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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금(線) 밟고 공무원으로 넘어가기

by 공무원 니니 아줌마 Mar 20. 2025

공무원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가족 중에서 제일 기뻐한 사람은 친정 엄마였다.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셨으니까.


그 다음 기뻐한 사람은 아마도 시아버님이 아닐까 싶다.

결혼 생활 20년이 넘는 동안 아버님께 들었던 유일한 칭찬은

공무원 합격을 말씀 드리니 "잘했다" 는 한 말씀이었다.


친정이나 시댁이 모두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진짜 도움없이 무일푼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내 주위에 우리처럼 정말 밑바닥까지 무일푼으로, 부부가 온전히 일구고 있는 가정은 아직까지 못 들어봤다. 

나는 결혼 당시 양가의 도움을 못 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싹퉁머리 없이 들릴 지 모르겠지만, 안 받은 만큼 며느리나 사위로서의 부담은 덜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말하자면 안 주고 안 받기가 가능할 것 같았고, 지금처럼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4년제 대학 나와서 뭐라도 못할까 도전 정신이 투철했던 듯 싶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아닌 이상일 뿐.

결혼 후 5년쯤 이제 겨우 월세 탈출, 전세가구가 되었을 무렵 시아버님께서 퇴직하시게 되어, 고정적인 생활비도 보태드린 것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나의 시댁은 경제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평균 이상이다.

손주 사랑이 끔찍하셔서 아이가 아파 부탁드리면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서도 언제든 달려와 주셨고, 시부모님 모두 검소하게 생활하셔서 우리가 보태드린 생활비도 아끼셔서 손주들 용돈을 주시는 분들이다. 또 나에게는 아래, 위로 시누가 두명이 있는데, 이상적인 며느리상의 전업주부인 손아랫 시누이가 가끔 뼈때리는 쓴 말을 날리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나의 맘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워킹맘 손윗 시누이는 대부분 맞벌이의 애환을 잘 알고 있는 편이라 며느리 입장에서 남편이나 시아버님께 사이다 발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부라는 존재는 전생에 아내가 남편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불공정한 관계를 견뎌야 할 리가 없다고. 


나의 못난 성격 탓이 크다. 잘못한 것도 없이 눈치 보고, 결혼 초 착한 며느리 컴플렉스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모든 신경을 시댁에 두고 살았다. (아마도 직장생활을 안 하니 시간이 남아 돌아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듯 싶다.) 3-4시간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음에도 남편을 졸라 한달에 한번은 꼭 시댁에 갔고, 2-3일에 한번은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남편은 본인의 부모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깐깐한 시아버님은 만족하지 않으실 거라면서도 굳이 나의 '오버'를 말리지는 않았다.


시아버님은 나의 그 어떠한 정성이나 노력보다도 공무원 합격을 크게 '쳐' 주셨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아버님은 나에게 빡빡한 잣대로 평가하셨고, 오히려 시어머님이 나를 위로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크게 쳐 주신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시댁에 가면 시아버님은 늘 당신의 아들 얼굴을 보고는 한 말씀씩 하신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 얼굴이 너무 까매졌다, 왜 이렇게 살이 안 찌냐 등등. 심지어 시아버님은 모두 알고 계신다. 당신 아들이 매일 육아는 제쳐두고 테니스에 푹 빠져 있다는 것과 하루에 네끼 먹는 사람이라는 것을. 더구나 당신 며느리는 결혼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밥을 먹이는 엄마라는 것도 말이다.  나의 시아버님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냥 이 나라의 모든 시댁은 아들의 가정의 모든 책임이 며느리에 있는 듯이 말씀하신다. 아니 시댁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생각한다.


나조차도 아이가 아프면 내 탓인 것 같고, 집안 청소가 덜 되어 있어도 내가 게으른 것 같고,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내가 못 챙긴 탓인 것만 같다. 최근 결혼하여 똑소리 나는 젊은 여직원들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공평한 가사부담을 유지하다가도 엄마가 되고 나면 부모 역할의 반 이상은 엄마 책임이라는 듯이 모든 관심과 노력이 아이에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강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된다. 


남편은 잘 도와주는 편이다. 내가 미리 아침을 차려 놓을 동안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다 같이 먹은 후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난 출근 준비를 한다. 어느 새 생긴 자동분업이다. (고등학생 아들, 대학생 딸램은 밥만 차려주면 이제 내가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말한 것처럼 남편은 설거지가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 듯 하다. 내가 출근을 하는 날만 도울 뿐,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모든 집안 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딸은 내가 퇴근이 많이 늦어지면 설거지를 해 놓는다. 물론 내가 부탁한 것이다. 10시가 넘어 퇴근하면 엄마도 힘들다고....그 후로 딸 아이는 밤 9시가 넘어가면 설거지를 해 놓는다. 그러나 내가 저녁 8시쯤 되어 늦었다고 하기에 애매한 시간에 퇴근하면 설거지는 씽크대에 가득 쌓여있고, 내가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설거지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은 아내의 할일, 엄마의 할일 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하나로 시댁에서 대우받고(??) 집안의 대소사 불참 등 많은 배려를 받고 있음에도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너무 많다.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공무원 아줌마도 이럴진대, 자영업이나 사기업 직장인 엄마들은 얼마나 고될까...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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