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건지, 던진 건지

13화

by 전석표

주먹이 정확히 어디에 꽂혔는지조차 기억 안 난다. 욕설이 섞인 소리, 누가 날 잡아당기는 손아귀, 누군가 미끄러지듯 넘어지는 소리… 여러 개가 뒤엉켜 들렸다. 누군가가 내 뒤에서 소리쳤다.


“야 그만해! 미친놈아!”


그 순간, 정신이 뒤늦게 또렷해졌다. 녀석 얼굴에 덜덜 떠는 분노가 보였다. 내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혀가 굳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 길 건너편. 연서는 이미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온몸에서 피와 땀 냄새가 뒤섞여 났다. 씻을 힘도 없었다. 그냥 세탁기만 열고 옷을 들이부었다. 지퍼를 잠그고 버튼을 누르려다, 손이 멈췄다. 가방도 통째로 넣어져 있었다.


“뭐야… 아.”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으니 안쪽에서 무언가가 바스락 하고 손가락에 걸렸다. 이윽고 눈이 그것을 보며 멈췄다.


구겨지지 않고, 얌전히 들어 있던 영화 티켓 두 장. 세탁기 소음도, 시계 초침도, 머릿속의 분노도, 한꺼번에 꺼진 것 같았다.


“…하.”


오늘 손에 쥐려던 담배보다, 지금 손에 쥔 종이 한 장이 훨씬 더 뜨겁게 느껴졌다. 마음이 왜 이 모양인지 설명도 안 되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후회되는 게 뭔지는 너무 분명했다.


“미치겠다.”


다시 만나고 싶은데, 지금 모습으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서야 거울을 보며 알았다. 얼굴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신경 쓰지 않고 몇 날을 흘려 보내면서 의미 없이 9월이 지나가고 말았다.


“아, 배고파.”


10월 첫 주. 급식이 유난히 맛없게 나온 탓인지 오후까지 배가 계속 고팠다. 집 가는 길에 뭐라도 사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종례 때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흘려듣고 가방을 챙겨 복도로 나왔는데, 얼마 안 가 누가 나를 불렀다.


“강민재, 어이.”


몸을 옆으로 슬쩍 돌리자, 종례를 막 끝내고 교실에서 나온 담임이 몇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부르지?” 하는 의문이 눈빛으로 먼저 떠올랐을 때, 담임도 굳이 설명은 하지 않고 까딱 손짓만 하고선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이런 식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발은 이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역시 목적지는 교무실이었다. 의자에 앉으려고 하며 한숨이 절로 나올 즈음, 예상과 완전히 다른 말이 들렸다.


“뭐해? 앉지 마.”

“예?"


담임은 책상 위에 올려둔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배 안 고프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 자리에서 내 대답이 어떻든 담임은 날 끌고 갈 사람이었다.


교문을 벗어나고 길을 걷는 동안 담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만이 느끼는 어색한 정적 속에서, 몇 분이 지나 동네 초입에 다다랐을 때 담임이 문을 밀었다. 중국집이었다.


중국집 안은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애매한 오후라 한산했다. 환풍기 소리만 웅 하고 돌아가고, 벽에 걸린 애매한 크기의 TV에서는 자막만 요란하게 깜빡였다.


담임은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했다.

“짜장, 곱빼기.” 마치 늘 정해져 있던 일과처럼.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자리 맞은편에 앉았다.


“…그냥 보통으로요.”


내 주문이 끝나고 나서도 담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딱히 갈등을 꺼내려는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밥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맛있게 드세요.”


몇 분이 지나 자리 위로 자장면이 따뜻한 김을 뿜으며 올라왔다. 그러자 담임은 젓가락을 들더니 바로 단무지부터 집어 들어 내게 말했다.


“먹어라 얼른.”

“…잘 먹겠습니다.”


자장면을 먹는 동안 우리 사이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게 아니었나. 아니면 정말… 그냥 밥이 맛이 없어서 같이 먹으려고 부른 거였나? 내게 담임이란 예측이 안 되는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담임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은 눈치를 보며 자장면을 먹었다. 보통을 시킨 내 자장면은 담임의 곱빼기보다 자연스레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내가 얼추 다 먹은 시점엔, 담임의 그릇에서도 면발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 단무지를 집어 먹던 담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주춤하다가 따라 내려놓았다. 이상하게 그 타이밍을 어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담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강민재.”


부르기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괜히 등을 펴고 앉게 되는 부름이었다.


나는 대답하지도 못하고 숨만 들이켰다. 담임이 물었다.


“축사 일… 네가 던진 거냐, 아니면 도망친 거냐.”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