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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Aug 16. 2024

배신: 비로소 시작된 여정

나는 루와 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탄….”

“응, 무슨 일이야? 왜 그래?”

“…. 나 부엌에 가지 않을꺼야.”

“뭐?”


한은 나의 눈을 마주치기가 싫었는지 땅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한에게 루가 뒤에서 어깨 동무를 해왔다. 루는 나를 보며 한껏 자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뭐야?”

“탄, 너도 봤잖아. 트라의 죽은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육중한 모습.”

“...왜?”

“무…무서웠어.”

“우…우리 모두 다 결국엔 죽어.”


할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 뿐이었던가. 


“물론 죽지. 하지만 이렇게 빨리? 난 무서워. 오래 살고 싶어. 난 안전하게 오래 살꺼야! 미안 탄.”

“한! 아니야.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넌 누구보다 부엌에 가고 싶어 했잖아!”

“탄….”

“레몬! 레몬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한은 여전히 나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우리의 드라마를 조롱하듯 루는 힘껏 웃었다. 그리고, “싫다잖아요.”라는 리드미컬한 말로 나의 격노한 감정을 짖밟았다. 그건 그 어떤 짓누름 보다 더 잔인했다. 그의 표정, 말투, 손짓 하나하나가 그랬다. 


우리중에 제일 몸을 사렸던 아이였지만 한이, 나의 친구 한이 그럴 줄이야. 배신감의 분노 조차 일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뇌가 생각하기를 멈춘것 같았다. 한과 루는 어깨동무를 풀지 않은 채로 뒤돌아 섰다. 


그들을 등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난 한을 지지했다.  ‘아닐꺼야. 루가, 비열한 루가 교묘한 혀로 한의 마음을 흔들었을 꺼야.’ 라고 우리의 우정을 잃지 않기 위한 억측으로 몸부림을 쳤다. 


괴로움에 치를 떨고 한참을 가는데 누군가 나의 앞에 섰다. 다름 아닌 초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난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나의 해결책, 평안, 기쁨이 되어 주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녀 앞에서 눈물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러면 그녀가 나에게 위로의 포옹을 전해줄 것이다. 


초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던것 같았다. 


“탄.”

“초.”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의 배신을 다 일러 바치고 싶은 마음에 대뜸 어떻게 그 자식이 그럴 수 있냐며, 다른 아이도 아닌 루에게 가버릴 수 있냐고, 소리쳤다. 


“탄!”

“아니 그 자식이 잠깐 미친거겠지?”

“잠깐만 탄….”


정신 차리고 초를 보니 그 예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탄. 할 말이 있어.”

“…무슨…?”


나는 그제야 초의 얼굴이 미안한 표정임을 알게 되었다. 아까 한의 얼굴과 비슷하다. 


“탄, 난 부엌에 가지 않을꺼야.”


난 한동안 입만 벌린 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머리를 매만지며 하늘 위만 바라 보는 것 뿐이었다. 한에게 받은 충격도 채 가시지 않았단 말이야. 


“…. 그럴..수 있지…. 근데 왜?”

“어제 저녁에 루가 와서….”

“루?”


루의 이름을 듣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결국 이런거였어?’


“탄, 나 정말 무서워. 얼마전 트라가 죽은것도 그렇고 레몬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안전하게 살고 싶어....”

“걱정마! 내가..”

“흑..흑…”



‘지켜줄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내가 무슨수로 그럴까 싶어 다시 욱여 넣었다. 


그녀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그녀의 어깨위에 살포시 발을 올려 놓으려고 했다가 이내 발을 거두었다. 정말로 그런 죽음의 위협이 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 그녀의 야무진 결정이 미웠다. 


“혹시… 우리 아빠가 떠나는 걸 사람들에게 말했어?”

“….”


그녀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가 우리 무리들을 배신한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난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동시에 초에게 실망스러웠다. 그녀의 선택이 마치 삶과 죽음을 넘어 나와 루를 사이에 두고 마음을 잰 거라 생각하니 기가막혔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돌아선 그녀의 마음을 다시 돌이킬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동시에 마음이 아렸다. 


“그래. 너의 의견 존중할께…. 잘 지내.”


나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솟구치려고 했던 눈물은 쏙 들어가버렸다. 


루, 한, 그리고 초. 한꺼번에 나는 세 친구를 잃었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눈물이 날법도 한데 웃음이 나왔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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