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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May 08. 2024

용기 내지 말라

찾았어!!!”



한의 목소리다. 나는 황급히 한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무리들이 에워싸고 있는 바람에 트라의 모습을 확인할 순 없었다.


“트라?”


아니나 다를까 트라는 짧은 순간 인간에게 공격을 당했다. 한쪽 날개가 뭉개진 것으로 보아 급커브로 간신히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육중한 몸매 때문에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꺼져가는 불씨처럼 숨을 간신히 쉬고 있었다. 


“트라! 괜찮아?”

“하… 그러게.. 후…. 그게… 쉬하러 갔다가… 후… 봉변을 당했….”

“말하지 마.”

“후… 후….”



트라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반이나 눌린 채로 누워있는 트라의 얼굴을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이럴 수가. 모든 계획이 다 틀어졌다. 자신감 넘쳤던 나의 계획은 감히 한 치 앞을 계산하고자 했던 나의 오만이었을까! 


회의는 자동 철회 되었고 트라의 죽음 소식은 일파만파 커져갔다. 누군가는 아예 트라와 같은 존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라의 존재를 알리가 없는 날파리들은 나의 말을 믿을 리 없었다. 의기양양해진 루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이방인의 죽음을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더 강화하였다. 


“보십시오. 부엌이 진짜 있기는 한가 봅니다? 우리 잘난 탄 나으리께서 소개하려고 했던 이방인이 그걸 증명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의 몸은 우리 보다 1.5배나 컸고 몸놀림은 1.5배 느렸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너무 커진 덕분에 인간의 공격에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부엌에 살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1분 1초라도 더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금방 죽고 싶습니까?”


루는 열과 성을 다해 목소리를 높였고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루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비행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를 진행하는 성숙한 태도는 나보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그는 사실 정말 쫄보였다. 그는 별것도 아닌 일에 걱정하고 소극적이며 새로운 기회에 취약했다. 부엌이란 곳을 인정하면서도 모험을 할 줄 모르는 용기 없는 존재, 지식인이지만 실제로 개척하지는 못하는 존재.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그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루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의식에서 오히려 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 살다 죽을 것이다. 레몬은 구경조차 못하고.


하지만 문제는 루가 아니었다. 루의 이야기를 들은 무리들의 혼란이었다. 그들은 부엌에 갈지 말지를 두고 마음이 1분에 열두 번도 더 바뀌었다. 


"아니 근데.... 저 녀석, 트라의 생김새를 안다고? 트라가 몸집이 크고 행동이 느리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불현듯 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놈은 생각보다 더 못난 놈이었다. 멀리서 트라의 존재를 지켜보고도 부엌에 대한 존재를 인정했음에도 그는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다. 


난 회의장 밖으로 나오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빨리 우리 원정대라도 준비시켜서 나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포와 한을 찾았다. 혼란에 잠식되기 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마침 저 멀리 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루가 서있었다. 그는 루와 이야기 중이었다. 루?


“한!”

“어? 어….”

“여기서 뭐 해?”


나는 루와 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탄….”

“응, 무슨 일이야?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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