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문 앞에서

14화

by 전석표

다 먹고 건더기만 둥둥 떠다니는 자장면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굳이 볼 것도 없으면서 그랬다. 중국집 TV에서 나오고 있는 뉴스 보도가 다른 소식을 전할 때쯤, 나는 어렵게 입을 뗐다.


“…그냥, 저 때문이니까요.”

“뭐가 너 때문인데.”


담임이 물었다. 이번엔 좀 더 빨리 대답하게 됐다.


“토끼들 죽은 거, 오로지 제 탓이거든요. 연서가 제게 딱 하루 부탁한 건데, 제가 책임감이 없어서… 그래서 일 처리도 제대로 못 해서 토끼들이 그만큼 죽은 거예요. 연서가 얼마나 아꼈을 애들일 텐데, 괜히 저 같은 놈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못하겠냐.”


일부러인지, 혹은 막힐 데가 없어서인지 담임의 질문은 내 말 끝을 끊김이 없이 따라왔다.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밀려 답하게 됐다.


“…모르겠어요. 다만, 자신은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담임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그냥 벽 구석에 걸린 시계를 슬며시 확인했다. 그리고 말했다.


“책임이라는 거… 해냈을 때 생기는 게 아니다. 못했을 때 시작되는 거다.”


말끝에 벽시계의 시침만 째깍 소리를 냈다.


“네가 끝냈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끝나는 거고. 아직 덜 했다고 생각하면… 아직 안 끝난 거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담임이 물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연서 말인데.”


그때,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 같았다. 담임은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며 대단한 얘기라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널 믿고 있더라.”


그 말은, 위로도 아니었고 설득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느 말보다 묵직하게 울렸다. 담임은 계산대로 걸어가면서 덧붙였다.


“그게 더 무겁든, 더 고맙든… 그건 네 몫이고.”


단지 그 한마디였다. 그러나 나는 입을 열면 무너질 것 같아서 대신 물만 한 모금 삼켰다.




담임과의 대화 때문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학교에 오가는 루틴만은 같았지만, 순간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과 후, 나는 정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주위로는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혹은 느긋하게 걷는 학생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과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문 앞에 이르러서야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 애들은 그대로 나갔고, 나만 문턱 앞에서 한 박자 늦어졌다. 나는 한 발을 멈춘 채 서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점심시간이었다. 싱겁게 젓가락을 움직이다가 식판을 들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한데 그때, 수많은 북적거림 속에서 어느 얘기 하나만이 소란을 헤집고 귀를 두드렸다.


“연서는? 연서 어디 있어?”


그 이름 하나에 의식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단번에 돌릴 뻔하다, 이윽고 연기를 하듯 한 템포 늦게 그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찾은 연서는 내가 아는 그 연서가 아니었다. 그때, 마음이 되레 이상해졌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 게 다행인 건지, 아쉬운 건지. 누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없는 종류의 마음이었다.


“어, 학생, 이 음료수 원 플러스 원이야. 하나 더 가져와.”

“아, 네.”


그 주 금요일.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자동문이 열리면서 동시에 바람이 몸을 감쌌다. 그 바람 냄새가, 어쩌면 축사 문을 열었을 때 들어왔던 바람과 닮아 있었다.


“…아.”


그 짧은 몇 초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붙잡던 감정이 턱 하고 깨졌다.


나는 컵라면 봉지를 들고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고 인지하는 데까지 조금 시간을 썼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축사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고 나서였다. 건너기만 하면, 축사가 있는 골목으로 이어지는 곳.


나는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리듯 서 있었지만, 사실은 기다린 게 아니었다. 멈출 이유를 찾고 있던 거였다.


신호등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가슴이 점점 뻐근해졌다. 건너면, 그 문 앞에 서면, 연서를 마주할 수도 있고, 못 마주할 수도 있고, 나는 그 둘 다가 무서웠다.


이윽고, 눈앞에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움직였고, 나만이 그대로였다.


“…하.”


손에 쥔 컵라면 봉지가 바스락대며 열기를 놓쳤다. 그 한 줄기 바람만으로도,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안 돼… 아직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몸을 돌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걸어가면서도 고개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돌아가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그날 밤, 이불에 얼굴을 묻고서야 알았다.

오늘도 또 피했다는 걸. 그리고 피했다고 해서, 단 한 번도 편해진 적은 없었다는 걸.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