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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Mar 13. 2024

방해하지 말아줘

"그런 순진한 꿈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

“아빠!”

“그 풀대기 같은 스카프는 뭐냐.”


 아버지는 대뜸 찬물을 끼얹으셨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겠다는데 나를 막는 이유가 뭐야! 나는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봤지? 치 말이야. 차분하게 말을 참 잘하더군. 그를 설득시키는 게 너의 할 일 같더구나.”

“….”


나는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안다고. 아버지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도 그럴 참이었다고 외치고 싶었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 었다. 아빠의 잔소리는 알고 보면 늘 ‘내가 하려고 했는데!’의 것이 많았다. 내가 하려는 행동보다 조금 더 빨리 말을 해 나의 행동의 자의적, 독립적 의도를 망치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동생에게 음식을 더 주려고 막 나누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의 더듬이를 쓰다듬으며 “동생도 나눠줘라.”며 나의 신성한 계획에 먹칠을 하신다. 아버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동생에게 나누어 줄 참이었단 말이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할 줄 안단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도 부엌에 안 가시려고요?”

“나는 보다시피…”


아버지가 막 가지런히 모은 흙을 보여 주며 어깨를 으쓱하셨다. 아버지는 밤마다 약간의 습기를 얻어 가려고 흙을 파곤 하셨는데 이건 보통의 양이 아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아버지는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떠날 차비를 하는 것 같았다.


“떠나세요???!”

“쉿!”


우렁찬 나의 목소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는 누구라도 들을까 봐 서둘러 내 입을 가로막았다. 


“… 혼자서요?!”

“내가 먼저 갔다 와보련다. 미리 탐사하는 거지. 부엌이라는 곳의 위치와 실제 분위기를 파악하러 가는 거다. 오늘 회의만으로 아무것도 결정지어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싶거든.”아버지는 따뜻한 윙크를 했다.


“저도 같이 가요!”

“안된다. 너무 위험해. 일단 내가 가보마.”

“아빠…”

“의지만으로 부족해. 행동으로 옮겨야 알 수 있지. 하지만 넌 아직 어려.”

“저도 같이 갈래요! 저도 행동할래요. 무리들의 평판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요.”

“그럼 좋지. ‘대책 없이 무모한 자’로 평판이 더 추가되고 싶으면 말이야.”

“아빠!”

“일단 루와 치의 무리부터 설득시키는 것이 먼저 인 것 같다. 일단 무리가 분열이 되지 않도록 그들의 화를 돋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어라. 그 사이 내가 정찰을 해보고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가야 하는지 계획을 짜오마. 그러면 루의 무리들을 설득하는 것이 쉬어질 거야.”


나는 가고 싶다고. 더 조르고 싶어 입을 벌렸다가 아버지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를 향한 아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나니 도리어 눈물마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목에 있던 스카프를 아버지에게 걸쳐 주었다. 


“행운의 스카프예요.”


아버지는 나의 날개를 한 번 툭 친 후 곧 만나자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어 보인 후 매몰차게 날아가셨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또다시 굳은 다짐을 했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행동에 옮겨야 되겠다 싶어 포와 한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돌아섰는데, 아이 깜짝이야!


“초…”

“탄, 장례식 이후 처음이네.”


초가 서있었다. 4일 만에 봤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를 걱정하는 그녀의 눈빛은 나의 마음을 위로하다 못해 나를 소중한 사람처럼 돋보이게 했다. 나는 잠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회의 때 아는 척 안 했어.”그녀는 수줍은 듯 말했다. 

“너도… 왔었구나.”

“그럼. 모두의 일인데….”

“그렇지…”

“보고 싶었어.”

“….”

“탄.”

“나도.”


라고 겨우 말했다. 그녀는 나의 주저함에 약간 당황하는 듯했고 그 주저하는 목소리에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초를 보고 싶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달콤하고 애정 어린 말을 지금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런 모드가 아니었다. 사실 아까부터 나의 머릿속엔 방금 떠나신 아버지와 반대편 무리를 저지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심란해 보여.”

“어…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생각이 많아졌어.”

“그렇구나…”

“초, 넌 어떻게 생각해? 부엌에 가고 싶어?”

“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겠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거 말고 너의 진짜 생각은 어떤데?”

“….”


초는 항상 그랬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저 아름다움 속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한동안 궁금해하기도 했고 그 궁금증이 그녀를 향한 열망으로 드러나기도 했었다. 초는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마음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다. 


“초… 회의가 있어. 우린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한 것처럼 초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그녀에게 윙크했다. 아니 나의 윙크는 너무 어리숙해서 눈에 갑자기 뭐가 들어가 끔뻑이는 정도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나는 황급히 포와 한을 만나러 갔다. 


포, 한, 나는 책장 꼭대기 위에 나란히 앉았다. 서재에 오는 인간은 아빠라고 불리는 키가 큰 남성뿐이었고 그 남성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머리로는 도무지 루와 그의 무리들을 설득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루가 괘씸할 뿐이었다. 


“근데 걔 말이야.”

“누구?”

“누구긴 누구야 루지.”


한이 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나와 포가 기다렸다는 듯 더듬이를 세웠다.


“용감한 줄 알았는데 꽤 소심하더라?”

“비.. 비행 자.. 잘한다고 어.. 어.. 자잘 난 척할 땐 어어어 언제고.”

“아하하하하 맞네! 겁나 잘난 척하더니 멀리 비행 나가는 건 또 싫은가 보네!”


나는 오랜만에 소리 내서 웃었다. 이 자식들 오래간만에 옳은 소리 좀 한다. 맞다. 그놈 가슴팍 자랑하며 활공하는 건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시나. 도전하지 않으면 그 비행이 다 무슨 소용인데! 그 훌륭한 비행 실력으로 서재 밖은커녕 반대편에 있는 책상 근처에는 가봤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던 논리성은 한순간에 초라해졌다. 나와 포, 한은 마음껏 비아냥대며 한동안 웃었다. 

그 어딘가에 있던 응어리가 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내려가는 듯했지만 웃음 끝엔 여전히 그 사나이가 마음에 걸렸다. 


“근데… 그 애가 신경 쓰여.”

“누구?”

“루 옆에 있던 남자애. 치라고 하던데 ”


포와 한은 나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튕겨 나온 영웅? 쳇.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질투는 아니었다. 


“아, 맞다! 이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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