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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d 채드 May 21. 2022

#3. 그린 그래스와 골든 브리지

첫사랑이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의 소심하지만 세심한 사랑 기억의 색

 낯설음이 주는 동질감은 얼만큼 인지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까, 혹은 그 낯설음 자체도 언제나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러한 특이한 상황 어떠한 일과 감정에 대한 원인라 쉽게 치부해 버리기는 어렵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열세시간의 시차가 만들어준 이 로함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정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게 더 큰 영향을 주었든, 그게 무엇이던지 그녀를 앞에 두고 있다는 현재가 그 앞선 많은 생각과 의문점들을 다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적으로 섬세한 차이를 느끼는 시기는 지났다. 바다로 나뉘어 있는 다른 대에 건너온지도 이제 나흘이 지나서일지도 모르나, 시차라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이미 모든 의식의 기준이 새로워진 이후 이미 그것은 더 이상 새로움이 아니었다. 다만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에게 입력되는 이미지와 공간, 때로는 후각으로 느끼는 공기의 기운 차이는 여전히 생소했다. 그런 생소함이 주는 것은 낯선 두려움만은 아니었고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고 그건 예민하게 돌아가는 후각과 모든 감촉들도 함께였다.


 처음으로 청각에 대한 예민함과 떨림을 발견하게 된 것도 그녀로 인한 것이었다. 아마도 처음에 이를 잘 인지 못했던 것은 주변에 들리는 영어나 다양한 모국어 가운데 나의 귀에 익숙한 한국어여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단정으로, 애써 드러나는 모습의 마음을 다시 뒤로 보내거나 혹은 단순한 그리움 때문일 거라 치부해 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내 곧, 마치 또 다른 세상의 진리를 하나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새롭게 정의되는 그 감정을, 그간 익숙히 알던 단어로 나열하며 외면하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언어와는 관계없이, 거리와도 관계없이, 단순히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라 때로는 손끝으로 또 어떤 때는 바람에 맞닿은 머릿결을 통해, 그리고 대부분은 규칙적인 움직임의 가슴이 일시 불규칙의 부정합 신호를 보내는 것을 통해서도 그 소리를, 그녀의 목소리와 움직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여러 개의 학교 건물들과 많지 않은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들, 약간 들떠있는 모습들, 하지만 그에 비해 끝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무한한 크기의 평온함을 주는 푸른 잔디밭. 그리고 그 푸른 배경 가운데 항상 가득 찬 소리로 지나가는, 두 사람이 팔 벌려 좌우로 나란히 한 만큼의 공간을 항상 가득 채우며 지나가는 그녀와 그 무리들은 나의 눈에 항상 가득 차 보였다. 행히 그녀에게 나를, 나에게 그녀를 인지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비록 이름을 말한 정도, 그것도 그간 살아온 내 이름이 아닌, 지난날 누구나 한 번쯤은 등록해 보았던 종로 어학원에서 급하게 만들어낸 영어 이름을 알고 있는 그녀이지만, 그간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대와 다른 시간대의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때문인지 청각으로 알게 된 마음은 곧 시각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나서의 나는, 그날 그전까지는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늘 더욱 소심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건 용기가, 결단이, 그녀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게 되었던 모습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난처한 마음이 그렁그렁 눈에 한가득 달려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찰나의 주저함도 없이 말을 건넨 건 아마도 온전히 나만의 뜻과 의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의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반나절 이상을 도로를 달리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위해 이곳저곳 찾아서 전화를 하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때마침 도움을 주고 마음을 보여준 것 유일하게 리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마음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었고, 언제든 다가가 안녕 말고 다른 말을 건넬 수 있는 연이 생기게 된 것이다. 조심스레 시작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러한 때가 있다. 실제로 밀어서 열고 들어가거나 상대 쪽에서 찾아오지 않더라도, 그 문이 있고 열려있는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생각이 달라지는 때가. 하지만 막상 그 문을 밀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는 때가. 나도 그러했다. 소중하게 연결된 한가닥의 가는 끈이 끊어지지 않게 가볍게 쥐고 있을 뿐 더 이상의 앞으로의, 뒤로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녀는 지나칠 때마다 밝은 미소를 혹은 반가움에 크게 뜬 눈을 얕은 미소와 함께 보내주는 걸 잊지는 않았다. 그렇게 열린 문을 밀지도 닫지도 않은 채, 낯선 곳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세 달이 지나가고 한여름 반달여 간의 브레이크 지난 후 여러 사정에 따라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고 이후 다시 두 달이 지난 후 나는 이전 학교를 찾아가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 지나온 시간 동안 때로는 빠르게 감기를 통해 돌려보는 듯이 지나쳐가는 순간의 모습들로, 때로는 일시정지처럼 미세히 떨리는 불안함 속에 무한정 멈춰있는 듯한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이지만, 언제나 마치 두 눈이 마주치는 한가운데 중심을 축으로 하여 회전하는 세상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가파른 회전에도 그녀의 눈나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와는 다른,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그 열려있는 문을 들어가지 않았기에 몰랐던 깊은 심연을 보았다. 마치 그날의 그렁그렁한 눈과 같이 다시금 보여진 눈에는 자그마한 원망도 있었다. 나의 소심함에 그녀의 마음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이 더 모여 떨어질 수도 있었기에, 나는 그 마지막 방울이 모여 뭉쳐서 흘러 떨어지기 전에 다시 그녀를 찾은걸, 문을 열은걸 나 스스로에게 감사히 생각했다. 짧은 순간의 나눔이지만 처음 나눔 때의 마음을 다시 보게 되었고, 각자의 도심 속으로 돌아간 이후 매일 밤은 항상 연결되었다. 홀로 있는 세상 속에 아주 작은 목소리를 주고 받으며 보내는 하루하루는, 가는 연결끈으로 하루하루 그 가닥을 더해가며, 마치 금문교 현수교의 튼튼한 연결선이 그 안에 가느다른 수많은 연결선을 품고 있어서 바람에 출렁이며 움직여도 끊어지지는 않듯이, 더 강하게 연결하며 우리를 이어주며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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