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15화: [과거의 조각]_4

갑자기 찾아온 부고(2)

by 당근

다음날, 경찰서에 도착했다. 형사과에 들어가,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이런저런 서류뭉치와,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형사들한테 둘러싸일 날이 오다니.

내가 긴장한 탓인지는 몰라도, 다들 친절하셨지만 왠지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공개 가능한 선에서 사건 경위를 듣고, 평소에 지병이나 원한 관계가 있었냐는 질문에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잘 모르겠다, 평소에 술을 많이 드시는 편이긴 했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라고 답했다.


나도 궁금했다. 진짜로 간이 안 좋아졌는데 치료 시기를 놓쳐서 급사하신 건지, 아님 남모를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나중에는 돌아가신 자세까지 설명을 듣는데, 이럴 땐 내 상상력의 스위치를 잠시 꺼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10년의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바로 감정이 쫓아올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마음 한 켠에서 이런 일이 언젠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온 탓도 컸다.

그래서 형사님들이 보기엔, 내가 가족을 잃었는데도 눈에 띄게 무덤덤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조사가 끝난 다음에는, 유전자 검사도 받았다. 인생 처음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면봉으로 입안 상피세포를 낱낱이 긁어내어 제출했다.


혹시 몰라 형사님이 건네준 휴지는, 쓸 일이 없었다.

지장을 찍느라 엄지손가락에 묻은 인주를 닦는 용도 정도..

나는 어딘가 정신이 걸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멍한 것 같기도 하고..


조사를 마치고 나와서는, 부모님이 휴가를 내고 경찰서 근처로 날 데리러 오셨다.

남은 건 장례와 유품 정리, 유산 정리였다.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장례를 진행해 본 게 처음이었는데, 너무 낯선 경험이었다.

연락이 끊긴 친인척들을 찾아 연락을 한다거나, 유품 정리사 및 특수청소파트에 전화하는 일은 거의 부모님이 진행하셨다. 나는 가끔 친보호자만 할 수 있는 절차에 참여했다.


청소 후 나온 유품이나 생가를 확인하겠냐는 말에, 엄마는 안 보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좀 비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잠깐 도의를 저버리더라도 길게 봤을 땐 트라우마가 덜 남는 길이었다.


다들 덤덤한 척 일을 진행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각자의 감정을 삼키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일이 맞지만, 그 분과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가족들끼리 각자 어떤 말이든 서로 내뱉었지만, 다들 머릿속이 복잡했기에 어딘가 붕 떠서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대략적인 절차를 마치고, 부모님께서는 휴가 기간 동안 잠깐 본가에 와있는 게 낫지 않겠냐 물으셨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다.

혼자 있어도 정말 괜찮다고, 차라리 푹 쉬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정말 이 복잡한 감정을 누구 앞에서 모른 척 유지하는 게 힘들어지고 있었다.


나도 사람인데, 아무리 연락이 끊겼다 하더라도 한때 나를 키워준 사람과의 기억을 그리 덤덤하게 흘려보낼 순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 앞에선 도무지 맘껏 슬퍼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잔인한 말이지만, 떠나간 그분은 우리에게 떳떳한 위치가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나는 가족들 앞에서 무언갈 표현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그분들 앞에서 울기라도 했다간 나중에 마음의 짐이 또 하나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만의 이유는 많았지만, 그저 괜찮다는 말로 포장하고 집에 돌아왔다.

상을 치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였다.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괜찮은 게 습관이라 괜찮았고, 속에서는 안 괜찮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는 게 진짜 덧없구나.'


사실 마음이 많이 무너졌던 날이, 화장 당일이었다.

당일엔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참석하게 된 친척들이 오게 되어 있었으므로, 엄마는 내가 혹여라도 안 좋은 상황을 겪게 될까 봐 한껏 단호한 어투로 힘들더라도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머리로는 나도 이해가 되어,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자식 된 도리를 못했다는 생각에 그랬는지, 나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저 마음이 아팠다.


영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근 십 년간 본 적도 소식도 몰랐는데, 마지막으로 본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하필 당시에도 간이 안 좋아서 얼굴이 노랬다.

그렇지만 그 마지막 모습마저 나에겐 영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차마 좋게 포장해 줄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나에겐 마지막 기억이라, 영정사진 대신 마음에 품고 중랑천에 나와 엉엉 울었다.


울기 싫어서 평소에 잘하던 산책으로 좀 억눌러 불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게.

세월의 경중을 넘어서서, 한 사람의 무게라는 건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남은 시간에는 그저 울고 싶을 때마다 울었다.

울고 싶다기보단, 울다 보니 울던 관성이 생겨서 계속 울게 되었다.

휴가 기간 동안엔 다 떨쳐내야 할 감정이기에 남김없이 털어내려고 애썼다.


울음이 점차 나아질 때쯤, 문득 떠나간 아빠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알 길이 없었으므로, 내가 그분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엄마는 어떠실지 모르지만, 나는 그분을 미워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걸 담기엔 마음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을, 품고만 있기엔 너무도 답답하고 무거웠기에

나는 또다시 펜을 들고 노트에 글을 적어내려갔다.