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린 Sep 28. 2024

11. 새로운 가족의 탄생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 제목을 짓고 보니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틀렸다. 기존 가족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벌써 엄마, 아빠가 이혼한 지 햇수로 8년 차가 되었다. 그때 당시 20대 중반이었던지라 크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같이 살다가 따로 살게 된 것뿐이었다. T라 그런지 같이 살 때 느끼는 그 정적, 가족이라 볼 수 없는 그 환경에 벗어난 게 그저 편안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의 이혼 계기를 죄다 풀 수도, 둘만의 사정을 알 수도 없지만 엄마와 시댁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시집살이란 게 없었고 할머니는 엄마를 못 챙겨줘서 안달인 그런 곳이었다. 이혼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 입장에선 아들과 이혼을 결정한 엄마가 미울 만도 한데, 연휴나 명절 때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할아버지는 12년 전 돌아가셨다) 떡이며 농산물이며 엄마와 아빠에게 따로 준비해 주신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지 못하는 엄마에게 내편으로 용돈까지 매번 챙기신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 후에도 우리와 식사를 같이하기도 하고, 엄마는 연휴에 친지들이 못 오는 시간대를 노려 할머니께 매년마다는 아니어도 한 번씩 가기도 했다. 아마 주변에서 보기엔 이혼보단 졸혼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도 그럴게, 나는 엄마와, 오빠는 아빠와 둘둘이 살고 있어 소식이 끊기려야 끊길 수 없는 탓도 있겠다.


처음부터 이런 관계가 되진 않았다. 이혼을 한 해부터 2-3년까지는 대부분의 이혼한 사람들처럼 서로 남남처럼 살아갔다. 내가 엄마 아빠 이혼 후 2년쯤에 크게 아프면서 입원을 하는 마당에 병원에서 엄마와 아빠는 오랜만에 조우를 했고 그때부터 한번씩 같이 만나게 된 것이다.


막상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사시는 두 분은 서로 미워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거의 30년을 같이 산 사람들로서 그저 각자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서로 지지고 볶다 각자 알아서 사는 삶이 얼마나 편안하리.


차치하고, 엄마 역시 할머니께 내편으로 두유며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사탕, 반찬을 보냈다. 나는 편지를 전하는 한 마리의 비둘기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이런 애정 넘치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한다. 


어머니가~~ 이거 주셨다? 라고도 하고 우리 어머니는~~~ 하며 자랑을 마구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장난 삼아 

아니 전. 시어머니 아니야? '전'을 붙여서 말해야지~ 이혼했는데~ 

하며 우스갯소리를 던지면, 엄마도 맞받아치며 


이 바쁜 세상에 어머니면 됐지 뭐 하러 전. 시어머니를 붙여대니? 참나. 


하며 깔깔 웃으셨다.


그렇지만 재결합은 없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라며 선을 긋는 엄마였다. 유쾌하게 살아가자. 쌈박하게!

너무 심각해지지도, 무겁게 삶을 바라보지도 말자! 그보다 차라리 가볍게 삶을 선택하리라!




이전 10화 10. 나의 은밀한 취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