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 제목을 짓고 보니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틀렸다. 기존 가족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벌써 엄마, 아빠가 이혼한 지 햇수로 8년 차가 되었다. 그때 당시 20대 중반이었던지라 크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같이 살다가 따로 살게 된 것뿐이었다. T라 그런지 같이 살 때 느끼는 그 정적, 가족이라 볼 수 없는 그 환경에 벗어난 게 그저 편안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의 이혼 계기를 죄다 풀 수도, 둘만의 사정을 알 수도 없지만 엄마와 시댁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시집살이란 게 없었고 할머니는 엄마를 못 챙겨줘서 안달인 그런 곳이었다. 이혼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 입장에선 아들과 이혼을 결정한 엄마가 미울 만도 한데, 연휴나 명절 때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할아버지는 12년 전 돌아가셨다) 떡이며 농산물이며 엄마와 아빠에게 따로 준비해 주신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지 못하는 엄마에게 내편으로 용돈까지 매번 챙기신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 후에도 우리와 식사를 같이하기도 하고, 엄마는 연휴에 친지들이 못 오는 시간대를 노려 할머니께 매년마다는 아니어도 한 번씩 가기도 했다. 아마 주변에서 보기엔 이혼보단 졸혼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도 그럴게, 나는 엄마와, 오빠는 아빠와 둘둘이 살고 있어 소식이 끊기려야 끊길 수 없는 탓도 있겠다.
처음부터 이런 관계가 되진 않았다. 이혼을 한 해부터 2-3년까지는 대부분의 이혼한 사람들처럼 서로 남남처럼 살아갔다. 내가 엄마 아빠 이혼 후 2년쯤에 크게 아프면서 입원을 하는 마당에 병원에서 엄마와 아빠는 오랜만에 조우를 했고 그때부터 한번씩 같이 만나게 된 것이다.
막상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사시는 두 분은 서로 미워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거의 30년을 같이 산 사람들로서 그저 각자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서로 지지고 볶다 각자 알아서 사는 삶이 얼마나 편안하리.
차치하고, 엄마 역시 할머니께 내편으로 두유며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사탕, 반찬을 보냈다. 나는 편지를 전하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이런 애정 넘치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한다.
어머니가~~ 이거 주셨다? 라고도 하고 우리 어머니는~~~ 하며 자랑을 마구 한다.
그렇지만 재결합은 없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라며 선을 긋는 엄마였다. 유쾌하게 살아가자. 쌈박하게!
너무 심각해지지도, 무겁게 삶을 바라보지도 말자! 그보다 차라리 가볍게 삶을 선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