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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시작 그리고 엄마도 시작

뜨겁던 2002년, 작은 읍내에서도 불었던 월드컵 열풍 

by 공무원 니니 아줌마 Mar 13. 2025

그 시골 신혼 생활에서 나의 유일한 고정 방문지였던 도서관이 없었다면 나는 공무원 시험 따위는 준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더구나 합격의 결과가 있다면 가족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근사한 자랑거리가 될 것 같았다.


무슨 이유로 시작했건, 나는 합격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남편 직장은 8시까지 출근이었는데, 7시 조금 넘어서 출근을 하는 남편 차를 타고 나도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점심을 위해 집으로 오가는 시간도 아깝고, 책 들고 오갈 때 느껴지는 이웃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점심 도시락을 싸왔기 때문에 남편과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나의 수험생활도 맞추어졌다.


처음엔 수험서만으로도 합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공부하고 나서 그것은 무모한 계획이자 헛된 꿈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노량진 강의를 듣고 싶었다.  인터넷에 무료로 제공되는 1-2회분 강의를 들으니 노량진 일타강사는 확연히 다름을 깨달았다.  수험서 구매만 10만 원 넘는 지출이었는데, 외벌이 남편에게 인터넷 강의 얘기를 하자니 미안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노량진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 듣기였다. 제일 처음 중고시장에 나온 행정학 일타강사의 강의 테이프를 사서 하루에 8시간 이상 들었다. 한 바퀴 다 도는데 열흘 걸렸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조금 낮춘 가격으로 중고시장에 다시 팔았다.  국어, 영어, 사회는 고등학교 공부방법으로 공부했고, 행정학과 한국사는 그렇게 테이프로 기초 공부를 했다.


그렇게 두 과목 테이프 듣기를 하는 중간에 첫째 임신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 지 일 년쯤 되어 나름 임신을 기다리기는 했지만, 한창 공부가 가속이 붙었던 때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합격 후 만삭일 때 임용되면 어쩌나, 그런 김칫국 고민을 하기도 했다. 임신을 알게 되고 일주일 후쯤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나는 출산의 고통을 묻는 사람에게 얘기하곤 한다. 출산보다 더 힘든 게 입덧이라고. 일주일 만에 5킬로가 빠졌다. 친정과 시댁이 있는 곳과는 왕복 7시간 거리에 살았던지라 누구 하나 기댈 사람도 없었다. 앉아 있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 누워서 눈물만 흘렸다.    


두 달쯤 쉬었을까... 3월에 임신을 알게 되고, 5월에 있었던 사촌 동생 결혼식 뷔페에서 입덧 없이 엄청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나의 공무원 수험생활은 흐지부지 되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태교랍시고 영어 독해는 꾸준히 조금씩 했고, 또 태교랍시고 시험에 자주 나오는 한국소설과 시들을 읽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나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누구 하나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 없었고, 나는 그저 내 몸만 잘 건사하면 되었지만, 난 그 황금기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듯하다. 엄마가 되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하루하루 몸이 달라져 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웠고, 배가 불러오면서 출산의 고통을 미리 알려는 듯 상상해 보고 이겨내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쓸데없는 시간 소모였다. 나도 지금은 낳아봤으니 쓸데없었다며 후회하지만, 그건 누가 위로한다고 사그라지는 두려움이 아니다.


더구나 그 해 6월은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했었다. 그 작은 읍내에서도 거리응원이 열렸고, 붉은 악마 티셔츠를 무료로 나눠 주었으며, 고향으로 가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외쳤었다. 전국을 흥분으로 채운 이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걱정했었는데, 사람은 다 살게 되나 보다. 2002년 11월에 첫째 출산 후  4주간 고향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도, 지인도 없는 곳에서 하루종일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너무 힘들어서 우울함이 극대화 됐던 것 같다. 그저 3시간만 연속으로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출산 전 육아대백과 같은 책에서 '산후우울증'에 대한 글을 보면 이해가 안되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너무 귀엽고 예쁜 아기를 보는데 도대체 왜 우울하단 말인가! 겪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바람쐬러 갈 곳도 없는, 베란다를 내다 보아도 논밭이 전부인 곳에서 어떻게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남편이 쉬고 있는 주말에 두시간만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아기를 맡겨놓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아니 딱 한 곳이 있었다. 도서관이다. 

내가 그곳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도서관 밖에 없었다.

대출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들이 순산하셨네요, 라며 인사를 건넸다. 책장 사이를 돌며 두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평일은 알아서 할테니 주말만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내 몸을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혼자 아기를 볼 자신도 없다고 했다. '나도 아기 보는 걸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평일 낮에는 수험서 내용을 여기저기 붙여 놓고 읽으며, 외우며, 메모했다.

평일 저녁에는 남편이 아이를 보는 사이 이해 안됐던 부분의 강의를 듣거나, 도서관에 갔다.

남편이 혼자는 불안하다 하여 가급적 도서관 외출은 자제했다. 

그리고 주말은 읍내를 떠나 인근 시청 소재지 고시학원의 무료 강의를 들으러 갔다. 

노량진 강의를 녹화하여 무료로 송출해 주는 서비스 강의였다. 

이 무료 강의 덕에 내가 합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시 전통 노량진 강의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첫째의 돌잔치까지 두 번의 지방행정직 시험을 낙방하고, 돌잔치 얼마 후 치른 시험에 드디어 합격했다. 

친정과 시댁 모두 낙방을 대비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 집안 모두 얼굴을 직접 보고 합격 소식을 뻥~하고 터뜨리고 싶었는데, 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전화로 모두 발설해 버렸다. 평생에 제일 으스댈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린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나는 그때부터 힘든 육아를 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똘똘하고 유능한 엄마? 또는 아줌마? 또는 며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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