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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읍내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다

갑갑했던 그곳의 신혼생활. 이제는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그리운 곳이다.

by 공무원 니니 아줌마 Feb 27. 2025

나는 50세 아줌마이면서 공무원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대부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결혼을 한 경우가 많아 공무원이 먼저, 아줌마가 나중이지만, 나는 결혼 후 공부하여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줌마가 먼저였던 공무원이다.

결혼 후 첫째 아이 돌잔치를 막 끝냈을 무렵,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합격은 서른살(예전 나이셈), 공무원 시작은 서른 한살의 봄 부터였다.


공무원이 기필코 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똑같은 결혼 생활 중에서 다만 난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결혼 후 남편의 직장 근처인 경남의 작은 읍소재지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5일마다 장이 서고, 20분은 걸어야 읍내 식당에 갈 수 있는 읍내 변두리 한 동짜리 빌라가 결혼 후 내 첫 거주지였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지만, 나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따뜻한 정을 꿈꾸며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내 꿈은 현실과 많이 달랐다.  


변두리 읍내 달랑 한 동짜리 빌라. 새로운 전입자가 별로 없던 그 곳에서 나는 이웃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 대상이 되었다. 일단 나는 도시에서 온 여자이고, 대졸의 학력을 가진 여자였다. 첫 신혼 살림이라 필요한 물건들을 자주 인터넷 주문으로 배송시키곤 했는데(그래도 그 곳까지 택배가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1층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던 이웃 아줌마들이 내게 전달해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택배 기사님(우체국 택배가 전부여서 등기도 우체국 직원 한분이 모두 배송해 주셨다)도 다 동네 주민인 터라 1층에서 아는 누구를 만나 전해 주고 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줌마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우리집 앞으로 몰려와 물건 개봉을 기다렸기 때문에 내 살림살이는 반강제적으로 동네 주민들에게 이것저것 오픈되었다. 그렇잖아도 궁금한 새댁의 집에 우르르 몰려올 기회가 생기면, 아이들도 모두 데려와 한 시간 넘게 머물다 가곤 했다.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동네 아줌마들의 방문이 너무 싫어서 인기척 없이 지냈고, 밖에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집을 나서면 초중고등학교(이 작은 읍내에 초중고교가 한곳에 다 있었다)를 지나 학원 한 곳, 주택 몇 채와 읍사무소, 몇개의 가게 및 다방 등을 거쳐 30분쯤은 걸어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읍사무소 반대 반향 길은 끝없는 논밭만 보였다.

한번은 오일장에 나서면서 이 마을에 시골다방이 몇 곳이 있는지 세어본 적이 있다. 슈퍼마켓도 찾기 어려운 곳에 양쪽 길 다 합쳐 다방이 12곳쯤 되었다. 이용자도 별로 없는 곳에 10개 넘는 다방이 문닫지 않고 유지 된다는 것은 현재까지도 미스테리다.


결혼 후 한달 정도는 살림살이 정리도 하고, 남편 퇴근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요리도 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휴식기였는데, 이제 막 서른이었던 나는 앞으로의 쉼없는 인생따위는 생각조차 못한 채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 괴로워 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무료했다. 무료하다 못해 내가 도태되는 느낌이랄까, 무소용한 인간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이랄까, 우울해지기 시작했던 그 즈음이었다. 그 읍내 작은 도서관을 알게 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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