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그리고 무너짐의 첫 시작
쉬지 않고 공부를 한 결과,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해 대학생이 되었다.
의료 관련 업계에서 일을 하고 싶어 간호학과를 선택하여 진학했다.
입시에서 벗어나 이제 숨좀 돌리나 했지만 공부할 양도 많았고, 실습도 있었기에 오히려 더 바빠졌다.
대학에 진학할 의무를 벗어나자, 이제는 대학생활에 적응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배우고 싶던 것을 선택한 것이므로, 공부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면서도 나름 재미있었다.
당시 집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새아빠가 생겼다.
기존에 부모님을 부르던 호칭을, 이제는 잘 모르는 어른에게 불러야 했다.
나에게 '아버지'의 자리는 몇 년째 공석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채워진 그 자리가 어색하면서도 불편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몇십 년을 따로 살던 사람이 서로 한 가정으로 합치는 과정이 매끄러울 리 없었다.
또다시, 집에 이런저런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옛날처럼 심하지는 않았고, 이제는 (새) 부모님도 다툴 일이 생기면 집 밖으로 나가 우리가 안 들리는 데에서 언성을 높이고 감정이 정리된 뒤에 들어오시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진정한 뒤에 들어오신 거였겠지만, 나에게는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들과, 씩씩거리며 거칠어진 호흡과, 둘 사이에 한껏 거칠어진 기류가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모른척하며 조용히 있거나, 평소처럼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이라도 해 주시는 게 어딘가.
다행히도, 이런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두 분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리라.
한껏 곤두선 신경을 잠재우고, 나도 내 생활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할 일은 꽤 많이 쌓여 있었으므로.
익숙했다. 날카로워진 감정을 가라앉히고,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는 것이 나만의 생존법이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늘 비슷했다.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아픈 감정을 누르고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것.'
제자리에서 아파하고 감정을 호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그랬다.
내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아직은 가족 안에서, 멀쩡한 구성원으로서 첫째 다운 첫째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독립한 지 어느새 7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아플 땐 아프다, 힘들 땐 힘들다 하고 좀 징징대도 눈치 봐야 할 사람은 없다.
나만의 온전한 보금자리가 있으며, 필요할 때 나를 돌볼 충분한 능력도 갖추었다.
안전하다. 나는 이제, 안전하다.
더 이상, 그때처럼 잔뜩 긴장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힘을 좀 풀어도 된다.
그런 와중에, 새아빠와 큰 갈등을 겪을 일이 생겼다.
내용을 자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얼추 정리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큰 상처를 남긴 일이었다.
그분을 탓했다면 마음이 좀 더 편했을까 싶지만,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더 미워했다.
'내가 좀 더 제대로 말했다면, 그때 이렇게 행동했다면..'
인생에 큰 오점이 생긴 것 같았다.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할 일들이 있었다. 실습, 과제, 공부, 시험, 봉사까지..
무엇 하나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한껏 노력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어떤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녀와서 유달리 피곤하고 기운이 떨어졌다.
잔뜩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와중에 그분과 겪었던 갈등 내용이 머릿속에서 또다시 상기되기 시작했다.
반추, 지긋지긋한 반추였다.
멍하니 걷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지금 하나도 괜찮지가 않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온 파도에 몸이 잠기는듯한 기분이었다.
지금껏 외면해 왔던 모든 감정들이 한순간에 밀려와 나를 압도했다.
발단은 사람이 많은 행사에 다녀온 뒤의 피로감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한참 전부터 이미 넘치기 직전의 아슬아슬했던 양동이가, 마지막 물 한 컵을 붓는 순간 왈칵 넘쳐버린 것이라고.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계였다.
그때가, 내가 자각한 우울증의 첫 시작이었다.
어쩌면, 한참 전부터 우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우울'을 처음으로 직면한 것은 분명 이때였다.
나는 점차 기나긴 감정 터널의 입구로 들어갔다. 빠져나오는데 몇 년이 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