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말할 것 같으면, 술이 아주 잘~ 받는 체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 유전자를 빼다 박은 나로서 얼굴도 손금, 발톱 생김새조차도 닮은 딸로서,
말술체질을 닮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30대가 되고서는 술 먹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한 달에 1-2번이면 많은 정도가 되었고 그마저도 한두 잔으로 끝나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다르다. 연속으로 먹는 일은 잦지 않았지만 한두 잔으로 끝낼 바엔 먹지 않겠다는 이상한 오기가 덕지덕지 묻었을 시기였다. 항상 술을 마실 때면 과음을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20대의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과음하여 앞이 어질어질했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어지러운 채로 길을 걸어 다녔는지 알 수가 없다. 큰 사건 사고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차치하고,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더 과음한 날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취했으니 말이다.
대학교 근처에서 그 지역에 사는 타학교 친구와 술을 마시다. 둘 다 소위말하는 꽐라가 되어버렸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친구는 나를 두고 어딜 잠깐 갔었고 그 사이 일어난 사건(?)이다.대학교 앞에는 스타벅스가 크게 있었고 그 앞엔 벤치가 있었다. 취한 사람이 벤치를 두고 다른 곳(?)에 앉는 일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지만, 내 기억엔 분명 최소한 벤치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는 앉아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한국인이 소파를 소파로 쓰지 못하고 등받이로 쓰는 모양처럼 말이다. 그런데 끝까지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으련만, 마침 고등학교부터 찐친에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나를 발견했다.멀리서도 나인 것 같았는지(평소에 술 취했다고 바닥에 눕거나.. 그렇진 않다고 쓰려고 했지만 몇몇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00이 아니겠지?'라며 가까이 와봤다고 했다.
그 당시 내 기억엔 친구가 나를 일으켜 세우며 '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하며 깔깔 웃어댄 게 기억나는데, 적어도 나는 등받이로 벤치를 쓰고 있는 줄 알았었다. 다음날인지 친구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는데 깜짝 놀랐다.
내가 그냥 바닥에 고개만 살짝 벤치다리에 걸쳐놓고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왜곡된 기억.. 최소 상체는 살린 줄 알았건만, 그저 고개만 까딱 걸쳐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술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게 가장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술이 깬 이후에 왜곡된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도 정신건강에 굉장히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