 말했다.
“얼굴은 겁나 착해 보이는데, 속은 더 더러울지도 모르지. 저런 애들이….”
그 말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몸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