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열람실을 함께 이용했던 그 남자는 경찰이 되었을까
중고등학생 시절에 누군가 공무원이 꿈이라고 하면 속으로 비웃었다. 앞날이 창창한 학생이 기껏 공무원이나 하면서 재미없게 살 생각인가 싶어 삶에 대한 열정도 없는 친구라고 속단했었다.
하루하루 똑같은 날들을 보내며, 친한 지인 한명 없는 시골 생활에 지쳐 갈 무렵이었다.
밖에서 지나가며 흘깃 보기만 했던 작은 도서관에서 '문학의 밤(?)' 시화전 행사가 열렸다.
남편과 주말 저녁에 시화전 구경을 핑계로 도서관 내부를 구석구석 다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서점을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 책은 많이 안 읽었어도, 도서관에 가서 책 제목과 작가 이름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세상에 이런 책들이 있구나!' 호기심을 갖고 책 구경만 해도 참 좋았다. 아마도 대학시절 책 제목과 작가를 얘기하면, 꽤 큰 규모였던 대학도서관임에도 웬만한 책들은 바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화전 당일, 이 작은, 시골, 읍내 도서관에 뭐가 있겠어 우습게 여겼던 나는 내부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20년 전이었음에도 인터넷 수강실, 열람실, 독서실, 정기간행물실 등등 있을 건 다 있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도서관 열람실을 들락거리며 학생때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 도서관을 알게 되며 무료함으로 인한 우울함도 어느 정도 사라져 갔을 때였다. 대출실만 들락거렸지 열람실에 앉아 공부할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 날 호기심에 열람실 문을 열어보니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열람실 전체가 50석쯤 되었는데, 그 가장 구석에서 남자 한 명만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슬쩍 가까이 가 보니 경찰직 공무원 수험서가 보였다.
나도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나도 열심히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나도 열심히 무언가가 하고 싶어졌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 보고 싶었다.
성과를 내서, 친정에도 시댁에도 자랑하고 싶었다.
친정에는 공무원 시험 합격증을 내보이며 대학까지 가르쳐 주신 것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시댁에는 시골에서 노는 줄만 알았던 며느리가 사실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음을, 이 며느리가 공무원을 합격할 만한 똑똑한 며느리였음을 으스대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겠노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했다.
'수험서랑 강의 테입도 사야 하고, 인터넷 강의도 신청해야 돼. 돈좀 많이 쓸거야' 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끼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했다.
나중에 합격하고서 남편이 말했다. 정말 합격할 줄은 몰랐다고, 원(員)이나 풀라고 하라 했다고.
"내가 투자는 잘했지." 라는 합격 후 남편의 말.
공무원이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무가치한 날 같아서 도전이 필요했고,
따라서 어떠한 공무원이 되어야지, 하는 포부도 없었다.
그냥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서 시작한 길이었고, 합격을 하고 싶었던 것 뿐, 시작할 때만 해도 공무원이라는 직업으로 그 후의 인생을 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공무원은 9시에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하며, 야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아도 짤릴(?) 일 없으며, 일을 잘 해내기 위한 자기 계발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아도 되는 철밥통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를 일컫는 단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